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4. 20:34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65회]
[한문 원문]-백서갑본
故曰 爲道者 非以明民也將以愚之也
고왈 위도자 비이명민야 장이우지야
民之難治也以其知也
민지난치야 이기지야
故以知知國國之賊也
고이지지국 국지적야
以不知知國國之德也
이불지지국 국지덕야
恒知此兩者亦稽式也
항지차양자 역계식야
恒知稽式此謂玄德
항지계식 차위현덕
玄德深矣遠矣
현덕 심의원의
與物反矣乃至大順
여물반의 내지대순
[한글 해석]
고의로 꾸며서 말하길,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 고 하오.
백성들이 (道로써)다스려지기가 어렵게 된 것은,
이러한 일부러 꾸민 거짓 소문 때문이외다.
그러므로 (道가)그런 고의로 꾸민 거짓 지식으로써 나라에 알려진다면,
나라에 해악을 끼칠 것이고,
(道가) 그런 거짓 정보가 아닌 진리로써 나라에 알려진다면
나라에 德이 베풀어지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이 양편을 항상 알아차리는 것이
또한 주시하는 기본법도이니.
주시자의 기본법도를 항상 아는 것,
이것이 그윽한 덕(玄德)이라고 말하는 것이외다.
그윽한 덕은 깊고 아득해서,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해하기에) 어려운데,
오히려 그래서 더욱 큰 도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외다.
[ 해 설 ]
본장은 왕필본에서는 65장, 백서본에서는 28장이며,
곽점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백서본이후에 형성된 글인 것 같읍니다.
가장 오래된 백서갑본과 그 후에 필사되었다고 믿는 백서을본,그리고 왕필본의 내용들이 거의 모두 비슷하지만, 맨 첫문장의 첫글자<故>가 백서을본부터 <古>자로 바뀌어짐에 따라 그 해석내용도 달라진 것 같읍니다.
따라서 본 65장의 해석내용은 기존의 다른 모든 노자도덕경 해석문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었읍니다.
본 필자의 개인의견으로는 이 65장은 노자도덕경 81장 중에서 그 해석 내용이 현대까지 가장 잘못 전해진 글중의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더욱이 이 65장의 내용 중<도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어리석은 바보로 만든다>라는 구절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꾸며진 거짓말로 해석이 되었는데, 기존의 다른 해석서들은 노자가 직접 말한 내용으로 해석을 하였읍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구절은 노자도덕경을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현대의 학자나 지성인들이 노자가 직접 전한 말이라고 믿고, 자주 인용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장의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 보자면,
<도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는 누군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꾸며서 한 거짓말을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도에 의해서 다스리기 어렵게 된 것은 이러한 거짓 얼음알이 정보가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도가 이런 꾸며진 거짓 지식으로 세상에 알려지면 그 거짓 지식으로 인해 나라에 해악을 주게 되며,도가 이런 꾸며진 지식이 없이 옳바르게 진리로써 세상에 알려진다면 나라 전체에 덕이 베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에 대해서 꾸며진 부정적 견해든, 또는 도를 긍정하고 공경하는 자세든, 이 둘을 가지런히 아는 주시자가 있는데, 그 주시자가 되는 것이 구도자로써 머물러야 할 법도라는것입니다.
그 주시자를 아는 것을 바로 현덕(그윽한 덕)이라고 하며,
그 현덕은 물질적인 이 현상계의 관점으로 보면 알기에 어려운 것이지만,
어려움 그 자체가 바로 큰 도리를 이루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해석에 들어가 보겠읍니다.
故曰 "爲道者 非以明民也將以愚"之也(고왈위도자 비이명민야 장이우지야) :고의로 꾸며서 말하길 " 도에 의해서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못하고,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고 한다.
