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51장, 道는 德을 낳고, 德은 萬物을 기르오.

2010. 10. 22. 20:36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 문]-백서본

 

道生之 而德畜之    物形之 而器成之

도생지 이덕축지       물형지 이기성지

是以萬物尊道而貴德

시이만물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也   夫莫之爵 而恒自然也

도지존 덕지귀야   부막지작 이항자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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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生之 畜之  長之 遂之   亨之 毒之   養之 覆之

도생지 축지  장지 수지   형지 독지   양지 복지

生而不有也   爲而不恃也   長而不宰也

생이불유야   위이불지야   장이불재야

此之謂玄德

차지위현덕 

 

[해 석]

 

道는 (덕을) 낳아주고,

德은 (만물을) 길러주는데, 

 

만물이 (자라서 각개의 육체) 모양이 형성되면, 

육체기관이 이세상을 담는 그릇으로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높히 공경하고, 덕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외다.  

 

도를 높히 공경하고 덕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억지로 숭배대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함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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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낳아주고, 보살펴 주며,

성장시켜주고, 이루어지게 하고,

형통하게 하고 완숙하게 하며, 먹여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오.

 

낳아주되 소유하지 않으며,

행위를 하되 행위에 의존하지 않으며

가장 높지만 군림하려고 하지 않소.

  

이런 것을 소위 현덕이라고 부르는 것이외다. 

 

 

[해설]

이번 51장은 가장 오래된 곽점본에는 없고, 백서본과 그이후에 나온 왕필본 등에 수록되어 있읍니다.

전체문장 중에서 특이하게 해석하기 애매하거나 오해할 만한 문장은 없는 것 같읍니다.

그러나 몇군데 문장에서는 기존 해석서와는 좀 다르게 해석이 되었읍니다.

이 장은 대략 상단부와 하단부의 두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상단부 문장은 원래부터 있었던 문장같고, 하단부는 아마도 중간에 누군가에 의해서 편집시에 덧붙혀진 것 같읍니다.

도가 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모든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보살피며 유지하므로, 만물은 도와 덕의 자연 그대로 있음의 본성에 대하여 숭상한다는 내용입니다.  

 

道生之 而德畜之   

: 도는 (덕을) 낳고, 그리고 덕은 (만물을) 길러준다. 

<道生之>에서 '之'는 목적격 대명사인데, 바로 뒤에 나오는 '德'을 가리킵니다.

대부분의 기존의 해설서에서는 '之'가 '만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고 하여,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라고 번역들을 했읍니다만,

'道'에서 직접 나오는 것은 '德'이고, '만물'은 '德'에 의해서 나온 것입니다.

만일 "도" 다음에 "덕"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면, "도에서 만물이 나온다"라는 말이 틀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도 다음에 덕이 나오므로 "도가 만물을 낳는다"는 해석은 정확한 해석이 될 수가 없읍니다.

도와 덕의 관계는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병렬적인 수평관계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도->덕->만물,이라는 생성원리적 개념으로 볼때는 수직적 관계가 되므로,

道에서 직접 만물이 나온다는 것은 德(의식)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맞지가 않읍니다. 즉 "도는 덕(의식)을 낳고, 덕(의식)은 만물을 낳아서 기른다."라는 말이 더 정확한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道>와 <德>과 <만물>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읍니다.

<道>는 일원적인 절대바탕을 말합니다. 절대바탕인 <道>에서는 <이원화적인 객관대상>인 만물이 생길 수가 없읍니다.

절대바탕인 <道>가 이원화된 현상세계에 비치는 상태가 바로 보편적 존재의식인 <德>입니다.

따라서 만물이 나와서 유지되는 것은 이 보편적 의식인 <德>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道는 德을 낳고, 德은 萬物을 길러준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而德畜之>에서 <而>는 '문장을 이어주는 연결조사이고,

<之>는 다음문장의 <物>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입니다.

<畜>은 '길러준다,보살핀다,부양하다,유지시켜준다--'등등의 뜻이 있읍니다.

