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66장, 자신을 낮추면 다툴 일이 없소이다.

2011. 10. 22. 19:30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66회]

[한문 원문]-곽점본

 

江海所以爲百谷王

강해소이위백곡왕

以其能爲百谷下

이기능위백곡하

是以能爲百谷王

시이능위백곡왕

 

聖人之才民前也 以身後之

성인지재민전야   이신후지

其才民上也 以言下之

기재민상야  이언하지

 

其才民上也  民弗厚야

기재민상야  민불후야

其才民前也 民弗害也

기재민전야  민불해야

 

天下樂進而弗(言占) 以其不爭也

천하낙진이불점      이기불쟁야

故天下莫能與之爭

고천하막능여지쟁

 

[한글 해석]  

강과 바다가 뭇 시냇물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기를 뭇 시냇물보다 낮출수 있기 때문이니 

그래서 뭇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오. 

 

성인은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나서면

자신은 뒤로 물러서기 때문에,  

재능있는 백성은 (지위가)높아지나

더불어 말은 낮추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 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아지지만

일반 백성들은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그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나서도

더불어 일반 백성들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외다. 

 

세상이 순조롭게 나아가면서도 시끄럽지 않는 것은

이렇게 다툼이 없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세상에 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소이다.  

 

[해 설]

이번 장은 왕필본에서는 66장, 백서본에서는 29장입니다.

이 66장은 처음에는 문장이 비교적 평이하다고 여겨져서 기존에 다른 해석내용과 별 다름없이 비슷하게 해석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기존 해석서들의 내용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는 과정에서 전체문장이 뭔가 좀 부조화스러워 보이고,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이치에 안맞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서, 곽점본 원문을 기준으로 각 판본의 한문원문과 기존 해석서들을 다시 세밀하게 재검토해 본 결과 역시 백서본 원문 자체부터 잘못 전수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단 한 글자인 '재주<才>'자가 '있을<在>'자로 잘못 읽혀졌기 때문에 원래의 곽점본 내용이 백서본 시기부터 지금까지 왕필본을 포함하여 해석내용이 잘못 전달되어 온 것 같읍니다.

 

곽점본의 전체 내용을 간추려 보면,

강과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모든 시냇물이 모여들 듯이,

성인도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만물을 수용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성인은 재능있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자신은 뒤로 물러서 주기 때문에

그 재능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아져도, 성인의 물러섬을 본받아서, 

오히려 일반백성들에게 말을 낮추며 공손하게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게 되더라도 일반백성들이 우대해야 할 부담감을 갖지 않기 때문에,그 재능있는 백성이 앞장서 나서지만 일반 백성들은 꺼려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기분좋게 잘 진행되어 나가면서도 시끄럽지 않은 것은 아무도 다투려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위나 권력을 우대하거나 탐욕하는 사람도 없고, 높은 자리를 시기하거나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도 없는, 모두가 평등하고 욕심이 없는 사회는 다툼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를 낮추면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에 의해서 정리된 곽점본 문장은 위와 같이 해석이 되지 않읍니다.

즉 원래의<才民>을 <在民>으로 바꾸어 해석해서 읽으므로써,

"성인이 백성의 앞에 있으면 자신은 뒤로 물러나고,

성인이 백성들의 위에 있으면 말을 낮추며,

그러므로 성인이 백성의 앞에 있어도 백성들이 해롭지 않게 여기고,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라고 해석들을 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 뒤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백서본에서는 좀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읍니다.

여기서도 재능있는 백성(才民)은 아예 빠져 버렸는데, 일부 문장의 해석 내용을 간단히 보면,

"성인이 백성의 위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면 백성은 성인이 앞에 있어도 해롭게 여기지 않고,

위에 있어도 무겁지 않게 여긴다."

여기서 더욱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은 <성인이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의도적인 유위행(有爲行)의 언구(言句)입니다.

노자의 도는<무위,無爲>가 핵심인데,

오히려 백서본 왕필본에서는 <반드시~해야 한다>는 <유위행,有爲行>으로,

의도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어 있읍니다.

왕필본 역시도 백서본 문장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애초에 백서본 형성 시기부터 곽점본 원문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필사과정에서 글자가 바뀌어서 전해 내려 왔고,

곽점본 발굴 후에도 곽점본의 글자를 읽으며 정리하던 도덕경 전문 연구학자들이 곽점본 글자의 '재주<才>'자를 백서본과 비슷한 뜻으로 맞추기위하여 '있을  <在>'자로 바꾸어서 해석한 것이 원래의 곽점본 도덕경 66장을 잘못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노자 도덕경을 공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백서본,  왕필본에서 원문이 잘못 되어 있는지를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겠지만,

본 해석서의 내용을 읽어 보시면, 기존의 백서본이나 왕필본의 해석 내용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읽는 분 스스로 쉽게 확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江海所以爲百谷王(강해소이위백곡왕);강과 바다가 뭇시냇물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江海;강과 바다. 所以; 까닭은, 爲 ; 되다. 百谷; 뭇계곡물, 뭇 시냇물.

