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1. 23:13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본문]
又問曰, "不道者合道理不,
答曰, 若言合與不合, 亦不離妄想?
또 묻는다.
"부도(不道)한 행을 하는 것은 도리에 합당한 것입니까?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까?"
답한다.
"만약 합당하다고 보거나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면, 이 또한 망상을 떠나지 못한다."
[해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어떠한 생각이든 그 생각의 당처에 즉하면
선악(善惡)과 시비(是非)가 따로 없다.
반대로 당념을 대상으로 이리저리 분별하면 이미 망(妄)이다.
당념이란 본래인식의 대상일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직 당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무엇이 있어 당념이 부도(不道)한 것인가 합당한 것인가를 분별하겠는가?
[본문]
又問 : "躍爲時是?"
答(曰) : "一不爲時是"
또 묻는다.
"때가 되면 망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까?"
답한다.
"조금도 때가 되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해설]
망상이 본래 생긴 바 없어 언제 이로부터 떠나게 됨도 얻을 수 없다.
심성(心性)이 본래 여여(如如) 여일(如一)해서 출입이 없다.
그래서 무엇으로부터 떠난다거나 들어옴이 본래 없다.
공적(空寂)하여 무심(無心)인데 무엇이 무엇으로부터 떠남이 있겠는가.
[본문]
(於是緣門復起) 又問 : "夫言聖人者, 當斷何法, 當得何法 而云聖人?"
答(曰) : "一切法不斷, 一切法不常,一切法不得, 此爲聖人(也)."
(이때 연문이 다시 질문하였다.) 또 묻는다.
"무릇 성인(聖人)이란 마땅히 어떠한 법을 끊고, 어떠한 법을 얻어야 성인이라 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일체법을 끊음이 없고, 일체법이 영원한 것으로 보지도 않으며, 일체법을 얻은 바 없나니,
이를 성인이라 하느니라."
[해설]
당념(當念)을 떠나서 일체법이 없으니 당념이 곧 일체법이다.
그런데 당념은 이미 대상이 될 수 없는지라 이를 끊는다거나 영원한 것으로 본다거나 잡으려 함이 있을 수 없다.
당념 그 자리에서 무엇을 따로 얻을 수 있고, 얻으려 함이 있겠는가.
[본문]
又問 : " 若不斷, 不常, 不得者 與凡(夫)何異?"
答(曰) : "不同, 何以故, 一切凡夫皆妄想 有所斷, 妄想有所得."
또 묻는다.
"만약 (일체법을) 끊음도 없고, (일체법을) 영원한 것으로 보지도 않으며, (일체법을) 얻는 바도 없는 자는 범부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답한다.
"같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범부는 망상하고 있기에, (일체법을) 끊을 바가 있다고 망상하고, (일체법을) 얻을 바가 있다고 망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又問 : "今凡(夫)有所得, 然得與不得有何異?"
答(曰) : 凡(夫)有所得, 卽有虛妄, 聖無所得, 卽無虛妄, 有虛妄者,
卽言同與不同, 無虛妄者, 卽無異與不異."
또 묻는다.
"지금 범부는 (일체법을) 얻는 바가 없는데, 그렇다면 얻는 바 있음과 얻은 바 없음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답한다.
"범부들은 얻은 바 있으니 곧 허망한 것이요, 성인은 얻은 바 없으니 곧 허망하지 않은 것이다.
허망한 이 (범부)는 말로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지만,허망하지 않은 이(聖人)는 다르다거나 다르지 않다거나 함도 없느니라."
[해설]
당념(當念) 당처(當處)에 즉하니 일체의 분별을 떠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념,당처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 깨어 있는 자리인 까닭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당념,당처의 뜻을 알았다면 절대 당념,당처를 관조하거나 염(念)하려 해서는 안된다.
일심의 각(覺)을 대상으로 삼게 되면서 피로(疲勞)하게 되고 이로부터 망령된 유(有)의 현상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능엄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우두법륭선사 원작, 박건주 역주 <절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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