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21)

2021. 8. 4. 22:27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3) 유무쌍조의 묘오(妙悟)

[본문]

무(無)가 곧 무가 아니고,유(有)가 곧 유가 아니다. 유와 무를 함께 비추니 

묘한 깨우침이 고요하다. 

 

[해설]

경계가 공이지만 무가 아니고, 지혜가 있지만 유가 아니다. 

주와 객, 유와 무의 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의 경지를 요달하므로 그 깨우침이 숙연하다고 한다. 

행정은 " 경계와 지혜가 함께 융합하여 유와 무가 평등하다. 

경에서 '지혜를 설함과 지혜의 자리는 모두 반야라고 이름한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함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혹한 자는 유와 무에 각각 얽매이지만, 깨우친 자는 유와 무를 모두 비춘다. 

미혹한 자는 견해에 능과 소가 있지만, 깨우친 자는 마음에 2취(取)가 없다. 

왜냐하면 진여를 증득할 수 있는 진여(如,진리) 바깥에 지혜(智)가 없고,

지혜에 의해 증득되는 지혜 바깥의 진여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如,객관) 바깥에 진리가 따로 있어서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지혜(주관) 바깥에 진리가 따로 있어서 지혜가 진리를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지혜와 진리, 지혜와 진여, 주와 객,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라는 것을 말한다.

궁극의 무분별지를 지시하는 것이다. 

함허는 이어 주객무분별의 묘오(妙悟)를 이렇게 설명한다. 

"경계의 공을 요달할 때에 공적의 견해가 있지 않고, 지혜가 발현할 때에 발현의 생각이 있지 않다. 

이 경계에 이르면, 진리와 지혜가 일치하고 능과 소가 자취를 끊는다. 

이것이 깨우침이 묘한 까닭이다. 

반대로 심(心)에 능소가 있으면 비록 깨우쳐도 묘한 깨우침이라고 불릴 수 없다. 

소위 '마음에 일념이 있다면, 깨우침이 어찌 과거의 미혹을 넘어서겠는가? 그것이다. 지금은 미혹으로부터 깨우치되 깨우쳐도 깨우친 바가 없기에 '묘한 깨우침이 숙연하다'고 말한다. 

 

[본문]

마치 불이 땔감을 얻어 더욱 치열하게 타는 것과 같다. 

땔감은 지혜를 일으키는 많은 경계(境)에 비유되고, 

불은 경계를 요달하는 묘한 지혜(妙智)에 비유된다. 

 

[해설]

지혜와 경계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불(智)이 땔감(境)을 얻어 치열하게 타는 것(하나가 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불은 땔감이 없으면 불로 타오르지 않고, 땔감은 불이 없으면 땔감이 아니다. 

오직 그 둘이 만나 타오름을 통해 불은 불이 되고 땔감은 땔감이 된다.

그런데 그 둘이 만나 타는 과정은 곧 그 둘이 함깨 둘이 아닌 차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불이 땔감을 태움으로써 불과 땔감이 함께 불타서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행정은 이 비유에 대해 "진실한 지혜가 경계를 비추는 것이 마치 불이 땔감을 태우는 것과 같다.

<대품>에서 '색(色)이 크면 반야가 크다'고 하였다. 라고 말한다. 

지혜가 불에 비유되고, 경계와 색(色)이 땔감에 비유된 것이다. 

함허는 이 비유에다 바른 비유 하나를 더 첨가하여 두 가지 비유로써 설명한다. 

"<비유 ①> 지혜가 경계를 비추는 것은 불이 땔감을 얻는 것과 같다. 불이 미치는 곳에 타지 않는 땔감이 없듯이, 지혜가 비추는 곳에 공하지 않은 경계가 없다. 

<비유 ②> 진리(理)가 지혜(智)로 인해 나타나는 것은 마치 공간(空)이 새(鳥)로 인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공간이 새가 아니면 공간으로 나타날 수 없듯이, 진리는 지혜가 아니면 진리로 드러날 수 없다. 

경계와 지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지혜는 경계가 아니면 지혜로 나타날 수 없고, 

땔감도 불이 아니면 땔감으로 다할 수 없다. 

새로 첨가된 비유 ②에서는 지혜와 진리가 새와 공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새가 공간 속에서 날 수 있는 것은 '경계로 인해 지혜가 있음'을 보여 주지만, 

새가  날아감으로써 공간이 드러나는 것은 '지혜로 인해 경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진리(境)가 진리로 인해 드러나는 측면을 언급한 것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