故; 일부러, 고의로,거짓으로 꾸민, 曰; 이르다, 말하다.이를테면, 爲; 하다, 다스리다. 者: ~는 것은.以: ~하도록 한다. 明; 똑똑하다.지혜롭다. 將; 오히려, 愚;어리석다. 之; (영향을) 끼치다,이용하다,사용하다.也: 다른 (사람)
이 한문원문을 현대식의 띄어쓰기와 인용부호를 붙혀보자면,
<故曰 "爲道者 非以明民也 將以愚" 之也>이렇게 구분이 됩니다.
즉, <일부로 꾸며서 말하길 "~~~~~~~~"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은 "道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
따라서 전체문장을 다시 정돈시키면,
<"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고, 일부러 꾸며서 한 말이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소.>이렇게 문장이 연결됩니다.
<故>는 "그러므로, 까닭,이유,옛"등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부러, 고의로 꾸미는 "의 뜻으로 해석을 했읍니다. <曰>은 "말하다, 떠들다.가로되"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말 중에서, <故意로>라는 말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일부러, 의도적으로"라는 뜻으로 쓰고 있죠. 따라서 <故曰>은 "일부러 꾸며서 말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 속어로 <구라>라는 말(隱語)이 있는데, <구라빵 친다>는 "거짓말 한다,속인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이 <구라>라는 속어가 일정시대 때에 노름판에서 일본말의 "속이다(구라마스)" 또는 "어둡다(暗,구라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유래도 그럴 듯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읍니다.
그런데 <故曰>의 중국어 본토발음이 <구야>와 비슷한 발음이 되는데, 이 <고왈>의 중국어 본토발음 <구야>가 한반도에 와서 <구라>라고 소리가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듭니다.
그렇다면 <故曰>이 어떤 사회계층에서는<거짓말 하고 있네, (말)꾸미고 있네>라는 뜻의 남이 말하는 내용을 비꼬며 비판하는 말투로 쓰기도 하고, 동시에 또 다른 사회계층에서는 <故曰>이 "이를테면, 말하자면"이라는 점잖은 말투로도, 한 사회에서 이중의 뜻으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듭니다. 따라서 <故曰>은 "거짓말하다, 꾸며서 말하다, 일부러 꾸며서 말하다"의 뜻이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를 테면, 말하자면"또는 "이런 말이 있는데" 등으로도 쓰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65장에서는 전체 문장의 의미구조로 보아서 <고왈>이 " 일부러 꾸며서 말한다"이라고 해석이 됩니다.
<爲道者>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이라고 해석되죠.
<爲>는 일반적으로 "행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非以明民也>는 "백성들이 지혜롭게 되지 못한다" 또는 "백성들이 똑똑하게 되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將以憂>는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之也>에서 <之>는 "(영향을) 끼친다"라는 뜻이고, <也>는 "다른 사람"의 뜻입니다.
그래서 <之也>는 "~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라고 직역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라는 뜻이므로,이것을 < ~라고 한다>라고 간단하게 축소해도 전체 뜻이 변하지는 않읍니다.
이 글은 백서갑본이 형성되던 춘추전국시대 중기 또는 말기경에 노자의 무위자연 도가(道家)철학을 유가(儒家)나 법가(法家),등 다른 계통의 학자들이 노자도덕경의 표면적인 글자 뜻만을 잘못 이해해서, 도가를 비방하기 위해서 악성 루머를 퍼뜨린 것에 대하여 방어적인 측면에서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듭니다.
그런데 이 65장의 첫번째 문장의 해석이 기존의 다른 백서본 해석서들 내용과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이 되었읍니다.
참고적으로 기존 해석서의 대표적인 해석을 예를 들어보면,
<그러므로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지 않게 하고 어리석게 만들었다고 하네>
또는 <옛 말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게 하지 않고 어리석게 만든다고 하네.>
이렇게 해석들을 하고 있읍니다.
"도인이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똑똑하게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었다"라는 말은 노자도덕경을 잘못 해석했거나, 아니면 다른 유가나 법가계통의 학자들이 노자도덕경을 폄하하기 위해서 일부로 악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읍니다.