강과 바다는 모든 시냇물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세상의 모든 실개천 물이 한군데로 모여드는 곳, 큰강과 바다가 모든 실개천물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以其能爲百谷下(이기능위백곡하); 자기를 뭇시냇물보다 낮출수 있기 때문이니

 以; 까닭, 때문이다. 其; 강과 바다. 百谷下; 뭇계곡물보다 낮추다. 

강과 바다가 모든 육지의 시냇물이나 계곡물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저절로 흘러내리며 모이게 됩니다. <谷>이란 단순히 "산골짜기"가 아니라,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을 말합니다.

 

是以能爲百谷王(시이능위백곡왕); 그래서 뭇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소.

 是以; 그래서,그러하기 때문에, 能爲; 할 수가 있다. 百谷王; 뭇시냇물의 왕

모든 시냇물이 모여드는 곳인 강과 바다가 뭇시냇물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위의 세 구절이 뜻하고 있는 내용은 강과 바다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음은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미, 즉 에고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이 흐르고 바다가 있는 곳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세상의 물이 모두 이 강과 바다로 흘러 내립니다.

따라서 자기를 가장 낮출수록 전체가 되며, 만물을 포용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읍니다. 

위의 세문장은 곽점본,백서본,왕필본등 모든 판본의 문장이 비슷합니다.

 

聖人之才民前也 以身後之(성인지재민전야 이신후지) ; 성인은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나서면 자신은 뒤로 물러서기 때문에. 

聖人; 깨달은 도인, 之; 가다. 才民; 재능있는 백성, 前; 앞에, 以; ~때문에 ,身; 자신, 後; 물러나다. 뒤로 간다.

 

성인은 재능있는 사람이 있으면 앞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 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재능있는 사람에게 모든 권력과 의무를 위임하는 것으로써, 모든 일을 재능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래 곽점본을 처음으로 주석하는 학자들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원문을 읽었읍니다.

원래 곽점본 글자는 <聖人之民前也>로 되어 있는데,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은 <聖人之民前也>로 읽었읍니다. 

도덕경 전문학자들이 곽점본 문장을 이렇게 읽은 까닭은 그 이전에 발굴되었던 백서본 문장과 비슷하게 뜻을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才>자를 <在>자로 바꾸어 읽고 해석을 했읍니다.

즉  '재주' <才>자를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은 '있을' <在>자로 바꾸어서 정리를 해놓았읍니다.

따라서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이 재정리한 문장은 <聖人之在民前也,성인은 백성의 앞에 서면~>으로 변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원래의 곽점본에 나타난 <才>자 그대로 해석을 했읍니다.

 

두번째 문장 맨 앞에 있는 "써<以>자"는 "~때문에"로 해석하여, 전체문장이 원인구로써 묘사됩니다. <身>은 단순히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인은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있으면, 자신은 뒤로 물러서기 때문에~>라고 원인적인 문장으로 해석이 되어야, 다음 문장의 결과구와 의미적으로 조화롭게 연결이 됩니다.

 

백서본 문장을 보겠읍니다.  

이 문장은 원래 곽점본 문장과는  그 아래 문장과 순서가 뒤바뀌었읍니다.

[其先民也 以其身後之;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이 백서본 문장부터 곽점본의 한문 원문자체가 많이 바뀌었읍니다.

특이한 것은 앞의 문장의 '바랄<欲>'자와 뒤의 문장이 '반드시<必>'자가 새로 삽입되었는데,

이것은 노자의 무위적인 문장이 완전히 강제성을 띈 유위적인 문장으로 변형이 되어 있읍니다.

이것도 백서본 필사자들이 곽점본의 문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결과를 좀 더 명확하게 묘사하기 위하여 유위적인 형태로 글자와 내용을 바꾸어서 임의대로 변형한 문장입니다.

