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1. 22:10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의심과 복잡한 생각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것이 어떻단 말인가?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이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의심이 갑자기 사라지고는 내면에 깊은 평온을 느꼈습니다.
슈리 푼자 : 그것이 현재의 순간이다. 그대는 현재의 순간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하다가 현재의 순간을 잃었는가?
방문자 : 저는 일어났던 일을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
슈리 푼자 : 너무 가까이 있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 눈은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눈은 그 스스로를 보지 않는다. 이처럼 참나는 마음을 통하여 삼라만상을 본다. 그러나 마음은 참나가 되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방문자 :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슈리 푼자 : 그 방향 내에 있는 모든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가능하다.
방문자 : 두려움이 심할 때 - (손가락을 튕긴다) - 스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슈리 푼자 : 그대의 손가락을 모아서 튕겨 소리나게 할 때,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딱 하는 소리는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소리는 손가락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음으로 나왔다. 그렇게 해 보라. (딱 하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모으고는) 원래 상태로 돌려놓아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대가 행했고, 들었고, 보았고,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을 놓아 버려라. 그때 그대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나에게 말하라. 그대는 무엇을 보는가? 그냥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그대는 어떤 경지에 이르는가?
방문자 : 무(無)입니다.
슈리 푼자 : 아, 그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원상으로 되돌리면 그대는 어디에 이르는가?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에 이른다. 이 틈이 무와 같다. 그대가 전적으로 행복할 때, 이 상태는 무와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십 년 만에 만나서 아주 행복할 때, 그대의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가? 아무런 생각이 없다.
무에 감싸이기 위해서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그대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전혀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다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르다. 이것은 그대의 진정한 본성으로 되돌아 가는 길이 아니다. 그대는 항상 여기에 있다. 그대는 그것을 부인한다. 그대는 그대의 위대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원 자체이면서, 실재 자체이면서, 어떻게 그대가 "저는 이 육체 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 없이 그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대가 가는 곳마다, 누가 거기에 있는가?
그대는 고통 중에서조차도 이 '나'를 잃어버릴 수 없다. "저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라고 그대는 말한다.
떠나도록 하라. 호흡과 호흡 사이에서, 누구 그대에게 더 가까이 있는가?
* * *
방문자 : 무엇이 사람을 태어나게 합니까?
슈리 푼자 : 충족되지 못한 삼스카라가 탄생을 있게 한다.
방문자 : 참나도 그러합니까?
슈리 푼자 : 참나는 탄생되지 않는다. 다만 육체만이 태어나고 죽는다. 그대가 쌓아 놓은 삼스카라가 또 다른 인생을 일으킨다. 이 끊임없는 태어남을 현상세계라 한다. 이것은 고통이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지속된다. 깨달음은 삼스카라를 불사르는 지식의 불이다. 그러면 그대의 탄생과 죽음의 문제는 종말을 고한다.
방문자 : 스승님은 이 몸을 마치 옷처럼 말씀하십니다.
슈리 푼자 : 그대가 '나의'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예를 들어서 '나의 몸, 나의 집, 나의 자동차, 나의 스웨터, 나의 아내'와 같은 것들도 역시 그렇다. 무엇이 다른가? 이 몸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이 몸을 걸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의 마음, 나의 지성, 나의 기억, 나의 옷, 이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인가? 그대는 누구이며, 이것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방문자 : 몸의 경우는 다릅니다. 몸은 스승님의 일부분임에 반해서 자동차, 옷, 스웨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슈리 푼자 : 실재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자 드레스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 그대가 잠이 들 때 드레스는 어디에 있으며, 몸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잠잘 때, 누가 존재하는가? 몸은 그곳에 없다. 드레스도 스웨타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그대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어라. 그러면 그대는 몸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소유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방문자 : 글쎄요, 저는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
슈리 푼자 : 아니다, 아니야! 나는 그대에게 내버려 두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에게 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그대의 스웨타', 혹은 '그대의 바지'라고 말한다면,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매달리는가? 그대는 매달리려고 어디로 달려 가는가?