노자도덕경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 중에서 예를 들면,
"이원적인 차별심을 내지말라"고 하는 도덕경 구절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상태로 있으라"는 말로 잘못 이해하여, 도인이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똑똑해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바보로 되게 한다"라고 이해한다거나 아예 노자의 도에 대하여 악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것 같읍니다.
노자의 도를 이렇게 알음알이 지성으로만 이해한다면 유위적(有爲的)인 개념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노자의 일원적인 도의 가르침을 직접 체험하려고 하지 않고,이원적이고 상대적인 언어로만 이해하려고 보니, 그 지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엉뚱한 논리와 상상으로 노자의 도를 유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평가함으로서, 악의는 없어도 잘 알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폄하하게 되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읍니다.
또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들 간에 주도권 다툼, 특히 유가(儒家)와 도가(道家)간에 상대적인 경쟁상태에서 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당시 번성한 황노학의 권위를 끌어내릴 목적으로 나쁜 유언비어를 퍼뜨린 실제상황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런데 현시대에서도,노자도덕경에 대해서 좀 안다는 동양 철학자나 지식인(知識인)들도 이 잘못된 내용, "도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는 65장의 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말을 곧잘 실제로 그런 것처럼 잘못알고 인용하는 것을 간혹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 왕필본 기준으로 65장은 이천여년동안 계속 이렇게 잘못 해석이 되어 왔읍니다.
또한 그동안 노자도덕경만을 연구하는 전문학자들조차도 이 문장 해석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것 같읍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노자도덕경이 생긴 이래부터 이 문장이 잘못 해석되어 왔는가를 현재 가지고 있는 자료 범위 내에서 조사해 보겠읍니다.
가장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서본 갑본이 위의 원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조금 더 세월이 지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백서을본입니다.
그 다음에 지금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통용본이라는 것이 왕필본입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글자가 달라진 것을 차례대로 나열해 보겠읍니다.
백서갑본: 故曰 爲道者非以明民也將以愚之也
백서을본: 古之爲道者非以明民也將以愚之也
왕필본 : 古之善爲道者非以明民 將以愚之
위의 세문장 중에서 서로 차이가 나는 글자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것입니다.
백서갑본에서는 <故曰> " 일부러 꾸며서 말하길"이라고 해석이 됩니다.
백서을본에서는 <古之> "옛날에~" 이렇게 해석이 되어,
<古之爲道者>는 "옛날의 도를 행한 사람은~"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이것으로 보자면 백서을본 형성시기부터 이 65장의 백서갑본의<故曰~>이 백서을본의 <古之~>로 글자가 바뀌어서, 그 해석의 뜻이 <일부로 꾸며서 말하길~>에서 <옛날의 도인은 ~백성을 똑똑하게 하지 않고 어리석게 만들었다네>로 아예 바뀌어져 버렸읍니다.
즉 <일부로 꾸민 거짓말>이 <옛날 도인이 진짜로 말씀하신 말>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백서을본의 최초 필사자가 백서갑본의 <故曰~>의 <故>자를 옛<古>자로 잘못 필사된 줄 알고 <古之~>로 아예 고쳐버린 것이 그대로 전송되어 내려 온 것 같읍니다.
또한 백서갑본의 <故曰~>이후의 문장은 인용문, 즉 현대적으로 말하면 " ~~"안에 들어가는 별도문장임을 표시했는데, 백서을본의 <古之~>에서는 그 이후 문장들과 바로 연결이 되어<古之爲道者~>가 되므로, 간접적인 인용문이 직접 말한 것으로 표현이 되어 버렸읍니다.
이것은 노자도덕경 역사상 아주 중대한 <비극적 사건?>이지만, 노자도덕경 역사이래 이천오백여년 동안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사람을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읍니다.
그러면 <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똑똑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 된다>는 말이 무슨 근거에 의해서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을까요?