노자의 도는 "무위적인 것"이 기장 중요한 핵심인데,

백서본에서는  "바라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유위적인 행위"로 변형시키므로서,이미 백서본 시대부터 원래 노자의 도를 잃어버린 것 같읍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백서본이 유위적인 말투로 변형된 것은 그 당시 유행한 황노학(黃老學)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지만, 단순히 그런 시대적인 배경 뿐 아니라, 이미 인간사회에서 무위적인 도는 잃어버리고, 간혹 말로만 도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논의할 뿐이며,

오로지 유위적인 외면의 물질적 탐욕만을 추구하는 시대로 전락되었다고 볼 수가 있읍니다.

 

왕필본은,

[欲先民 必以身後之 ; 백성들 앞에 있고자 하려면 반드시 자기 몸은 뒤로 해야한다]

이 역시 백서본과 같이 능동적인 유위행으로 묘사가 되어 있으므로, 노자도덕경의 무위적인 측면에서 보면 잘못 지어진 문장입니다.

의미적으로 백서본 문장과 별로 다른 것이 없읍니다.  

 

其才民上也 以言下之(기재민상야 이언하지); 그 재능있는 백성은 (지위가)높아지지만, 더불어 말은 낮춰서 하는 것이오,

其; 그, 才民; 재능있는 백성. 上; 위에 있다. 높아지다. (지위가 높아지다) 也; ~지만, ~으나.

以; 더불어,하다. 言; 말, 下; 낮추다,공손히 하다.

 

앞문장에서 성인이 정치일선에서 물러서고, 재능있는 백성에게 높은 직책을 맡기고, 성인자신은 뒤로 물러나기 때문에, 그 똑똑한 백성의 지위는 높아지지만, 말은 공손하게 낮추어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 문장은 그 앞의 문장의 결과구(結果句)라고 볼 수 있읍니다.

따라서 <以>자를 "더불어"라고 해석했읍니다.

왜 이 사람이 직위는 높아졌는데 말을 공손하게 낮추는 것일까요?

바로 앞에서 성인이 뒤로 물러나고 자신을 높혀서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성인의 겸양한 자세를 그대로 본 받아서 자기도 성인을 따라서 백성들에게 말을 공손히 하고 자신을 낮춘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聖人>이 주어가 아니라, <그 재능있는 백성,其才民>이 주어가 됩니다.

여기서 <其>는 <聖人>에 대한 대명사<그>가 아니라, <재능있는 백성> 앞에 붙는 강조성 지시대명사<그>입니다.

 

이 문장도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이 <其在民上也 以言下之>라고 한문자를 정리해서

그 문장을 " 성인이 백성의 위에 서면 말을 겸손하게 하네."라고 해석들을 했읍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장은 주어가 <성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문장에서 그 결론적인 내용이 백성들간에 <다툼>이 없는 것이 주제이므로,

성인으로부터 통치를 위임받은 재능있는 지도자급 백성이 성인을 본 받아서 겸양해진다는 내용이 좀 더 설득력이 있읍니다.

따라서 위의 문장의 주어는 <성인>이 아니라, < 그 재능있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백서본 문장을 보겠읍니다.

이 문장은 곽점본과 비교해서 그 순서가 위의 문장과 서로 바뀌었읍니다.

[是以聖人之欲上民也 必以其言下之 ;그러므로 성인은 백성의 위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곽점본을 필사해서 백서본을 만든 사람은 완전히 도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인 것 같읍니다.

원래 곽점본의 문장은 무위적인 수동성의 문장인데, 이 문장은 완전히 적극적이고 유위적인 문장이 되어 버렸읍니다.

즉 바랄 <欲>자와 반드시<必>자를 집어 넣어서, 성인이 의도적으로 남의 위에 올라서려면 가식적으로 말을 낮추는 꾀를 부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무위적인 노자 도덕경을 완전히 욕되게 하기 위해서 망쳐논 문장입니다.

이 백서본을 필사한 사람이 곽점본의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나름대로 문장을 유위적으로 변형했다는 것은 도덕경 역사상 아주 잘못된 큰 무지를 저지른 것입니다.

 

왕필본 역시도 백서본과 마찬가지로 능동적인 유위적 측면으로 변형되어 있읍니다만,

백서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문제는 후대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점을 바로 잡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만 했다는 것입니다.

왕필본은,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그러므로 백성보다 위에 있으려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한다] 

라고 되어 있어서, 백서본의 유위적인 묘사와 같은 문장입니다.

 

其才民上也 民弗厚야(기재민상야 민불후야) ; 그 재능있는 백성은 (지위가)높아 지지만, (일반)백성들은 (우대해 주어야 할)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厚; 두껍다,두텁다,짙다,우대하다, 

其才民上也; 그 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아지지만,

여기서 어조사<也>는 "~지만"이라고 해석이 됩니다.

