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9. 20:01ㆍ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마두카르 : 탄생이나 죽음은 삶이라는 꿈의 일부입니다. 신의 꿈 속에서 누구의 육체가 태어나고 누구의 육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변화없는 의식이며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탄생이나 죽음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는 의식의 꿈일 뿐이니까요.
순더람 : 아니, 저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란지트 : 꿈은 사실이 아니다.
마두카르 : 전생과 환생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것 역시 신의 꿈의 일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생이 존재하는 지의 여부나 그 의미는 물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란지트 : 깨달은 이는 그러한 환상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탄생도 죽음도 없다.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가?
마두카르 : 일어나는 모든 일은 꿈의 일부입니다. 깨달은 사람의 육체와 마음이라는 유기체와 그 경지 역시 꿈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우쳤거나 깨우치지 못했거나 상관없이 모든 것은 꿈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삶은 꿈으로 보입니다. 또다른 가능성은 꿈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란지트 : 자아는 무지에 의해 지속된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만 깨달으면 된다. 자아가 존재하는 한, 자아는 그대가 깨닫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아는 무지를 의미한다. 자아란 무지일 뿐이다.
순더람 : 선생님은 저의 스승님이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저는 많은 스승들이 똑같은 진리를 말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러나 저의 자아는 남아 있습니다.
란지트 : 만일 그대가 스승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대개 자아는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는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듣지만 그 이야기로 무엇을 해야 좋은지를 알지 못한다. 그대는 여기에 와서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단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를 기억하라. 그것이 수행이다.
나는 그대가 무지 속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대는 삶이라는 꿈을 실제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드러나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일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마두카르 : 삶이라는 꿈은 하루하루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삶이라는 꿈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삶을 실제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란지트 : 삶이라는 영화는 언제나 앞으로 움직인다. 똑같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제는 지나갔다. 이제 오늘이 왔다. 내일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일은 생각 속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마흔 살, 혹은 쉰살이 되었다는 것은 생각일 뿐이다. 쉰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해가 우리를 마지막 이해로 이끌어 줄 것이다.
마두카르 : 구도자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의 방을 걸어나간 후의 일상 생활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란지트 :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가르침을 이해한 채로 지낼 것이다. 그는 무지한 상태로 스승에게 왔다. 그는 스승의 말을 들었고 그말을 이해했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는 그의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그대와 나는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꿈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일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육체가 존재하는 한 삶을 계속 살아간다. 나는 방안에 앉아 그대를 맞는다.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잔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궁극의 실체이다. 나는 자아가 사라진 긍극의 실체이다.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의 인식만 변화하면 된다. 다른 것은 없다.
마두카르 : 스승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인식이 바뀔 수 있습니까?
란지트 : 그렇다. 그저 듣고 이해하라. 그대의 이해만 변하면 된다. 이제까지 그대는 꿈에 불과한 삶을 실재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삶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며 환상이다. 그것이 이해의 차이다. 다른 차이는 없다.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 한 뒤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말해보라. 실재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꿈이며 환상이다. 모든 일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것들에 대해 왜 염려하겠는가?
마두카르 :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은 후에도 여전히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란지트 : 그런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마두카르 ; 그러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걱정을 계속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이해와 걱정 모두 삶이라는 꿈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란지트 : 그렇다.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걱정 속에 남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면 그대는 저절로 거대한 힘의 일부가 된다. 그대는 긍극의 힘이 된다. 그대는 궁극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것은 모두 꿈이다.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그러한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이 다 꿈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그는 스승이 된다.
마두카르 : 선생님의 가르침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삶은 꿈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란지트 : 그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만일 그대가 삶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테이불에서 상자를 하나 집어 올렸다.) 이것이 상자이다. 그대는 무엇으로 이 상자를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상자를 태우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꿈의 일부이다. 그대가 보는 것은 진정한 실체가 아니다. 이 상자라는 물체는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가 있는 한 그대는 행동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을 지고의 힘으로 느껴야 한다.
세상의 창조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따라서 파괴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마두카르 : 길을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지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실체를 아는 사람을 만나 진리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란지트 : 그렇다. 아는 사람은 가르친다. 그것을 진실의 가르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누가 존재하는 것이냐는 의문에 대한 설명이다. 그대는 스승이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대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마두카르 :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먼저 머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란지트 : 그렇다. 그리고 나서 들은 것을 체험해야 한다.
마두카르 :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지만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지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란지트 : 이해의 경험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경험이 일어나도록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제자가 가르침을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스승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다. 이해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꿈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한 것은 실체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대가 나의 말을 듣고 있지만 만일 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어떻겠는가? 나로서는 아무 상관없다. 왜 내가 그대의 결론에 대해 걱정해야 되는가?
마두카르 :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의 상태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꿈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그의 무지 역시 괜찮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혹시 구원할 수 있으십니까?
란지트 : 나는 아무도 구할 수 없다.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 모두 꿈의 일부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꿈에서 깨어났으며,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우쳤다. 연극에서 어느 노동자가 왕의 역활을 맡았다고 하자. 배역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연극이 끝나면 다시 노동자로서 일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왕의 거지 역활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자신이 진정한 힘, 지고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 걱정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다음회 계속)
마두카르의 <내가 만난 스승들, 내가 찾은 자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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