왜 <故曰>를 기존의 해석서들과 같이 "옛적에 말하기를~ "또는 "그러므로,고로~"와 비슷하게 해석하지 않고, "일부러 꾸민 말"로 특별나게 해석을 했는지,지금 이글을 읽는 분들에게 명확하게 믿을 수 있도록 좀 더 자세하게 그 이유를 밝혀 보겠읍니다.
예를 들어서 왕필본 3장(백서본 47장)에서,
常使民無知無欲也(언제나 백성들은 알아야 할것도 없고 바랄 것이 없도록 한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무지무욕(無知無欲)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처럼 만들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도를 완전히 깨치도록 하여,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완전히 도를 깨쳐서 분별심이 없게하고,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을 정도로 충만감을 갖도록 완전히 도를 깨닫게 하라는 말씀인데,
이 말을 (항상 백성들이 무지무욕하게 만든다)라고 잘못해석을 해서, 백성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만들고, 욕심을 부리지 못하도록 통제한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있읍니다.
또 왕필본 20장(백서본63장)에서 絶學無憂(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말은 학문을 배우지 말고, 완전히 끊으라는 말이 아니고,
좋고 나쁨, 크고 작음, 등 상대적인 분별심으로 시비하고 가르는 마음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며,
그래야지 전체가 하나가 되는 지복(至福)의 道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선불교에서 유명한 게송인 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 첫구절에 나오는,
至道無難(지도무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唯嫌揀擇(유혐간택,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但莫憎愛(단막증애,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洞然明白(통연명백, 통연히 명백하리라)
라는 구절과 비슷한 말입니다.
따라서 노자 도덕경에서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은 똑똑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어진다>라는 말은 원래 노자도덕경에는 없는 말이며, 후대에 누군가가 일부러 꾸며낸 말이거나 노자도덕경을 순전히 이원적인 지식으로 겉으로만 잘못 해석하고 이해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읍니다. .
만일 성인이 자기가 지배하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면, 인류 역사 상에 수많은 별처럼 나타났던 부처나 예수, 수많은 선불교조사들,헤아릴수 없이 많은 이름없는 은자(隱者)들 같은 위대한 각자들이 인류 역사상에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도로 다스리면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든다>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기 때문에,<故>를 <고의로 꾸며서 한 거짓말>이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중국의 여러 노자도덕경의 전문학자들은 백서본 갑본의 <故>자가 을본의 <古>자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읍니다.
그러니 노자도덕경을 전문으로 연구한다는 학자들도 그저 글자 뜻이나 풀이하는 말 그대로 <學者>일 뿐이지 도를 추구하는 <道學者>들은 아닌 것 같읍니다.
만일 백서갑본을 지은 당사자인 그 도인이 안다면 하늘에서 (땅을 치며?)통탄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나온 왕필본은 여기에다 한술 더 떠서 <古之善爲道者>로 개조가 되었읍니다.
<古之善爲道者>는 "옛날에 도를 잘 닦은 도인은~" 이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죠.
게다가 문장 맨 마지막의 <~之也>에서 <也>자마저 빼버렸읍니다.
그래서 해석은 < 옛날에 도를 잘 닦은 도인은 백성들을 똑똑하지 않게 하고,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다.>라고,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읍니다.
만일 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에 관련된 이런 중요 문구를 보자마자 잘못 묘사되어 있다는 것 쯤은 즉각 파악될 수가 있읍니다.
왕필본을 편집한 학자도 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읍니다.
왕필본 이후 이천여년동안 현대까지, 모든 학자,지식인들이 이 65장의 첫문장을 <옛날에 도를 잘 닦은 도인은 백성들을 어리석은 바보로 만들었다>라는 말을 마치 귀중한 진리처럼 대대손손 전송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본 필자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학문이나 동양철학,역사등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엉터리로 전송되어 내려온 엉성한 한문문장들이 무척 많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여하튼 이후의 문장들도 첫문장을 기준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에, 기존 해석서와는 이 65장 전체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民之難治也以其知也(민지난치야 이기지야): 백성을 (道로써) 다스리기 어려워진 것은, 그러한 일부로 꾸며진 잘못된 정보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民; 백성, 之 ; 이르르다.難; 어렵다. 以 ; 때문이다.까닭이다. 其 : 그것(꾸며진 소문), 知; 알다, 알려지다.알다,
<民之難治也>에서 "백성들은 (도로써)다스려지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로 해석이 됩니다.