일반백성 중에서 재능있는 백성을 성인이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주요직책에 임명해서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의 통치권을 위임하여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民弗厚也; (일반)백성들은 (높이)우대해 줄 부담감을 갖지 않는다.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임명한 그 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아져도, 성인에게 배운 겸양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서 말을 하고, 일반 백성들도 그 지위높은 사람에 대해서 우대해줄 부담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며, 지위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안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지위나 권력이 높아도 특별하게 대접받는 것도 아니므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성들 간에 다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다음 문장에 대한 원인구(原因句)이므로, <以>자를  '~ 때문에"라는 끝맺음으로 해석했읍니다.

 

이문장을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은 <其在民上也 民弗厚也>로 읽어서,

그 해석은 "백성은 성인이 위에 있어도 무겁게 여기지 않고" 이렇게 <성인>이 주어가 되어 버렸읍니다.

<才民>이 주어가 되느냐, <聖人>이 주어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크게 달라집니다.

 

백서본 문장을 한번 보겠읍니다. 이문장은 곽점본과 위,아래의 문장순서가 바뀌어 있읍니다.

<居上而民弗重也>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은 무겁게 여기지 않네"

성인이 백성들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부담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인데, 원래 곽점본에서는 성인이 아니라, 재능이 높아서 지위가 올라간 지도자급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도 <성인>을 주어로 하기 때문에 잘못 전달된 문장입니다.

 

이 66장에서 주장하는 주요 주제는 "나라에 다툼이 없음"인데, <성인>과 <일반 백성들>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지위가 높아진 재능있는 <지도자급 백성 과 일반 백성들 사이의 다툼이 없음>을 묘사하려고 했던 글입니다.

그런데 백서본에서부터 이 재주<才>자를 있을<在>로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성인>과 <일반백성 사이의 다툼없음>으로 그 의미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곽점본 학자들이 <才>자를 <在>자로 잘못 읽은 것은 곽점본보다 먼저 발굴된 백서본의 원문을 참조하여 비슷하게 읽었기 때문에 이렇게 변형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원천적인 오역(誤譯)의 원인 제공자는 백서본의 원문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노자도덕경의 전수자들이 스스로 노자도덕경의 순수한 원래 의미를 잘못되게 왜곡시킨 것이죠.

 

왕필본의 문장을 보겠읍니다.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 그래서 성인은 백성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백성들이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이 왕필본도 그 뜻은 백서본과 비슷하지만, 글자를 좀 더 명확한 뜻으로 바꾼 것 같읍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통용본이라고 하는 것은 이 왕필본을 번역한 것인데, 이 66장만 보아도 왕필본이 원래 곽점본의 내용과는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읍니다. 

 

其才民前也 民弗害也(기재민전야 민불해야) ; 그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있어도,더불어 일반 백성들은 꺼려(시기)하지 않는 것이오.

害;해치다,꺼리끼다.시기하다.해롭다.

 

<其才民前也> "그 재능있는 백성이 앞에 있지만"

성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재능있는 백성'이 일반 백성의 지도자로서 앞에서 다스린다는 것이죠.

성인이 일반 백성들 앞에 나선다는 말이 아닙니다.

<民弗害也> "(일반)백성들이 꺼려(시기)하지 않는다"

성인으로 부터 위임받아 통치하는 지도자에게 일반 백성들이 질투나 시기심 때문에 해꼿이를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재능있는 지도자급 백성>과 <일반 백성>들 사이가 평등해서, 지위가 높다고 해서 특별나게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일반 백성들을 지도하기 위해 앞장 선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질투를 하지도 않으며, 요즘 정치인들 처럼 언론을 이용해서 중상모략같은 다툼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재능있는 지도자 백성>은 성인의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자세를 그대로 본받아서 백성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공손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그 앞의 문장에 대한 결과구(結果句)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以>자를 "더불어~"라고 해석했읍니다.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은 이 문장을 <其在民前也 民弗害也> 하고 읽어서 그 해석은 "성인이 앞에 있어도 백성들은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해석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첫번에 딱 한글자를 잘못읽는 통에 전체적으로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읍니다.

 

백서본 문장을 한번 보겠읍니다. 이 문장은 곽점본의 위 아래 문장이 순서가 바뀌어 있읍니다.

<故居前而民弗害也> "그러면 백성은 성인이 앞에 있어도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원래 곽점본의 이 문장의 요지는 <지위가 높아진 재능있는 백성>과 <일반 백성들>사이의 다툼이 없다는 것을 묘사하려고 했던 문장 인데, 백서본에서는 <지위가 높아진 백성>은 아예 빠지고, <성인>과 <백성>간의 다툼이 없다는 내용으로 바꾸어 버렸읍니다. 따라서 전체 문장의미가 방향이 바뀌어져 있읍니다. 