방문자 : 스웨타로 달려 갑니다.
슈리 푼자 : 좋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라. '나'에게로 가서 매달리고는, 그대가 무엇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나에게 말하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문장에서, '나'는 대상이다. 이 대상에 매달려라. 그대의 마음을 참나에게로 향하게 하고는 그것에 매달려라. 그리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 보라.
그대는 생각을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 되돌아 가게 하고 있다. 생각을 생각 그 자체의 근원으로 되돌아 가게 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몸과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이후에는 다른 모든 것들이 쉬워질 것이다.
먼저 그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을 알라.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 위에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을 보자. 그리하면 우리는 가야 할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란 그대가 지금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지 않은가?
방문자 : 그렇습니다.
슈리 푼자 : 그러므로 찾아내라. 그대의 생각을 '나'에게로 가게 하고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보라.
방문자 : 비어 있습니다.
슈리 푼자 : 아아, 그렇다. 매우 훌륭한 답을 했다. 그러므로 '나'는 비어 있다. '나'의 근원을, 그대 존재의 근원을, 모든 존재의 근원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대는 '나'를 나가 일어난 근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대는 "비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이 법으로부터 우리 더 나아가 보자. 먼저 그대는 빛을 향하였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향하였다. 그곳으로부터, 빔으로부터, 이제 다른 쪽 방향으로, 그릇된 방향으로 향한다. 즉 그대는 몸, 스웨터, 집, 자동차 그리고 아내를 본다. 그대는 천천히 이 텅빔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을 나에게 말하라. 그대는 이제 텅빔으로부터 그것들을 본다.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방문자 : 지금입니다.
슈리 푼자 : 텅 빔은 언제나 지금이다. 그렇다. 그때는 결코 아니다. 자, 이 지금으로부터 걸음을 옮겨 보라. 이 지금으로부터 나와 보라. 그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에게 말하라. 이 순간 너머에,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방문자 : (오랫동안의 침묵) 저는 생각이 오고 있음을 봅니다.
슈리 푼자 : 그것들이 오도록 내버려 두라. 텅 빔 안으로 생각이 들어 온다. 생각이 텅 빔 안에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바다에는 파도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텅 빔 안으로 생각이 몰려 온다. 그것은 무엇인가?
방문자 : 마음 ?
슈리 푼자 : 바다로부터 파도가 일어나고, 머물고, 움직이고 그리고 스러진다.
방문자 :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슈리 푼자 : 그렇다, 텅 빔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물질은 비어 있음이 틀림없다. 바다로부터 일어나는 파도는 그냥 물인 것과 꼭 마찬가지다. 그것은 둘일 수 없다. 이제 텅 빔으로부터 비어 있지 않은 한 생각을 가져와 보라. 그렇게 하고는 그것을 조사해 보라.
방문자 :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슈리 푼자 : 아주 좋다. 그대는 그 일을 해내었다. 그것이 그대의 본성이다. 그것이 그대의 모습니다. 그대는 깨어아야 한다. 그대는 의식이다. 그대는 비어 있다. 그대는 오직 이 순간 내에만 존재한다. 이름과 형상을 볼 때마다 그대는 잠자고 있다. 이름과 형상을 붙히지 않고 이 세상을 바라 본다면 이 세상이 무엇으로 보일까?
순수하고, 행복하고, 오점없이 영원하고, 사랑이고, 그리고 축복인 이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거기로부터 텅빔으로부터 볼 때, 그대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해야 할 것이 없다. 오직 진정한 그대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있다.
우리는 태어 났으며, 몸이며, 그리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다. 우리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그냥 개념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한 개념을 가지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대의 가족, 그대의 사회, 그대의 종교이다.
이 텅 빔이 그대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대가 이 본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제로는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다. 구해할 필요도 없고, 동굴로 갈 필요도 없다.
