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0. 23:00ㆍ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마하리지님, 만일 몸이 고통을 받으면 당신께서는 "몸이 고통 받지, 나는 고통받지 않고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까?
마하리지 : 예, 몸이 고통 받지, 저는 고통 받지 않습니다.
그대의 이웃이 문제들을 안고 있으면, 그대는 " 내 이웃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지만, 어떤 느낌도 없습니다. 몸을 그대의 이웃으로 간주하십시오.
그러면 몸의 문제들은 그대의 이웃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대가 고통을 받는 것은 "나는 몸이다." 라고 말할 때입니다.
몸이 불에 데면 그 뜨거움을 느끼는 것은 몸이지 그대가 아닙니다.
그대가 수술을 위해 마취를 받으면 그 통증은 어디로 갑니까?
통증은 있지만 마음이 잠을 잠니다. 통증을 잊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 마음과의 접촉으로 인해 통증이 다시 나타납니다.
통증을 가진 것은 몸이지 '나'가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이 몸은 살아 있으니 통증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송장입니다.
하루는 카비르가 개에게 한 다리를 물렸습니다.
제자들이 난리법석을 피웠습니다. "오, 마하리지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을 몸으로 알기 때문에, 그 통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카비르는 개에게 물리는 일이 몸에게 일어났지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몸을 자신의 이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통받는 것은 단지 "나는 몸이다"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에고입니다.
진인은 "무슨 일이든 일어나라고 하지"라고 말합니다.
이웃 사람이 죽어도 여러분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 그것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깨달은 존재는 (죽음이 닥치면) "오, 얼마나 놀라운가 ! 내 문제들이 사라지고 있으니"라고 말합니다.
몸은 하나의 문제이지, 달리 무엇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여러분의 다리에 종기가 나면, 여러분은 그것이 몸의 일부임에도 의사에게 그것을 절제해 달리고 합니다. 그것이 고통을 안겨 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몸은 여러분에게 자라난 하나의 종기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아주 즐거이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몸이 죽을 때 고통스러워하고, 몸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깨달은 존재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 순간 내 몸은 하나의 송장이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구가 나가면 여러분은 그것을 버립니다.
전기는 반대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내적인 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바로 지금 몸은 죽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원적인 것이 지(知)의 성품입니다.
몸은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것의 사용법을 알아야 합니다.
실재를 알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면 여러분이 실재가 될 것입니다.
만약 "나는 몸이다." 라고 말하면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지옥은 쓰레기통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몸은 똥 만드는 공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똥 공장의 주인이 되지 마십시오.
실재의 주인이 되십시오.
질문자 :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화할 수 있습니까? 실재를 알기 위한 탐구에서는 에고를 어떻게 없애야 합니까?
마하리지 : 에고는 무지입니다. 이해함으로써 무지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에고가 사라지면 이해가 남습니다. 그러나 이 지(知,앎)도 하나의 상태입니다.
이 지(知앎)를 실재 안에서 녹여야 합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마음이, 진리라고 축적하고 받아들여 온 모든 것,
그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대는 자신이 하는 말의 진리성을 믿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대가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성(知性,앎) 때문이지만,
지(知)는 무지(無知)에서 옵니다.
그래서 그것의 근원은 무(無)입니다.
마치 그대가 깊은 잠이 들어 무지 속에 있을 때,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나면 어떤 꿈이 나타나듯이 말입니다.
그대가 지성(知性)를 통해서 습득한 모든 것은 환(幻)에 불과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실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십시오.
그대가 무(無)를 느끼고, 그것이 있다고 느낄 때는 분명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실재는 이처럼 무(無)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zero)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보고 지각하는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이러한 이해에 의해 마음이 정화됩니다.
마음은 어떻게 오염되었습니까?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어서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을 실재로 여기고, 그리하여 실재를 잃어버립니다.
세계는 실재가 비친 모습일 뿐인데, 비친 모습은 참되지 않습니다.
그대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다고 합시다.
진짜는 그대의 얼굴이지 그 비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비친 모습을 실재라고 말하면 그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비친 모습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대는 실재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정화입니다.
"내가 보고 지각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을 어떻게 정화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개념인데, 개념이 어떻게 참될 수 있습니까?
실재하지 않는 것은 늘 불순수합니다.
그대의 참된 성품 위에 일체가 덧씌워지지만,
그대 곧 실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너무나 맑고 순수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일체를 참되다고 여기는데, 그것이 불순수입니다.
그러나 일체가 거짓임을 이해하면 마음 자체가 사라집니다.
마음은 그대의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생각일수도 있고 그 어떤 생각일 수도 있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은 무지에서 옵니다.
그러니 그 생각을 잊고 지(知,앎)를 잊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그' 입니다.
그대는 거짓인 것을 참되다고 여기고, 참된 것을 거짓이라고 여깁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그것이 불순수입니다.
그것은 마치 법정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진심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모든 말이 거짓인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거짓인 것만 보고 거짓인 것만 말하는 것이 마음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순수함은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마음을 잊어버리면 그대가 실재입니다.
마음은 생각을 의미합니다.
생각들이 사라지면 그대가 있습니다.
-란지트 마하리지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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