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2. 22:39ㆍ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그렇다면 왜 모든 종교가 운명과 예정론을 이야기합니까?
란지트 마하리지 :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가르침이 가진 내적인 의미를 모릅니다. 그들은 그릇된 것을 가리치는 것, 분명히 말해 둡니다. 그가 되십시오. 그런 뒤에 가르치십시오.
질문자 : 여기 저희들은 모두 교육을 받았고, 그 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체험은 서로 다릅니다.
마하리지 : 그 체험을 그대 자신으로 만드십시오. 일체가 무(無)이고 일체가 환(幻)입니다.
그럴때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환인데, 어떻게 그것이 운명지워질 수 있습니까? 세계의 창조주 역시 환입니다. 그대는 하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꿈의 창조자가 누구입니까? 말해 보십시오 !
그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대의 생각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거기서 수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누가 그 생각을 주는가? "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 생각은 무지에서 옵니다.
질문자 :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반대로,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하리지 : 무지한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그대가 지금까지 이해한 것은 모두 그릇된 것입니다. 마음이 변해야 하는데, 그것이 스승이 하는 일입니다.
그대는 늘 자유로운데도 "나는 속박되어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대가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누구기에 어떤 사람에게 해탈을 안겨 줍니까?
소년이 무지하면 학교에 갑니다. 무지하지 않다면 그때는 어떨까요?
마라티어 이야기에서, 어느 깨달은 자에게 14살쯤 아들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세상을 배우기를 원했고, 그래서 소년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옴 나마하 싯다(Om Namah Sidda, 참되신 분, 당신께 절합니다)"라는 구절을 배웠습니다. 바로 그 한 구절에 대해 소년은 1,500연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오?"
만일 그대가 마음 속에 그릇된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어느 면에서, 마음은 비어 있거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받아들임이 아주 빨리 일어납니다.
질문자 : 좌선을 하다가 어떤 체험들을 합니다. 그것도 환입니까?
마하리지 : 그렇지요, 그렇지요 ! 일체가 환입니다. 그대가 가진 지(知)가 그 자신과 놀고 있습니다. 그대가 보는 것은 지(知)일 뿐입니다. 만약 그대가 자신을 기억하면 그를 잊습니다. 그를 잊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있습니다. '나'를 잊으십시오. 그러면 그가 있습니다. 그대는 그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대'는 그를 볼 수 없습니다. 그대는 그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이 들어 옵니다. 그대가 그일 때, 무엇을 성취하며 무엇을 성취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속에 너무나 많은 것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그것을 떠날 수 있습니까?
스승이 "그대가 그이다" 라고 말할 때,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모하메단(무슬림)들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힌두교도들은 저것을 이야기합니다.
각자 자기 나름의 관념이 있습니다. 누가 옳습니까? 누구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물으면,
이해하는 사람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르오"라고 말합니다. 피살자도 그이고 살해자도 그이 입니다.
어떻게 하며, 무슨 말을 합니까? 그대가 꿈을 꿀 때는 눈이 감겨져 있습니다.
한 생각이 오고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참됩니까? 그대는 어느 눈으로 그 꿈을 보았습니까?
그대에게 이해가 있을 때는 마음이 만족하고, 아무 생각도 다가오지 않습니다.
마음은 늘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그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마음이 진아를 생각한다면, 마음이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대는 아까 그 시끄러운 마음에 대해 물었습니다.
마음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늘 시끄럽습니다.
그것이 늘 시끄러운 까닭은 그대가 그릇된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나서 그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백가지 거짓말을 더 합니다.
이해하는 사람은 말합니다.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모른다 " 천번을 물어도 그는 "나는 보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대가 목격하는 것은 늘 그릇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가 늘 보고 지각하는 것은 모두 그릇되었습니다.
눈은 어둠 속에서는 보지 못합니다. 그대 안의 힘은 어둠과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대는 그 힘으로 보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눈은 어둠 속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대 안의 그 힘을 이해하십시오.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십시오.
그러면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대'가 죽어야 합니다.
'그대'는 그 몸을 뜻하지 않습니다. 몸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몸은 영(零)에서 시작하고 영에서 끝납니다. 진아가 천국입니다.
하늘에는 어떤 천국도 없습니다.
일체가 그대에게서 시작됩니다.
마음은 늘 생각을 하지만 그 마음에게 이해를 안겨주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아이가 울고 또 울어도 초코렛 주면 즐거워합니다. 우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마음에게 올바른 생각을 안겨주면 그것이 자동적으로 정지합니다.
그 마음이 그릇된 생각들을 수색합니다.
그대의 마음을 이해하면 그것이 그대를 실재까지 데려다 줄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마음에 의해 "나는 이것이 아니고, 달리 어떤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속박과 해탈도 마음의 소산입니다. 그대는 왜 해방을 원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지(知)는 스승의 은총에 의해 이해될 수 있지, 달리 무엇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싯따라메쉬와르 마하리지님이 저의 스승이신데, 당신이 그 이해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합니다.
까비르가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모른다면 성지를 찾아간들 무슨 수용이 있는가?"
그대가 이해하면 모든 장소가 성스러워집니다.
그는 도처에 편재힙니다. 그는 모두의 안에 있습니다.
바다의 거품 하나하나는 바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대 자신을 에고에서 떼어내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그'입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고, 이해의 변화만이 필요합니다.
무지의 원 바깥에 있으십시오.
그대는 무지 속에서 태어나고 무지 속에서 죽습니다.
무지란 아무 것도 아닌 것, 영을 뜻합니다.
공간도 '영'인데, 일체가 공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만일 공간이 없다면 어떤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진아는 공간이 없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대 자신을 이해하면 마음은 무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대는 세계가 참되다고 말하지만, 성자들은 세계가 참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것이 차이입니다. 세계 안에는 많은 소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소음없이 남아 있습니다.
-란지트 마하리지와의 대담 <幻과 실재>-

'성인들 가르침 > 란짓트 마하리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심'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를 뜻한다. (0) | 2023.10.04 |
---|---|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십시오. (0) | 2023.08.21 |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나'가 아닌가? (0) | 2023.06.08 |
그대는 '무엇이 그대가 아닌지' 분별해야 한다 (0) | 2023.05.05 |
어떤 것을 기억하면 참나를 잊어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잊으면 참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0) | 202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