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6. 20:24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72회]
[원문]-백서본
民之不畏畏 則大畏將至矣
민지불외외 칙대외장지의
毋閘其所居 毋厭其所生
무갑기소거 무염기소생
夫唯弗厭 是以不厭
부유불염 시이불염
是以聖人 自知而不自見也 自愛而不自貴也
시이성인 자지이불자견야 자애이불자귀야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한글해석]
백성들이 (군주에 대한)경외심을 무시할 정도에 까지 이르른다면,
곧 (나라에) 큰 위험이 문득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오.
(따라서)
백성들이 거주지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도록 막지 말아야 하며,
백성들이 마음대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억압하지 말아야 하오.
대체로 이와같이 오직 (백성을) 억압하지만 않으면
그 때문에 백성들은 (군주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성인은,
내면으로는 자기의 본성을 알지만,
밖으로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자만심(自慢心)이 없으며,
내면의 자기는 아끼고 있지만,
밖으로 자기를 고귀하게 내세우려는 자존심(自尊心)이 없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내면)은 취하고,
저것(외면마음)은 버리는 것이외다.
[해 설]
이장은 곽점본에는 없고,곽점본 후대에 누군가 추가로 삽입한 장인 것 같읍니다.
백서본에서는 37장이고, 왕필본은 72장 입니다.
이장은 대부분의 해석서들이 사용한 말의 표현이 좀 다를 뿐, 의미적으로는 거의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읍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백성들이 불평불만이 커져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에 대하여 경외심을 무시할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면, 나중에는 나라에 더 큰 위험이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없애려면 거주지에 대한 자유로운 개방과 생업을 제약하지 말고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려면 지도자는 도를 깨친 성인과 같이 내면의 도를 닦아서, 자기를 남에게 내세워보려는 자만심과 자기가 남보다 더 높고 귀하다고 내세우는 자존심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성인은 항상 내면으로 향해있기 때문에 외면의 자만심과 자존심을 버린다고 충고하고 있읍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성인의 마음자세를 본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民之不畏畏 則大畏將至矣(민지불외외 칙대외장지의); 백성들이 (군주에 대한)경외심을 무시할 정도에 까지 이르른다면, 곧 (나라에) 큰 위험이 문득 닥칠 수가 있소.
民;일반백성,之; 이르르다.도달하다. 畏; 두려워하다, 경외하다.꺼리다.,則; 곧, 장차,마침내,무릇, 至;이르다.
<民之不畏畏>에서 <不畏畏>는 "경외심을 경외하지 않는다." 또는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직역되는데, 이 말을 다시 고쳐쓰면 "경외심을 무시한다" 또는 "두려운 것을 무시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조정 또는 군주의 권위에 대한 경외심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왕에 대한 경외심을 무시한다는 것은 백성들이 왕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커져서 왕의 위엄조차 무시하는 위험한 상태에 까지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則大畏將之矣>에서 <大畏>는 <큰 위험 또는 큰 불안감>이라고 번역이 됩니다. 또 <將>은 "장차, 마침내,문득"이라는 뜻이며, <至>는 "이르르다, 맞이하다,닥치다"의 뜻입니다. 즉 "곧 큰 위험이 앞으로 닥칠 수가 있다"는 겁니다.권력을 쥐고 있는 조정에서 일반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지 않고 괴롭히는 것이 많아서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극에 달해 있고, 백성들이 악에 받혀서 왕에 대한 경외심이고 뭐고 무시해 버리는 최악의 위험상황에 와 있으면 앞으로 언제 나라가 망할지 모르는 큰 위험에 닥친다는 것입니다.
위의 두 문장은 백성들이 불평불만이 극에 달해서 왕에 대한 경외심마저 무너진다면 곧 나라에 큰 위험이 닥친다고 경고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그렇게 나라에 큰 변고를 맞지 않으려면 평소에 일반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다음 문장에서 그 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읍니다.
다른 백서본 해석서의 해석내용을 들여다 보겠읍니다.
"백성이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두려움이 닥치게 되네." 라고 되어 있읍니다.
또 기존 왕필본의 원문과 해석서 내용을 보겠읍니다.
왕필본 원문은 <民不畏威, 則大威旨>라고 좀 더 분명한 의미로 글자가 변경되어 있읍니다.
