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5. 19:37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68회]
[원 문]-백서본
善爲士者不武
선위사자부무
善戰者不怒
선전자불노
善勝敵者不與
선승적자불여
善用人者爲之下
선용인자위지하
是謂不爭之德
시위부쟁지덕
是謂用人
시위용인
是謂天古之極也
시위천고지극야
[한글 해석]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도인이라면 무력을 쓰지 않소.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싸우는 것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오.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적을 이기는 것은 서로 맞부딪치지 않는 것이오.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인재를 쓰는 것은 자신을 아래로 낮추는 것이오.
이것이 다툼이 없는 덕(德)이라고 말하는 것이외다.
이것이 인재를 쓰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깊은 도의 본바탕에 이르른 것이오.
[해설]
이번 68장은 왕필본에서는 68장, 백서본에서는 33장에 해당합니다.
곽점본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장이며, 백서본과 왕필본 기타 본에 모두 있는데,
백서본과 왕필본의 원문 차이는 글자 몇개가 다른 것 이외에는 거의 비슷합니다.
전체 내용을 간추리면,
있는 그대로의 절대본체에 안정된 도인은 선한 마음을 지니고서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않으며,
적과 전쟁에 임하드라도 그 선한 마음은 절대로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또한 맞부디쳐서 직접 싸우지 않고 지혜를 써서 이기며,
인재를 쓸 때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올려 주는 겸양함을 낸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다툼이 없이 도량이 넓은 덕과 자기를 낮추는 겸양함을 갖추었다면
이 상태가 바로 가장 깊은 도의 궁극에 이르른 것이라고 칭송하고 있읍니다.
이 장은 궁극에 이른 도인이 전쟁에 임하게 되면 어떻게 전쟁을 치루는가를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읍니다.
善爲士者不武(선위사자부무) ;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도인이라면 무력을 쓰지 않소.
善; 착하다,선하다. 爲; 행하다. 者; ~은, ~이면. 武;무력
<善>자는 보통 "착하다"라는 뜻으로 "惡"의 상대적인 뜻이지만,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善>은 "善,惡"의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일원적인 절대본체에 안정된 도인의 '전체적인 순수한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노자도덕경에서 이 <善>자가 나올 때는 단순히 "착하다" 또는 "좋다" 또는 "가장 잘한다"등의 상대적인 뜻으로 번역하기에는 그 원래 뜻을 전달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善>자 뒤에 나오는 문장에 따라서 일원적인 순수의식의 뜻으로 적절하게 선택해서 써야 하는데, 여기서는 여러가지 고심 끝에 "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이라고 번역을 했읍니다.
"있는 그대로"는 도의 절대 본체, 절대바탕을 가리키며, <선함>은 글자 그대로 읽은 것이죠.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은 "절대본체에 안정된 도인의 순수의식상태"라고 이해하면 되겠읍니다.
절대본체에 안정되어 전체를 하나로써 여기는 도인은 남에게 억지로 힘을 써서 억누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도인은 "나와 너"라는 상대적으로 나누어진 이원화의 주객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겨야 할 적(敵)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장 앞에 부딪친 무질서한 상황을 전체적인 조화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처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다른 해석서의 일예를 보면,"훌륭한 무사는 힘으로 상대와 겨루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서들이 <善爲士者>를 "훌륭한 무사" 또는 "잘 싸우는 장수"라고 번역들을 했는데,<士>자는 보통 때는 "무사"나 "장수"를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 도덕경에서는 "선비,구도자" 즉 "도인"을 말합니다.
따라서 <善爲士>는 "도를 닦은 선비" 또는 "도인"을 말하는 것이죠.
<者>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라면" 또는 "~라는 것은"의 접속어의 뜻으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선함을 행하는 도인이라면 무력을 쓰지 않는다>라고 해석했읍니다.
절대바탕에 안정된 도인의 순수한 마음은 무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맨 앞의<善爲士者不武>라는 문장은 다음에 나오는 세 문장을 대표하는 간판격 주제 문장이며,
이 아래 세문장은 이 <善爲士者不武> 문장을 세부적으로 서술해 주는 문장들입니다.
善戰者不怒(선전자불노) ;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싸운다는 것은 (적에게) 성을 내지 않는 것이오.
戰; 전쟁,싸움, 怒; 화내다,성내다,분노하다.
오직 일체라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싸움에 임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이라는 적개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손자병법 같은 데에서도 적과 대항 할 때는 절대로 성을 내지 말라고 되어있읍니다.
만일 적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킨다면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앞에 당장 닥친 것만을 성급하게 대면하게 되므로, 시야가 좁아지고 자칫 적의 속임수에 말려 들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적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을 억지로 참는 것은 이원적이며 상대적인 의도적 행동이지만, 있는 그대로 선한 마음으로 싸우면서 성을 내지 않는 것은 어떤 의도성도 필요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일상 사회생활에서도, 적이 아니고, 함께 일하는 자기 부하에게 수시로 화난 표정을 지으며 다구치는 사람도 있죠.
자기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표시하여 부하직원이 주눅이 들게 함으로써 일을 더 빨리 추진하려고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어떤 카리스마적인 자기 권위를 내세우려고 일부러 화를 내지만, 결국은 그 화를 직접 당하는 부하직원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적개심을 만들게 됩니다.
일상에서 사소하게 남에게 성을 내는 것도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반항심과 적개심을 일으키게 되어 언젠가는 은연 중에 그 인연의 보답을 어떤 형태로든 되받게 됩니다.
