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3. 22:36ㆍ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저는 평생 이 내적인 평안과 고요를 찾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만나 뵌 뒤로는 내적인 평안과 고요도 하나의 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까? 이 상태를 얻고자 바라던 것을 그만 두어야 합니까?
란지트 마하리지 : 상태는 실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종 실재는 상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나는 평안을 원한다"라고 말할 때, 그것도 하나의 생각입니다.
평안이 있을 때는 어떤 간섭이 늘 들어 오고, 그러면 평안을 잃습니다.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은 참될 수 없습니다.
어떤 성자들은 평안이 천국의 지복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평안을 넘어서야 합니다. 평안은 마음의 것입니다. 뭔가가 늘 일어나서 그 평안을 깨뜨립니다.
최종적 실재에서는 평안도 없고 그 상대물도 없습니다.
스크린 상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스크린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스크린은 그런 모든 것과 무관합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 곧 실재는 어떤 것도 얻거나 잃은 적이 없습니다. 기저부(토대) 위에 50층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저부는 그것과 무관합니다.
그대가 잠이 들면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이 머무릅니까? 평안은 깨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환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태풍이 허공에서 일어나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결국 그것은 허공에서 끝납니다. 허공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지만 그대는 허공보다도 더 미세합니다.
이것은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스크린이 존재 하듯이 존재합니다.
많은 것들이 스크린 상에서 오고 가지만 스크린으로 오직 스크린으로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그냥 하나의 스크린과 같습니다.
일체가 그대에게 닥쳐오고 사라지지만 그대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평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것은 최종적 상태가 아닙니다.
왜입니까? 일어나는 일과 그대가 경험하는 것들은 하나의 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대를 방해할 수 있습니까?
이 세계는 하나의 긴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무지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실재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평안을 원합니다.
또 그래서 사람들은 주의가 분산될 요인이 없는 평화로운 곳에 가기를 좋아하지만,
그때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평화롭습니까?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저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뭔가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쁠것은 없습니다.
그대가 일체가 참되다고 말할 때는 그것을 죽어라고 쫓아갑니다. 모두가 행복을 쫓아 갑니다.
좋고 나쁜 많은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 옵니다.
그렇지만 그대가 존재하고, 그대는 결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진아는 늘 자아없는 진아입니다.
자아는 에고이며, 최종적 '실재' 안에는 어떤 '나'도 없습니다.
그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그러면 그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참되지 않은데, 누가 남아 있습니까? 그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 부자연스럽게 만듭니다.
그대가 " 나는 평안 속에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평안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의 생각일 뿐입니다.
어떻게 평안이 그 일 수 있습니까?
그는 무념이고,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스크린은 결코 "내가 큰소리로 말하고 노래했다" 거나 "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크린은 그것의 접촉을 받지 않습니다.
이해에 의해, 우리는 그것의 접촉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대가 행위할 때는 무지 속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어떻게 그대를 해할 수 있습니까?
평안은 하나의 개념 혹은 상태입니다. 그와 같이 이해하십시오.
스와미 람다스(17세기 인도의 사마트라 람다스, 다스보드<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원저자)는
" 일체를 해도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그것을 이해하십시오!
울어도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내가 운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는 것은 하나의 상태입니다. 웃는 것도 하나의 상태입니다.
누구도 영구히 웃을 수 없습니다. 그런 모든 생각은 난센스입니다.
그것들은 머무르지 않고, 참되지도 않습니다.
그대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없고, 획득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대가 있지 않습니다.
그대는 결코 자신의 진아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힘주어 말합니다.
"그대는 묘지로 갈 때 결코 그대의 진아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고 말입니다.
몸은 묘지로 갑니다. 그런 모든 관념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면, 그대는 그것을 참되다고 여깁니다.
잠 속에는 평안이 있지만, 깨어나면 그대는 그것이 참되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것도 참되지 않다는 완전한 확신을 마음 속에 가져야 합니다.
모든 금장구는 금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다른 것일 수 있겠습니까?
이름은 그릇된 것인데도 누구나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형상도 그릇된 것입니다.
모두의 안에 있는 실재는 도처에 편재합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보겠으며, 어느 눈으로 그를 바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일체를 잊어버리십시오. 그러면 그가 있습니다.
- 대성 옮김, 스리 란지트 마하리지 대담록 <환(幻)과 실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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