"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십시오.

2023. 8. 21. 22:36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어제 당신께서는 마음은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는 몸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다" 라고 염송하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까?

이것은 마음을 제거하는 한 방법입니까?

 

마하리지 : 그건 좋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이지요. 그러나 '나' 자신도 하나의 생각입니다.

그 '나'라는 생각이 최종적으로 실재 안에 흡수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저것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먼저 일체를 분별하십시오. 마음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대는 자지 않고 있고, 말하지 않고 있고, 그 밖에 무엇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가 느끼는 것들도 마음이니 그것도 잊어버리십시오.

'나는 하지 않고 있다'는 그 생각은 그대가 분별하는 것을 도와주는 하나의 가시와 같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실재 안에 흡수됩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나 저것을 하지 않고 있다." 그대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하나의 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대는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마음은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그 마음도 흡수되어야 합니다. 분별이 주안점입니다.

그러면 "나는 도처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 내가 없습니까? "나는 안다. 내가 한다. 나는 이해한다" 와 같은 생각들을 무효화하여 이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참되지 않습니다.

꿈 속에서 그대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본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보았습니까? 그래서 그대가 보고 지각하는 것들은 그대의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승이 그런 것을 말해주고, 그래서 '나' 곧 에고가 머무르지 않습니다.

최종적 실재는 그런 모든 것과 무관합니다. '나'는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무명의 실재는 그 안에 어떤 감정도, 어떤 개념도 없습니다.

일체가 그 위에 다가 옵니다. 스크린은 좋거나 나쁜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크린은 '예,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체를 보여주지만,그것의 접촉을 받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의 접촉도 받지 마십시오.

모든 금 장신구는 금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의합니까?

그대가 거기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부여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전혀 실체가 없습니다.

형태와 이름이 주어지지만, 그것은 하나의 장신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고 말하는 것으로 수행을 하십시오.

마치 잠 속에서 일체가 일어나지만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깨어나면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대는 그것을 압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나는 먹지 않고 있다.'

이것이 그대의 이해여야 합니다.

'나는 옳고 그는 틀렸다'와 같은 온갖 생각들이 그대의 마음 속에 들어옵니다.

감정이나 생각이 마음 속에 들어 올 때는,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여 그런 그릇된 관념들을 제거하십시오.

일체는 영(제로)에서 시작하여 영(제로)으로 돌아가고, 아무 것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시로 다른 가시를 뺄 수는 있지만, 두번째 가시를 지니고 있으면 그것에 찔릴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생각의 그 감정이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대가 없다면 행위자는 누구입니까? '나'는 전혀 실체가 없습니다.

그것이 그대가 숙고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 철학을 그대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두 번째 가시인데 그것도 사라져야 합니다.

'생각하기'는 그대가 아닙니다. 누가 생각합니까?

여기서는 생각하는 자를 찾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나'가 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지만,

'나'에 의해 행해지는 일은 그대가 아닙니다.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생각은 하나의 꿈 속에서 존재하지, 달리 무엇도 아닙니다.

이것이 참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왜 걱정합니까?

그러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어떤 행위자도 없습니다.

결국 그 '나'는 사라집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지(知)를 가지고 있다" 거나

"나는 스승이다" 라고 말하면 그것은 에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지(知)를 과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출가를 하고 특별한 옷을 입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해이지 달리 무엇도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다고 해서 여자가 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그대에게 닥쳐온 첫번째 장애이지만, 그대는 무념입니다.

생각들은 마음의 것일 뿐입니다.

생각하기는 그대에게 닥쳐온 종기와 같습니다.

그것을 이해로써 제거해야 하고, 그런 다음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 없이는 무지 속에 머무르게 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지(知)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지, 곧 어둠을 없애려면 빛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둘 다 그릇된 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지(知)가 있으면 무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지(知)도 아니고 무지도 아니고,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닙니다.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존재합니까?

'그'가, 곧 자아없는 나의 진아가 존재합니다.

그대가 방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공간이 있는 한 그대가 일체를 봅니다.

공간이 없으면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 안의 일체가 그릇된 것입니다.

에고가 지(知)이고, 에고가 마음입니다.

마음은 그대의 생각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마음이 지(知)입니다.

진정한 이해가 올 때는 일체가 버려집니다.

 

-환(幻)과 실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