아마도 중국 전국시대 중기나 말기로써,노자도덕경의 가르침을 기본으로하는 정치사상인 황노학이 쇠퇴하고 나라가 불안한 상태가 되어 왕의 지배력이 약화된 상황에 있었던 것 같읍니다.
<以其知也>에서 <以>는 "~때문이다" ,<其>는 "이것"을 말하는 대명사인데, 위에서 말한 "꾸며진 거짓정보 "즉 요즘말로 "악성루머" 또는 "잘못된 지식"을 말합니다.
<知>는 "알려지다"라고 해석됩니다.
따라서 <以其知也>는 " 그러한 의도적으로 꾸며진 거짓지식(소문)이 알려졌기 때문이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현시대는 개인이 자유롭게 쓸수있는 인터넷을 비롯해서 수많은 보도매체들이 앞다투어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생산해서 보도하는데, 그 잘못된 보도내용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피해를 당할 뿐 아니라, 국가사회 전체면에서도 사회 불안감을 수시로 조장하고, 사회계층이나 조직간에 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꾸며서 사회에 퍼뜨리는 악성 루머와 조작된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심적으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사회 여론을 의도성을 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여 계층 조직간 갈등을 심화시키시키므로써, 사회의 안위에 악영향을 미치고, 모든 사람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불과 몇년전에도 소위 공영방송이라는 데서 일부 젊은 피디 몇사람이 의도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제작한 고발 프로그림을 방송한 후, 인터넷을 통해서 불만여론이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 수만명이 거리촛불시위로 까지 번져서, 집권한지 불과 몇달도 안된 지도층들이 진땀을 흘리며, 국정업무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사회가 불안하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죠.
그 방송 프로그림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로 인해서 나라전체 분위기가 혼란스럽게 돌아가며 대다수 일반시민들이 그 당시에 불안해 하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故以知知國國之賊也(고이지지국 국지적야) ; 그러므로 道가 그런 거짓 정보으로써 나라에 알려진다면, 나라에 해악을 끼칠 것이고,
故; 그러므로,以 : ~으로써 ~ 때문에, 知 : 지식,소문, 알음알이.之; (영향을)끼친다. 賊; 해악, 해치다,그르치다.
<故以知知國>에서 <知國>은 "나라를 맡다, 나라를 다스리다>라고 해석할 수가 있읍니다.
"나라에 알려지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이 문장에서 주어인 <道>가 생략되어 있지만, 해석문에 <道>를 삽입해 넣었읍니다.
도가 꾸며진 거짓 알음알이 정보로써 나라전체에 잘못 알려지게 되면, 그 알음알이 자체가 나라에 해악을 준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전체에 보편적인 덕이 없어지고 개인적인 현세의 이기심,욕망과 생존경쟁만 난무하므로 악과 범죄가 늘어서, 사회가 불안해 진다는 것이죠.
<國之賊也>는 "나라에 해악을 끼친다, 또는 나라에 적이 된다."라고 번역이 됩니다.
여기서 '인의적으로 꾸며진 알음알이 '라는 것은 무위자연적인 도에 대한 부정적 견해 뿐만 아니라, 노자의 무위 사상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철학사상체계나 정치이념등을 말하는 것 같으며, 특히 유가(儒家), 법가(法家)등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以不知知國國之德也(이불지지국 국지덕야): 道가 그런 잘못된 거짓 정보가 아닌 진리로써 나라에 알려진다면, 나라에 德이 베풀어지게 되는 것이오.