여기서<德>은 보편적 우주의식인데, 요즘 말로 말하자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또는 순수의식입니다.

절대바탕인 <道>는 존재의식 또는 보편적 우주자아인 <德>을 통해서 전체 현상세계로 자신을 드러내 보입니다.

 

物形之 而器成之

: 만물이(자라서 각자의 육체) 모양이 형성 되면, 

그 육체 기관이 이세상을 담는 그릇으로서 갖춰지게 되는 것이오. 

<物形之> 에서 <物>은 일반적인 존재,즉 만물을 말합니다.

어떤 개별적인 존재로써 모양이 이루어진다 것인데, 육체가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之>는 다음문장의 '개별육체기관'인 <器>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입니다. 

<而器成之>에서 <器成之>는 " 육체 의식과 감각기관등 여러가지 내장기관 등"의 육체의식기관이 성장해서 이 전체 우주 만물을 담는 그릇으로써 갖추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之>는 '세상만물' 즉 이 우주현상세계를 말합니다.

이 전체세상의 다양한 삼라만상은 그것들이 개별적으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육체의 감각의식이 지어낸 의식현상일 뿐입니다. 

이것은 "내가 존재한다"라는 기본 존재의식 위에 감각기관과 개별의식에 의하여 다양하게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 세상만물로써 인식되는 것입니다.

온갖 다양한 형상과 색갈, 움직임, 속성들은 모두가 우리 육체의 오감각기관과 의식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있읍니다.

이렇게 의식으로 나와 대상이 이원화로 분리되므로써 개체아인 에고 나가 전체와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세상이란 <無> 또는 <空>이라고도 하며 전체가 오직 일체인 것이죠.

육체가 생겨나서 그것이 어느정도 성숙해야 세상이 있는 줄 알고, 사물을 대상으로써 감지해 내는 분별력이 생기면서, 전체 우주가 육체 마음 안에 들어오는 것이죠. 원래는 전체 순수한 의식 하나만이 있었는데, 육체가 태어나면서 순수한 의식이 육체의 제한된 조건에 의하여 축소되고 그 좁아진 개인의식의 인식범위 안에서 우주현상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是以萬物尊道而貴德

: 그러므로 세상만물은 도를 높히 공경하고, 덕을 소중하게 대한다. 

따라서 세상만물은  자기가 나온 근원인 도를 공경하고, 자기를 길러주는 덕을 소중에게 따른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바로 자기가 개체아로 전체와 따로 분리되었기 때문인데, 이 분리된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면 다시 자기의 원래 본성과 합치려는 열망으로,도를 공경하고 덕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식의 입장에서는 <德>은 자기 바로 윗대 아버지뻘 조상이고, <道>는 할아버지뻘 조상이 되는 것이죠.

 

道之尊 德之貴也   夫莫之爵 而恒自然也

도를 높히 공경하고 덕을 소중하게 대해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의적으로 숭배대상으로 정해서 숭상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함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道之尊 德之貴也>도를 존중하고 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夫莫之爵> 사람들이(夫) 도와 덕에게(之) 의도적으로 숭상하는 것(爵)이 아니고(莫)- 이렇게 해석되는데, 여기서 <爵>은 '작위를 주다,벼슬을 부여하다'등의 뜻이 있으므로 '인의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夫莫之爵>은  <사람들이 그것(도와 덕)을 인의적으로 숭배대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而恒自然也> 항상 저절로 그러한 것,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항상 있는 그대로 그러하기 때문이다"라고 묘사할 수 있읍니다.

즉 사람들이 억지로 숭배대상으로 <도와 덕>을 규정해논 것이 아니고,

항상 있는 그대로 아무 물듬없고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인의적인 대상이  아닌 것, 즉 항상 변함없이 있으면서,우리의 내면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절로 그러한 것'인< 도와 덕>을 숭상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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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본에서는 이문장 사이에 점(.)으로 분장표시가 되어 있는데,

왕필본이나 다른 기타본에는 그런 분장 표시가 보이지 않고, 같은 장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단부와 하단부 문장간에는 내용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읍니다.