이 문장에 대한 다른 해석서의 내용을 보면,
"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네요.
善勝敵者不與(선승적자불여) ;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적을 이기는 것은 적과 맞부디치지 않는 것이오.
勝; 이기다. 敵; 적. 원수, 與; 함께, 더불어 어울리다.
전체 하나가 된 선한 마음으로 적을 이긴다는 것은 적과 직접 맞부딪쳐서 싸우지 않고서 지혜로서 적을 굴복시킨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 생명을 해쳐가며 무력으로써 맞 부딪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아주 폭 넓게 볼 줄 알고 그리고 멀리 장래까지 내다 볼 수 있는 명민한 지혜로써 전쟁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만이 승자이고, 상대방은 패자가 된 것이 아니라, 둘 다 승자로써 함께 손을 맞잡고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야 말로 영광된 모두의 승리라고 볼 수가 있겠읍니다. 말하자면 명분과 실익을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양편이 상대적으로 이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 것도 아니면서, 서로가 원하는 결말을 얻어서 함께 공생할 수 있는 계기를 상호간 조금씩 양보해서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다른 해석서는 "적을 잘 이기는 사람은 상대와 다투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읍니다.
善用人者爲之下(선용인자위지하) ;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사람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아래로 낮추는 것이오.
用; 쓰다,사용하다. 人;사람,인재, 下; 낮추다.
전체가 일체가 된 선한 마음으로 인재를 쓸 때는 자기 자신을 그 사람 아래로 낮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고 잠시 꾀를 부리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절대로 의도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원적인 절대본체에 안정된 순수한 마음의 도인은 "나"라는 개체성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서 재능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지혜있는 지휘관은 있는 그대로의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 병사들에게 용기를 북돗아 줌으로서 전쟁터의 작전병력을 잘 통솔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해석서는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그 아래 머문다."라고 해석이 되어 있네요.
是謂不爭之德(시위부쟁지덕) ; 이것이 다툼이 없는 덕이라고 말하오.
이렇게 적을 만들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서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덕이라고 말합니다. 덕(德) 자체가 바로 넓은 아량과 마음을 선하게 쓰는 것을 말합니다.
是謂用人(시위용인) ; 이것이 사람을 잘 쓴다고 말하는 것이오
자기를 낮출 수 있는 포용력과 선한 지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인재를 잘 쓸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是謂天古之極也(시위천고지극야) ; 이것이야 말로 가장 깊은 도의 궁극에 이르른 것이오.
是謂; 이를 테면, 天古; 도의 궁극적 바탕, 절대바탕.진아. 極; 이르르다, 도달하다.다하다.
여기서 <天古>라는 것은 그대로 직역하면, " 하늘의 옛것 또는 하늘의 선조" 이지만, 하늘이 나온 옛바탕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현상세계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항상 있었왔던 가장 오래 된 바탕, 도의 본체인 궁극의 절대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古>는 "옛날"이라는 과거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 또는 변하지 않는 근원바탕"을 뜻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주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있는 것이고, 그리고 미래에도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며, 지금 항상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옛<古>라는 한문글자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최종 절대바탕 또는 도의 본체, <궁극적 깨달음>을 말할 때에 간혹 중국 선불교 조사들도 고지사(古之事,태곳적 일) 또는 고지도(古之道, 태곳적 道) 라고 말하는 것을 선어록(禪語錄)에서도 자주 볼 수가 있읍니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도의 궁극에 이르르다, 또는 완전히 깨달았다>라는 표현입니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백서본 원문인 <天古之極也>가 해석이 잘 안된다고 해서 <千古之極也>라고 고쳐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읍니다.
하늘<天>자를 일천<千>자로 바꾸어서 <아주 오래 된 옛날>이라고 해석을 했읍니다.
이 경우 해석은 "천고(千古)의 지극한 법칙이네"라고 해석을 했읍니다. 즉 , 아주 태곳 적부터 있었던 지극한 법칙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왕필본에서는 <是謂配天 古之極>으로 바꾸어져 있는데, 이렇게 원문을 바꾸어 놓고 해석한 내용을 보면 "이를 일러 하늘을 짝한다고 하니, 옛날의 지극한 준칙이다."라고 해석하고 있읍니다만, 원래는 아주 쉬운 말인데, 아주 어려운 말로 해석을 해논 것 같읍니다.
이렇게 뒤틀려서 해석이 된 것은 <天古, 하늘의 선조>라는 말이 <도의 궁극적인 절대바탕>이라는 뜻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짝꿍<配>자를 더 붙여서 말을 적절히 꾸며 맞추다 보니 어색한 문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뜻은 <도의 궁극적인 바탕에 이르렀다>라는 간단한 말입니다.
이번 68장에서는
궁극에 이르른 도인의 순수한 마음으로 만일 전쟁에 임한다면,
어떻게 전쟁을 다루는 가를 보여 주고 있읍니다.
원칙적으로 도인은 무력을 쓰지 않지만,
할 수없이 전쟁을 하더라도, 분노나 적개심을 내지 않고,
맞부딪쳐서 싸우지 않고 지혜로써 이겨낸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또한 인재를 쓸때에도 항상 자신을 낮추어서 겸양함을 보인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부딪치지 않고 다투지 않는 것이 궁극의 도에 이르른 상태라고 가르쳐 주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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