<以不知>는 " 잘못된 거짓 정보가 아닌 것에 의해서"라고 번역이 되는데, 바로 노자의 무위자연적인 도와 덕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의 무위자연의 도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면 온 나라가 덕으로 베풀어 진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말없는도의 실천이 온 나라에 퍼지면 덕이 베풀어진다는 것입니다.
恒知此兩者亦稽式也(항지차양자 역계식야) : 항상 양편을 알아차리는 것이 또한 주시하는 기본 법도이다.
恒; 언제나, 此; 이것, 稽;이르다,머무르다.조사하다,헤아리다,견주다,논의하다, 가지런하다.式: 법식,법도, 정도,
稽式; 머물러야 할 기본법도
<此兩者> "이 두가지라는 것"은 인의적으로 꾸며진 알음알이 지식(도의 부정)과 무위적인 道의 실천(도의 긍정), 이 두가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의도적으로 꾸민 도에 대한 부정적 소문과 도에 대한 긍적적 자세,
이 부정과 긍정, 두가지와는 상관없이 이 두가지를 공통적으로 항상 알고 있는 배면의 앎자체, 항상 주시하고 있는 그것이 또한 머물러야 할 기본 법도라는 것입니다.
<稽式,계식>이라는 단어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까다로운데, 전체 문맥으로 보아서 이것은 항상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최종 주시자인 절대바탕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稽>자가 "조사한다,헤아린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式>자의 "법식"의 뜻과 어울려서<稽式>을 "주시하는 기본법도"라고 번역을 했읍니다.
다시 말하면 의도적으로 꾸며진 개념적인 지식이든 무위적인 자연앎이든 두가지를 항상 알고 있는 주시자로써 바탕에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구도인이 도달해야 할 기본법도라는 것입니다.
이 주시자는 모양도 없고, 색갈도 없고, 속성이 없고, 알수는 없으나, 그것이 "있는 것"이죠.
恒知稽式此謂玄德 (항지계식 차위현덕): "주시자의 기본법도를 항상 아는 것이 이를 테면 현덕이라고 부른다.
玄德; 그윽하고 미묘한 덕, 도의 절대바탕, 보편적인 마음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고,크기도 없는 절대바탕은 말없이 항상 저절로 주시하지만,
이원적인 지식으로는 알려질 수가 없읍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저절로 비추지만, 본체는 의식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원적인 앎 넘어 "모름 "속에 있기 때문에 어두울 현(玄)자와 넓을 덕(德)로 표현합니다.
구도자들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바로 전체적이고 자연스러운 앎 그자체인 주시자가 되는 것입니다.자신의 참나가 항상 지켜보는 모양없는 바탕 앎, 즉 주시자라는 것을 깨치면 즉시 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주시자를 안다는 것은 이원적인 앎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시자와 하나가 되어 주시자와 대상이 동시에 사라지며, 전체와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보는 자도 없고 보는 대상도 없는 비이원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개인에고도 사라져서 "무아(無我)"상태가 되는 것이죠.
玄德深矣遠矣(현덕 심의원의) :현묘한 덕은 깊고 아득하며
"현덕은 깊고 멀다"는 뜻은 내면 가장 밑바탕에 있으며, 아득하여 이원적인 앎으로는 전혀 알수없는 신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덕이라는 것은 의식의 근본뿌리를 말하는데, "내가 있다"는 앎의 바탕원리를 말합니다.
이것이 육체가 있을 때는 "내가 있다"는 앎이지만, 육체가 없으면 절대바탕 그자체입니다. 즉 의식의 뿌리인 초원인체를말합니다. 그러나 절대바탕인 <道>는 아니고, 바로 아래인 <德의 뿌리>를 말하는데,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에겐 이것을 道라고 해도 틀리지 않읍니다.
노자도덕경에서 <道>는 절대바탕, <德>은 보편적 의식을 말하는데, <玄德>이란 보편적 의식, 의식의 뿌리인 초원인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與物反矣乃至大順(여물반의 내지대순) ; 이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해하기에 어렵지만, 그래서 오히려 큰 도리를 따르는 것이네.