윗부분은 <도와 덕>에 대해서이고, 아랫부분은 <현덕>이라고 표기되어 있읍니다만, 두부분 모두 의미적으로 명료하게 구분이 되지는 않고 있읍니다.  

 

道生之 畜之  長之 遂之   亨之 毒之   養之 覆之

: 도는 낳아주고, 보살펴 주며, 성장시켜주고, 이루어지게 하고,

형통하게 하고 완숙하게 하며, 먹여주고 보살펴준다.

위문장에서 <之>는 <만물>을 가리킵니다. 

도는 낳아주고(生之), 보살펴주고(畜之), 성장시켜주고(長之),이루어지게 하고(遂之), (만사를)형통하게 하고(亨之), 완숙하게 하고(毒之) ,먹여주고(養之), 보살펴 준다(覆之). 道의 여러가지 공덕(功德)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읍니다.

위에서 여러 한자어들 중에서 해석하기에 좀 특이한 것이 <毒之>인데, <그것에 毒을 준다>는 것은 요즘 말로 <저항력을 길러준다>라는 의미 비슷하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단련시킨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읍니다.

또한 <覆之>라는 의미도 그대로 직역하여 <뒤집어준다>로 해석하기에는 좀 떨떠름한데, <뒤집어 준다>는 뜻은 앞의 <養之, 영양분을 준다 혹은 길러 준다>의 뜻과 맞추어 농작물을 키우는 행위중의 하나인 흙을 뒤집어 김을 매준다,는 의미로써'보살핀다'라고 해석을 할 수 있겠읍니다.

한마디로 '도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보살펴 준다'고 여러가지 도의 공덕에 대하여 말하고 있읍니다.  

 

生而不有也   爲而不恃也   長而不宰也  此之謂玄德

: 낳아주되 소유하지 않으며,

행위를 하되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가장 높지만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소위 현덕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왕필본 10장에도 똑같은 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왕필본 10장에 있는 위의 글도 10장 전체 의미와는 좀 동떨어진 엉뚱한 문장이 끼어 들어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별도로 있던 문장을 누군가가 비슷한 내용인 이 51장에도 덧붙이고,역시 왕필본 10장에도 덧붙혀 놓은 것 같읍니다.

그런데 이 4개의 문장이 이 51장에 덧붙여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51장의 전체의미가 정돈되어 보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하던 소리 또하고, 다시 반복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이 술 주정하는 소리처럼 실없는 잔소리가 되는 것이죠. 

위의 전체 문장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비슷한 소리를 세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이 51장은 원래는 맨위의 <道生之 而德畜之 부터 ~ 而恒自然之까지>만 원본 51장인 것 같고, 그 아래 문장들은 백서본 편집시기에 누군가가 추가로 덧붙혀서 편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生而不有也> 낳아주되 소유하지 않고,

만물을 낳되 그 낳은 것들에 대하여 자기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고 초연하다는 것입니다.

<爲而不持也> 행위를 하되 행위에 의지하지 않으며,

이것은 "내가 한다"라는 행위자 관념없이 저절로 행해지므로 <無爲的>이라는 것입니다.

<長而不宰也> 만물 중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기는 하지만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물의 바탕이고,어른이지만 스스로 "나"라는 자아감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에고가 없다는 뜻입니다.

<此之謂玄德> 이것을 소위 현덕이라 부른다.

 

<玄德>은 내면에 숨어서 알수없는 순수한 보편적 의식을 말하며,

<德>이란 道가 이원성 세계에 비쳐지는 보편적인 마음과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도인이 지니고 있는 도량이 넓은 마음과 무위적인 행위를  현덕이라고 하며, 그것은 바로 보편적 의식 또는 자비사랑, 순수한 헌신, 무위행으로써 드러납니다.

이것이 모든 만물 속에 펼쳐져서 공평하게 작용하는 최고 선(善)인데,

그것을 깊은 덕 또는 현덕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