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30. 22:52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진실로, 모든 것(다섯 껍질과 그것들의 투사물인 이 모든 세계)은 에고이다.
그래서 '나'라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곧 '그것은 무엇인가?' 혹은 '이 나는 누구인가?'야말로 다섯 껍질을 포기하고,
그것들을 내버리고, 제거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바가반 라마나는 자기 주시야말로 다섯 껍질을 제거하는 올바른 기법임을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전들은 어떤 목적에서 '탐구'라는 용어를 '아니다, 아니다(neti, neti)'의 방법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는가? '아니다, 아니다'에 의해서는 우리가 본서 제4장 네 번째 문단에서 제시한 시험기준,
- 즉 , " 어떤 사물이 없을 때에도 우리가 '내가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물은 확실히 '나'가 아니다." 라는 기준을 지적(知的)으로 (즉, 간접지를 통해) 구성할 수 없는가?
앞에서 말한 다섯 껍질이나 세 가지 몸에 속하는 '나는 몸이다'라는 그릇된 앎이 존재하는 한,
1인칭에 대해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는 자동적으로 하나의 껍질 또는 하나의 몸
- 즉, 어떤 2인칭에 대한 주의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
그러나 이 시험기준을 사용하면,
그런 모든 주의들은 1인칭에 대한 적절한 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고 자기 주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런 것들은 '나;가 아니라는 지적인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분별에 의해서만 이러한 확신을 얻는데, 이것을 경전에서 '탐구'라고 이름을 붙혔다.
그러면 그와 같이 분별을 하고 난 구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다섯 껍질에 대한 주의가, 설사 그것들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다 해도 어떻게 자기에 대한 주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탐구를 수행할 때는 다섯 껍질 중 어느 것도 주의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자기 자신으로서, 단일한 것으로서, 그리고 이 껍질들의 주시자이자 그것들로부터 초연한 것으로서 존재하고 빛나는, '나'라는 의식에만 우리의 주의를 고정해야 한다.
이제까지 마음이나 지성으로 불렸던 우리의 주의력은 어떤 2인칭이나 3인칭 쪽으로 향하는 대신,
이제 이와 같이 1인칭 쪽으로만 향해지지 않는가?
우리가 공식적으로는 그것을 '향해진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은 향하게 하거나 향해지는 형태의 어떤 '함'의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있음'이나 '존재함'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생각들을 포함한) 2인칭과 3인칭은 우리에게 낯설거나 외부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기울리는 우리의 주의는 '함'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주의가 낯설지 않은 1인칭의 느낌인 '나'에 고정될 때는,
그것이 '기울임'의 성질을 잃고 '있기'의 형상으로 남으며,
따라서 그것은 '함 아님', 곧 무위(無爲)의 성질을 갖는다.
우리의 주의력이 2인칭과 3인칭 위에 머무르는 한,
그것은 마음이나 지성으로 불리며,
그 주의 기울임을 '함'이나 '행위'라고 부른다.
마음이 행하는 것만이 행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의가 1인칭(자기)에 고정되자마자.
그것은 마음, 지성 혹은 에고 의식과 같은 비천한 이름들을 상실한다.
더욱이 그 주의는 더 이상 행위도 아니고,
무위, 곧 '고요히 있음'의 상태이다.
따라서 자기를 주시하는 마음은 더 이상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진아의 의식측면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2인칭과 3인칭들(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
그것은 진아 의식 측면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의 반사된 형태의 마음이다 !
따라서 자기주시는 어떤 '함'도 아니고, 행위가 아니다.
즉, 진아만이 진아를 깨닫는다.
에고는 깨닫지 못한다 !
자기주시, 즉 자기탐구에 대한 불타는 열망을 얻은 마음을 충분히 성숙된 마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제 어떤 2인칭이나 3인칭에 주의를 기울일 뚯이 전혀 없으므로,
무욕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욕망과 집착은 2인칭과 3인칭들에만 속하지 않는가?