<與物>은 <물질세계와 같은 동아리로 보자면>, <감각으로 알수있는 이 현상계의 관점에서 보자면>이라는 뜻입니다.
현상계란 우리가 감각적으로 접할수 있고, 의식을 통해 알수 있는 이 물리적인 감각세상을말합니다. <反矣> "(이해하기)어렵다" 또는 "반대된다."
이 현상계에서는 육체 외부에서 감각적으로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져야 실재한다고 여기지만,
도의 세계는 그런 이원적인 현상세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면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알수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이 현상세계는 항상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며 변하고, 주객 이원화된 육체 외부의 대상세계이지만, 도의 세계는 주객이 하나가 된 일원적인 내면의 항상 움직임이 없는 바탕상태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변화하는 이 현상세계는 비실재(非實在)한다고 말하며,
움직임 없고 모양없는 내면의 변하지 않는 진아를 실재(實在)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도의 내면바탕은 이원화 감각세상를 아는 것처럼 대상으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고,
그 주객 이원화 앎의 구조를 초월하여, 전체 우주와 내가 일체가 된 참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위자연의 도이며, 큰 도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본 노자도덕경 65장의 해석이 다른 기존의 해석내용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었는가, 비교해 보기 위해서 대표적인 해석사례를 두가지 선택해서 여기에 게시해 보겠읍니다.
먼저 한문 원문이 동일한 백서갑본의 다른 해석문을 보겠읍니다.
-기존 해석서의 백서본 해석 일예-
<그러므로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지 않고 어리석게 만든다고 하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아는 게 많기 때문이네.
그러므로 '앎'으로 다스리는 것은 나라에 해가 되고,
'알지 못함'으로 다스리는 것이 나라에 득이 되네.
항상 이 두가지 원리를 아는 것이 또한 치국의 법도이니
항상 이 법도를 잘 알면 현묘한 덕을 지녔다 할 수 있네.
현묘한 덕은 그윽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한 것.
상식과 반대되는 것 같지만, 결국 '크게 따름'에 이르게 되네.>
다음은 기존 해석서들의 왕필본 원문과 해석 일례를 보겠읍니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稽式
常知稽式是謂玄德
玄德 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옛날에 도를 잘 행하였던 사람은(통치자는) 백성을 총명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지혜(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꾀)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도적이고,
지혜(꾀)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福)이다.
이 두가지를 아는 사람은 또한 한결같은 원리를 알게 된다.
언제나 한결같은 원리를 아는 것을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한 덕은 깊고 먼데까지 미친다.
만물과 더불어 자연스러움으로 돌아온 후에야 (백성들이) 크게 따르는 경지에 이른다.>
위에 예시한 것 말고도 기존의 모든 해석서들의 내용을 보면 한결같이 옛날 도인은 백성들을 바보처럼 어리석게 만들었다고 해석하고 있읍니다.
또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의 도둑이 되고, 지혜가 없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복을 받는다고 해석을 했읍니다
그러나 본 필자의 해석에서는 " 道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백성들을 지혜롭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게 만든다"라고 한 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꾸며진 거짓말이라는 것을 여기서 명확하게 밝혔읍니다.
이렇게 기존의 모든 주석서나 해석서들과는 전혀 다르게 반대방향으로 해석이 되었읍니다.
각개 독자들의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틀린 것 같기도 하겠지만,
본 해석서를 읽어본 분들은 기존의 주석서나 해석서들의 해석이 맞건 틀리건 ,
또는 이번에 본 필자가 기존의 다른 해석서들과 다른 내용으로 발표한 내용이 맞건,틀리건 상관없이,
읽는 분 자신들에게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 맞다,저것이 틀리다>, 긍정과 부정을 가지런하게 알고 있는, 그 앎의 배후에서 항상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모양없고 속성없는 공통된 주시자를 각자가 스스로 자각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모처럼 귀한 시간을 소모해가며 이 글을 읽은 보람을 다소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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