 

왕필본은 <處前而民弗害> "성인이 앞서있지만 해치지 않는다"

이 문장도 백서본 문장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백서본에서 잘못된 내용이 대대로 전해 내려와서 지금시대에 까지 이르른 것입니다. 

 

天下樂進而弗(言占) 以其不爭也(천하낙진이불점 이기불쟁야) ; 세상이 순조롭게 나아가면서도 시끄럽지 않는 것은 이와같이 다툼이 없기 때문이외다. 

(言占);(점) 수다스럽다,시끄럽다.

天下藥進: 세상이 즐겁게 나아가면서도, 而弗(言占); 시끄럽지 않은 것은.

以其不爭也; 이와같이 다툼이 없기 때문이오.

천하가 즐겁게 나아간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인은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고,

재능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아져도 아래 백성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고,

그래서 일반백성들은 권력이나 지위를 바라지도 않고,시기하지도 않으므로 

위와 아래를 막론하고, 전체 백성이 욕심이 없기 때문에,

모든 나라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 간에 다툼으로 시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 문장에서 (言占)자는 "점"이라고 읽는데, 왠만한 한자사전에는 잘 나와 있지 않고, 콤퓨터에도 입력이 안되는 요즘 쓰지 않는 한자입니다.

이 (言占)점자는 원래 곽점본의 글자인데,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이 백서본과 같은 '싫어할<壓>'자로 읽어서 해석했읍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대로 고대 문자인 (言占)으로 해석했읍니다.

(言占)점자는 "수다스럽다, 회학질 하다,시끄럽게 떠든다"라는 의미가 있읍니다.

그리고 <以其不爭也>에서 다툴<爭>자는 원래 곽점본에는 고요할<靜>자로 되어 있읍니다만,

곽점본 정리조 학자들이 다툴<爭>자로 읽었으며, 전체 문장 의미로 보아서 <爭>자로 읽는 것이 타당한 것 같아서 이를 그대로 따랐읍니다.

 

곽점본 정리조학자들에 의해서 결정된 문장은 <天下樂進而不壓 以其不爭也> "세상사람 모두가 기꺼이 받들며 싫증내지 않는 것은, 그와같이 다툼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해석을 했읍니다.

곽점본 원본 글자인 '수다스러운<言占>'점자를 '싫어할<壓>'자로 바꾸어서 해석을 했읍니다.

그러나 다툼으로 인해서 "시끄럽다"와 "싫어한다"는 완전히 그 뜻이 다르죠.

따라서 이 문장도 완전히 잘못된 해석으로 전해 왔읍니다.

 

백서본 문장을 보면,

<天下樂推而不壓也 非以其无爭與?"> "세상사람들이 모두 기꺼이 받들며 싫증내지 않는 것은 성인이 백성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백서본에서는 완전히 문장의 의미가 곽점본과는 다르게 변형되어 있읍니다.

아마도 백서본 필사자가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의미로써 글자를 바꾸어 쓴 것 같읍니다.

더우기 성인과 백성이 다투지 않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성인을 기꺼이 받들어 모신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문문식 강조법을 써서,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반문 어조로 문장을 변환시켰읍니다.

그러나 원래 곽점본의 뜻과는 방향이 전혀 틀리게 표현하고 있읍니다.

왕필본도 백서본과 같이 문장이 거의  동일하게 잘못 전달되어 있읍니다. 

 

故天下莫能與之爭(고천하막능여지쟁): 그러므로 세상 누구도 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없소이다.

즉 맨 처음에는 성인이 재능있는 백성을 앞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서 낮추고 있기 때문에,이를 본 받아서 재능있는 사람은 지위가 더욱 높아졌지만, 오히려 백성들에게 공손하게 자신을 낮추게 되고,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히 올라가더라도  일반백성은 우대해줄 부담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 위임받은 지도자가 백성이 앞에 나서더라도 일반백성은 꺼려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아가면서도 나라가 시끄럽고 혼란스럽지 않은 것은 백성들간에 이와같이 다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관직에 있다고 해서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고, 지위나 권력에 대한 시기심도 없는 무욕의 평등한 세상에서는 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與件)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자의 도에 의해서 무위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개인적인 일상 삶을 지혜롭게 살아나가는 요령으로써, <항상 자신을 낮추면 다툴 일이 없다>는 간단한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직접 실천하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므로,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교훈이 될 수 있을 것 같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