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 법륭선사의 심명(心銘) 공부(2)

2021. 1. 6. 22:2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본문] 

前際如空, 知處迷宗,

分明照鏡, 隨照冥蒙

一心有滯, 諸法不通,

去來自爾, 胡假推窮

 

과거는 공(空)과 같은데

지(知)하는 곳 있다면 근본에 미혹된 것이나니

뚜렷이 경계(대상) 비추어 보는 행은 

비추어 볼수록 더욱 어두워져서

일심(一心)의 뜻에 걸리게(어긋나게) 되고

제법(諸法: 모든 사물과 법문)에 통하지 못하게 된다. 

가고 옴이 (마음의 出入) 본래 그러하거늘

어찌 따지고 궁구함을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해설]

지(知)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자취를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하면서 동시에 멸하는 것이며,

그 자취는 지나간 것이라 실은 텅 비어서 허공과 같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건대 지(知)하는 곳이 있다면 

이는 근본을 몰라 아직 미혹에 있는 것이다. 

 

대체로 돈법(頓法)이 아닌 점법(漸法)에서는 

어떠한 사물이나 심상(心想) 또는 법상(法相)을 비추어 보는 수행을 한다. 

그러나 인식주관(能 見分)과 인식대상(所: 相分)이 따로 없는 것이며, 

따라서 일심(一心)이라는 뜻에 의하면 그러한 행은 위배되어 

근본에 어긋나는 행을 라는 것이 된다. 

 

그래서 실은 무명(無明)이 더욱 두터워지며, 

모든 사물의 이치와 무량한 법문에 통하지도 못하게 된다. 

선종의 돈법에서는 심성(心性)이 본래 능(能)과 소(所)가 없어 일심(一心)임을 요지한 지라

무엇이 무엇을 관조(觀照)하는 행을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절관(絶觀)이라 하고, 본<심명>의 저자인 우두법륭은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절관론(絶觀論)을 편술하였다. 

 

심성(心性)이 본래 이러함을 알았으니 마음에 이런 저런 생각이 출입거래(出入去來)하더라도 

거(去)한 곳과 래(來)한 곳이 따로 없어 평등일미(平等一味)이고,

거래(去來) 그대로 부동(不動)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거래하는 그대로 걸림이 없다. 

거래하는 마음을 제지(制止)하고자 함도 없고, 

그 거래함에 흔들리거나 염착(染着)됨도 없다. 

 

그래서 거래 출입하는 당념, 당처 그 자리 말고 아무 것도 없다. 

본래 그러하거니 그것을 보고 탓할 것도 어디에 따로 없고, 

그러함을 조정하거나 고치려 할 어떤 다른 것도 없는 것이다.  

 

                   -박건주 역주 <우두법륭선사의 心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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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오기 이전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그것을 안다고 말 한다면 본바탕은 잃어 버리네.

前際如空  知處迷宗

 

만물을 나눠서 비추어 본다면 경계만 만드는 일이니

비추어 보는 족족 따라다니면 멍청해지고 어두워만 진다네.

分明照境  隨照冥濛

 

한 생각이라도 걸림이 있다면               

모든 법이 통하지 못하고 막혀버리나니

一心有滯  諸法不通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므로

생각을 비우려고 쫏아다니며 애쓰는 것은 헛수고 일 뿐일세.

去來自爾  胡假推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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