해석은 대부분" 백성들이 (통치자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위세가 닥치게 된다"
왕필본에서 '두려워 할'<畏>자를 '위엄'<威>자로 바꾸었는데, 비슷한 의미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적절한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는 것 같읍니다.
毋閘其所居 毋厭其所生(무갑기소거 무압기소생);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막지 말고,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삶을 억압하지 말아야 하오.
毋; (하지)말다, 閘; (문을) 닫다. 패쇄하다. 所; 장소, ~하는 바. 居; 거주하다.살다, 厭; 누르다,압박하다. 生; 삶
<毋,무>자는 원래 백서갑본에서는 어미<母,모>자로 되어 있지만, 모든 학자들이 말<毋,무>자로 읽으며, 전후 문맥으로 보아서 말<毋,무>자로 읽는 것이 맞읍니다.
<閘>자는 농수로의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닫다, 막다"의 뜻으로 해석했읍니다.
<其>는 바로 윗문장에서 주어로 나온 <일반백성>을 가리키는 대명사"그"입니다.
<所居>는 "거주하는 지역,사는 곳"을 말합니다.
<毋閘其所居>는 백성들이 사는 지역을 제한하지 말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옮겨다니는 것을 막지 말라는 말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아마도 일정지역에 성을 쌓고 관문을 만들어 일반백성들이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마음대로 타지역으로 이동해서 살지 못하도록 주거의 자유가 없었던 것 같읍니다.
<毋厭其所生>에서 <厭,염>자는 원래 백서갑본에는 <厭>에서 민원호부인 기슭 <엄>자(지붕처럼 생긴 테두리)가 없는 옛글자입니다. 그 지붕이 없는 <염>도 똑같이 "염"으로 읽는데, 옥편에는 싫을<厭>자와 동의어라고 나와 있읍니다.
그런데 이 <厭>자가 뜻이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누르다, 싫다,막다, 따르다,마음에 들다,젖다,빠지다,조용하다,가리다," 등으로 많은 뜻이 있읍니다.
그 중에서 여기서는 "누르다, 압박하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했읍니다.
<所生>은 "사는 것, 사는 바"는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나 직업형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따라서 전체 해석은 "백성들이 사는 것에 대하여 압박하지 말라"라는 뜻으로 해석을 했읍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직업이나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참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대 중국사회에서도 농민은 오직 농사만 짓게 하고,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그릇만 만들도록 하는 둥, 직업이나 자기가 하는 일에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읍니다.
즉 백성들이 자기가 살고 싶고, 하고 싶은 대로 막지 말아야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의 두문장에서 말했듯이 백성들이 불평불만을 없게 하려면,
첫째로 백성들의 거주지를 마음대로 옮겨다닐 수 있도록 해주고,
두번째로는 백성들이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생업 또는 직업에 종사하도록 내비러 두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즉 <거주의 자유>와 <삶의 자유>를 제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존의 다른 백서본 해석서를 들여다 보겠읍니다.
"그들 삶의 터전을 폐하지 말고, 그들 삶을 압박하지 말라." 이렇게 해석되었는데, 비록 표현하는 말은 본인의 해석과 좀 다르지만, 의미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읍니다.
기존 왕필본의 원문과 해석서들을 보겠읍니다.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으로 글자가 다소 바꾸어져 있읍니다.
해석한 것은 보면,"그 머무는 곳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고, 제각각의 삶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해석한데도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백성들의 거처를 속박하지 말고, 그 삶을 압박하지 말라" 라고 되어 있읍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사용한 말의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대략 의미적으로는 비슷하게 되어 있읍니다.
夫唯弗厭 是以不厭(부유불염 시이불염); 대체로 이와같이 오직 압박을 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백성들은 실증을 내지 않을 것이오.
夫; 대체로,대저, 唯;오직, 弗; 아니다.말다,厭;막다 누르다,압박하다. 실증내다,싫어하다.
<夫唯弗厭>에서 <厭,염>은 여러가지 뜻 가운데서 "막다,누르다,압박하다,억압하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했읍니다.
왜냐하면 위의 두문장을 재정리한 문장이므로 "막다,압박하다"라는 뜻이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어떤 백서본 해석서는 아예 원문을 누를 <壓,압>자로 고쳐서 해석한 곳도 있읍니다.