이 점을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이제까지 나는 그대의 마음의 관점에 서서 그대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대가 텅 빔에 서서 보지 않는다면, 그대는 바다에 있는 파도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파도는 그대의 투사이다.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나는 캔이다"라고 말한다면, 즉시 거기에는 현상 세계가 있게 된다. 그것은 오직 그대의 투사이다. 그대가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대는 텅 빔으로, 의식으로 되돌아 간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세상이 일어난다. 한 생각이 바로 세상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것조차도 그대의 투사이다. 그대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대 아닌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대의 눈과 귀와 손이 그대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세상의 존재방식이다. 새, 꽃, 바위와 같은 모든 존재가 그대이며, 그대의 참나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대가 이 점을 이해한다면 어디에 고통이 있겠는가? 고통을 항상 다른 것으로부터 온다. 그때에만 그대는 고통을 받는다. 그대가 온 존재이고 그리고 이 온 존재가 비어 있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불화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을 이해하라. 그대는 이미 이 상태에 존재하고 있다. 이 상태가 그대의 진정한 본성이다. 그대는 바로 그것이다. 그대는 이미 그대 자신의 본성으로 존재한다. 그대는 이미 그것이다. 그대는 그것의 본성을 성취하거나 획득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방문자 : 우리는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슈리 푼자 : 그렇다. 이 빼앗김은 죽음이다. 그대가 이 모든 것이 나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때는 어떤 빼앗김도, 어떤 과거도 없을 것이다. 그대 자신을 부분으로 나누지 말라. 한계 너머로 그대의 이해를 확장시켜라.
"나는 이런 저런 존재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를 고통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굴레는 그대가 그대 자신을 부분으로 나눌 때에만 일어난다. 그대는 한 부분으로 되고 나머지 부분은 제외시킨다. 그리고 난 뒤, 그대는 그 나머지 부분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나는 바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나는 바다 표면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항상 나는 부서질 까봐 두렵다. 나는 늘 큰 파도가 두렵다. 나는 늘 너무나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바다의 물방울처럼 그대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바다로부터 벗어나려 하거나 바다로부터 도망쳐 나오려 한다면, 아무런 평화도 아무런 안정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바다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과 고통과 두려움이 일어난다.
생각을 일으키는 한 우리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 현상 세계는 "나는 캔이다"라는 생각으로부터 온다. 캔이라는 이름과 온 현상 세계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대는 캔과 현상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가?
캔이 그 근원으로 나아 갈 때, 그때 모든 일이 풀릴 것이다.
방문자 : 저는 제 자신으로부터 빠져 나오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로 인하여 복잡해집니다. 저는 망각햇습니다.
슈리 푼자 : 그래 맞다. 그대에게는 오직 그대 자신이 필요하다. 그대를 볼 거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오직 그대의 투사이다. 그대가 이 거울을 치울 때 , 캔이 어디로 사라지는가?
방문자 :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슈리 푼자 : 그렇다. 그대가 그대의 얼굴을 보고 했던 거울을 치워라. 그 얼굴은 여기에 있다. 이 거울을 내려 놓아라. 그대가 누구인지를 보라. 생각이 일어나는 장소로 되돌아 가라.
나 자신, 텅 빔, 의식, 이것들은 같은 것이다.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이 거기에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찾고 있다. 나는 무엇을 읽으려고 때때로 안경을 찾는다. 안경을 끼고 있으면서도 안경을 찾는다. 사방을 뒤져 보지만, 나는 안경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온갖 것을 보지만 안경을 발견하지 못한다. 안경을 낀 채 찾고 있다. 왜냐하면 안경이 없이 나는 볼 수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안경을 볼 수 없다. 나는 안경을 바낕에서 찾을 수 없다.
그대는 "나는 자유롭고 싶다"를 찾고 있다. 이 생각을 통하여 그대는 자유를 찾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이 생각 그 자체가 그대가 찾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이것은 의식이다 ! (웃음)
-슈리 푼자 법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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