'나'로서만 빛나는 의식이 완전하고 진정한 행복의 원천임을 아주 잘 이해한 이 마음이 이제 행복에 대한 자신의 자연적인 갈망 때문에 진아를 추구하므로,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려는 이 강렬한 욕망은 실로 최고의 형태의 헌신이다.
그러한 헌신과 무욕을 통해 그와 같이 충분히 성숙된 마음의 바로 자기 주시야 말로,
바가반 스리 라마나가 가르친 '나는 누구인가?'의 탐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
그러면 적어도 스리 라마나의 길로 들어와서 기꺼이 자기 주시를 하기로 동의한 그런 성숙된 마음이라면,
진아를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아니, 아니, 그것은 자신의 죽을 운명을 개시한 것이다.
자살을 하기로 동의한 그것은(자기주시를 통해) 자기 목을 자신이 희생될 단두대 위에 올려 놓는다!
어떻게? 그것이 2인칭과 3인칭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에서 그것은 '마음'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자기 주시가 시작되자마자 그것의 이름과 형상(마음이라는 이름과 생각이라는 형상)이 상실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마음이 자기주시나 자기탐구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이 아닌 진아의 의식 측면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자기주시도 활동이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적절한 탐구를 통해 내면으로 뛰어들어
진아를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네!
알기는 커녕 죽게 되어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에고의 가치여!
오직, 진아인 아루나찰나에 의해서만
진아가 알려진다네 !
-스리 아루나찰라 벤바, 제 39연-
'내가 있다(I am)'는 느낌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되는 경험이다.
여기서 '있다(am)'는, 의식 혹은 앎이다.
이 앎은 외부적인 어떤 것에 대한 앎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 의식이 '우리'이다.
"우리는 진실로 의식이라네"라고 스리 바가반은 <우빠데사 운디야르> 제 23연에서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있음'(우리의 참된 존재성), 곧 존재(sat)이다.
이것을 '존재하는 것(實在)'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있다'에서 '나'는 존재이고, '있다'는 의식이다.
진아, 곧 우리의 존재 - 의식의 성품이 '내가 있다'는 순수 의식으로서만 빛나지 않고,
어떤 부가물과 혼합되어 '나는 사람이다, 나는 라마다, 나는 이것 또는 저것이다.'로서 빛날 때,
이 혼합된 의식에 에고이다.
이 혼합된 의식은 하나의 이름과 형상을 붙들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나는 사람이다. 나는 라마다, 나는 앉아있다. 나는 누워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몸을 '나'로 착각하고 있고, 그 몸의 이름과 자세를 '내가 이것이고, 내가 이러하다'고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지금 일어난 '이것이다'와 '이러하다'는 느낌이 '내가 있다'는 순수한 의식과 혼합된 것을 '생각'이라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생각이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아무개다.'라는 느낌은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의식은 하나의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있음'의 성품 자체이다.
'나는 이것이나 저것이다'라는 혼합된 의식은 우리의 '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생각이다.
이 생각이 일어난 뒤에야 혼합된 의식(1인칭), 2인칭과 3인칭들에 대한 앎인 저 다른 모든 생갃들이 생겨난다.
1인칭이 존재해야만 2인칭과 3인칭이 존재한다네!
-실재사십송, 제14연-
이 혼합된 의식, 곧 1인칭을 우리의 '일어남' 혹은 에고의 일어남이라고 한다.
이것이 원초적인 사고이다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기는 하나의 사고작용이지만, 있음은 사고작용이 아니라네 !
-자기탐구 11연시, 제1연-
순수한 존재-의식인 '내가 있다'는 하나의 생각이 아니다.
이 의식은 우리의 성품이다.
'나는 사람이다'는 우리의 순수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이와 같이 무엇보다도 우리의 '있음'과 우리의 '일어남' 간의 (즉, 존재와 사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의 탐구에 착수하는 구도자들에게 필수적이다.
-스리 사두 옴 지음, 대성 옮김 <스리 라마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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