따라서 해석은 <대체로 이와같이 오직 억압하지만 않으면>라고 됩니다.
위의 문장에서 나온 것처럼 백성들에 대해서 거주의 자유와 생업의 자유를 압박하지만 않으면, 백성들이 군주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是以不厭>에서 <厭>은 여러가지 뜻 중에서 "실증내다, 싫어하다"라는 뜻을 선택해서 해석했읍니다.
따라서 해석은 " 그 때문에 백성들은 (군주에 대하여) 실증을 내지 않는다."라고 했읍니다.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면 자연히 백성들이 군주를 따르고, 싫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죠.
기존의 백서본 해석서를 들여다 보니,
"무릇 압박하지 않아야만 백성이 군주를 싫어하지 않네."라고 되어 있읍니다.
왕필본의 원문은 백서갑본과 똑 같읍니다.
왕필본 해석서들도 "대저 압박하지 않으니 싫어하지 않네"라고 되어 있어,
본 해석서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읍니다.
是以聖人 自知而不自見也 自愛而不自貴也(시이성인 자지이불자견야 자애이불자귀야);
그 때문에 성인은 내면의 자기 본성을 깨달았지만, 밖으로 자만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내면의 자기를 아끼지만,밖으로 스스로를 귀하다고 여기는 자존심이 없소.
<是以聖人>은 "그 때문에 성인은~"
<自知而不自見也>에서 <自知>는 직역하면 "자기를 안다"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내면의 자기를 안다"는 것이므로 <본성을 깨달았다>라는 말입니다.
또 <不自見也>는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라는 말인데, 이말은 다시 말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밖으로 뽐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밖으로 뽐내지 않는다는 것은 자만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내면으로는 자기본성을 깨달았지만, 밖으로 자기를 드러내려는 자만심이 없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또한 이 문장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잘 아는 척 뽐내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읍니다.
<自愛而不自貴也>에서 <自愛>는 "스스로를 아낀다"라고 해석되고, <不自貴也>란 "외면으로 스스로를 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지면, 자존심이 없다는 것이죠.
즉<내면으로는 스스로를 아끼지만, 밖으로 스스로를 높다고 드러내려는 자존심이 없다>고 해석됩니다.
또한 이 문장은 "자기가 아끼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읍니다.
성인은 깊고 높은 도를 완전히 깨달았지만, 밖으로 잘난 척하는 자만심이 없고,
내면의 자기 본성을 아끼지만, 밖으로 자기가 귀하고 높은 도인이라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백성들의 자유를 빼앗고 백성들의 삶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다른 백서본 해석내용을 보겠읍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 자신을 알 뿐 스스로를 뽐내지 않고, 저 자신을 아낄 뿐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네,"라고 해석되어 본 해석내용과 비슷합니다.
왕필본도 이문장은 원문이 변경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왕필본 해석서를 보면 위의내용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해석이 되어 있읍니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그러므로 이것(내면진아)은 취하고, 저것(외면개인마음)은 물리치는 것이오.
故; 그러므로, 去; 버리다,물리치다. 彼; 저것, 取; 취하다.가지다.의지하다. 此; 이것.
<故去彼取此>에서 <彼>는 "저것"이라는 지칭대명사인데, 외면으로 나타난 육체적 자아,즉 개인아(個人我)의 마음을 말합니다.
<此>는 "이것"이라는 지칭대명사인데, 내면의 진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인은 주객 이원화된 개인마음은 버리고, 전체가 하나인 내면의 일원적인 참나만을 취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개인적인 자만심이나 자존감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모두가 하나라는 도인의 자비심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므로 배성들의 삶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장은 아마도 장래에 나라를 다스려야 할 예비 지도자에게 국가경영에 대한 기본교양을 가르쳐 주는 내용인 것 같읍니다. 몇천년전의 고대시대나 현대에나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층에게는 국민들의 민심이 바로 천심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나 봅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천심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마음이 욕심이 없고 백성들을 자기자신같이 여기는 자비심이 있어야 하며, 그런 자비심을 갖추려면 깨달은 도인처럼 항상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고, 자만심이나 자존심같은 외면의 쓰레기들은 버리라는 옛 성인의 충고를 잘 들어 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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