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50)

2021. 10. 12. 21:24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그러면 참나(Atman)가 신이라는 말씀인가요?

 

마하리쉬 : 그대는 어려움을 느낀다. '참나를 아는 것'인 자기탐구는 '수보람(나는 쉬바다)'이나 '소함(나는 그다)' 명상법과는 다른 방법이다. 나는 참나 지식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먼저 그대 자신과 관련되어 있으며, 세상과 신을 아는 일은 그 다음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함' 명상이나 '나는 브라만이다' 명상은 어느 정도 정신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기탐구는 직접적인 방법이며, 다른 명상법보다 확실히 나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자기 탐구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서 더욱 더 깊히 들어가는 순간, 진정한 참나는 그대를 맞아들이기 위해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루어지는 일들은 모두 다른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대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의심과 논의들은, 마치 그대가 잠들었을 때 모든 근심들을 한동안 잊듯이, 자동적으로 잊어진다. 

 

방문자 : 다른 무엇이 그곳에서 저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대가 충분히 발전하게 되면 확신하게 된다. 

 

방문자 : 어떻게 하면 그 정도로 발전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다양한 대답들이 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발전 정도가 어떻든지 간에 자기 탐구는 그 발전을 더 빨라지게 한다. 

 

방문자 : 그것은 순환 농법입니다. "나는 발전했기 때문에 탐구를 잘 할 수 있다. 탐구 자체가 나를 발전시킨다."

 

마하리쉬 : 마음은 항상 이 같은 어려움이 있다. 마음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이론을 원한다. 진지하게 신에게 다가가기를 원하는 사람,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어떤 이론도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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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한 방문객이 명상을 하는 동안에 자신의 상상의 자아와 싸우는 동안 큰 어려움을 경험한다. 그는 가르침을 빋기 위해 스승을 찾아 온다. 

 

방문객 : 저는 명상을 하면서 거짓된 '나'를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마하리쉬 : 어떻게 '나'가 스스로 자기를 없앨 수 있겠는가? 그대가 할 일은 오직 그것의 근원을 찾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대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방문객 : 명상 중에는 마음의 활동이 한 점에, 명상이 대상에 모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생각의 통로들 속으로 흘러 들어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많은 생각들로 산만해지는 마음의 이 습성을 극복하고 생각이 없는 본연의 상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하리쉬 : 명상 동안에 마음을 방황하게 하는 것은 참나가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대상들에 대한 마음의 집착이다. 그러므로 참나 아닌 것들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야 하고, 마음이 자기탐구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대가 "탐구를 하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에 온 마음을 맞출 때, 나머지 모든 생각들은 효과적으로 제거된다. 

 

방문객 : 탐구의 결과로서 '나'는 참나 아닌 것들 즉 몸, 감각, 감각기관들에 의해 지각된 대상들과 본질적인 관계가 없다는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참나 아닌 것을 이루고 있는 바로 이런 것들 뒤로 계속하여 따라 다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이 바릇을 고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아비야사(abhyasa, 꾸준한 수행) 또는 바이리기야(vairagya, 무집차 또는 포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자기 탐구가 한결 같아지고 확신을 통해 포기의 정신이 확고해지면, 그대의 마음은 참나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하는 습성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다. 

 

방문객 : 어떻게 해야 한결같이 탐구할 수 있을까요? 

 

마하리쉬 : 더욱 탐구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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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프라나마야 

 

프라나마야 즉 호흡조절은 모든 요가 수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라마나의 길에서는 그것이 어떤 역활을 하는가? 

호흡과 마음 둘 다는 같은 의식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영적 심장에서 일어나고 영적 심장 속으로 가라앉는다. 

따라서 하나를 제어하면 다른 하나도 제어할 수 있다. 

호흡조절을 통한 마음제어는 명상을 시작할 때, 혹은 마음이 내면에 머물 수 있는 힘을 얻기까지 한동안 유용하다. 

호흡조절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멈추는 방식이 들어 있는 하타요가 수행을 통해 알 수 있다. 

 

라마나는 마음으로 호흡을 지켜보기를 권고한다. 

꾸준히 그렇게 지켜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게 된다. 

호흡조절을 통한 마음의 고요는 일시적이다. 

그것은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나 말의 꼬비를 당기는 것, 

또는 끈으로 소를 잡아매거나 그물로 새를 잡는 것과 같다. 

제어 수단이 일단 풀리면, 마음은 다시 생각들로 채워진다. 

따라서 호흡 조절은 마음을 제어하기 위한 독립적으로 효과적인 수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보조적인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일단 호흡 조절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고요한 마음을 자기 탐구를 통해 내면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마음의 통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마음이 내면으로 움직여 심장의 자기장(磁氣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이다. 

 

 

◎. 진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며 영적인 심장의 과학을 설명한 성자 라마나는 마음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ㅇ. 잠재적인 습성들이 강하여 끝없이 생각에 사로잡히고 대상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ㅇ. 호흡을 조절하여 변덕스러운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은 밧줄에 매인 동물처럼 방황을 멈추게 된다. 

 

ㅇ. 호흡을 조절하면 생각들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면 생각들의 근원에 머물게 된다. 

 

ㅇ. 호흡의 흐름을 마음으로 지켜보면 호흡이 조절된다. 그렇게 꾸준히 지켜보면 호흡이 안정된다.

 

ㅇ. 만일 마음의 힘이 부족하여 호흡을 꾸준히 지켜 볼 수 없다면, 하타요가의 방법을 따라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ㅇ. 내쉼과 들이쉼과 멈춤의 시간 비율을 1: 1: 4로 하면, 호흡이 흐르는 통로들이 정화된다. 

 

ㅇ. 통로들이 정화되면 점차 호흡이 조절된다. 그런 조절이 꾸준해지면 호흡이 자연스러워진다. 

 

ㅇ. 현자는 "나는 몸이다"라는 개념의 포기를 내쉼으로 여기고, 자기 탐구를 들이쉼으로 여기며, 심장 속에 거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가라앉음으로 여긴다. 

 

ㅇ. 마음은 신성한 음절의 반복으로도 통제된다. 그러면 음절들과 마음과 호흡은 하나가 된다. 

 

ㅇ. 마음과 호흡이 하나가 되는 것을 디야나(dhyana)라 한다. 그것이 깊어지고 확고해지면 자연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ㅇ. 의식에 늘 뿌리박고 있는 위대한 존재들과 날마다 꾸준히 함께 하면, 마음이 그것의 근원과 합일된다. 

 

 

                                                                                  -김병채 옮김 <그대 자신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