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73장, 하늘그물 안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2011. 1. 28. 21:26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73회]

 

[원 문]-백서본

勇於敢則殺

용어감칙살

勇於不敢則活

용어불감칙활

此兩者 或利或害

차양자 혹리혹해

天之所惡 孰知其故

천지소악 숙지기고

 

天之道

천지도

不戰而善勝

불전이선승

不言而善應

불언이선응

弗召而自來

불소이자래

(糸單)而善謀

선이선모

天網恢恢

천망회회

疎而不失

소이불실

 

[한글 해석]

 

과감한 용기는 죽음을 담보로 삼고, 

과감하지 않는 용기는 삶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오. 

이 둘은 때로는 이롭기도 하고, 때로는 해롭기도 하오. 

(하지만) 하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가 그 까닭을 알수 있겠소 ? 

 

하늘의 (일원적인) 도 안에서는 

싸우지 않아도 저절로 잘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응답이 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느슨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도모하게 되오, 

 

하늘 그믈은 넓고도 넓어서 

성기기는 하지만 놓치는 것이 없소이다.

 

[해  설]

이번 장은 왕필본에서는 73장, 백서본에서는 38장에 해당되며, 곽점본에는 없는 장입니다.

따라서 곽점본 시대 이후에 백서본 형성시기에 누군가가 추가로 삽인한 글인것 같읍니다.

백서본 원문과 기타 왕필본 원문은 거의 비슷하지만,

왕필본에서는 전체 의미적으로 불필요한 문장이 하나 더 삽입되어 있읍니다.

그 외에 대부분의 기존 해석서들은 거의 해석내용이 비슷하며,

본 해석내용도 기존의 다른 해석서와 표현하는 언어는 좀 다르게 사용 했지만, 의미적으로는 거의 큰 차이가 없읍니다.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 설명해 보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과감한 용기든, 그렇지 못한 용기든 간에 개인의 의도성을 가진 개인행동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며,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아무리 정의롭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사람들이 인정할지라도 보편적인 도의 측면에서 보면 인의적이며, 이원적인 것으로써 바른 것이 아니므로, 하늘(자연적인 운명)의 관점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의적이고 의도적인 한 개인의 이원적인 관념이나 행동은 아무리 정의롭고 훌륭한 것이라도 하늘이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행동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더 나쁜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즉, 무위자연인 하늘의 도를 모르면 이원적인 개인의식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원적인 도 안에 있으면,

구태여 싸우지 않아도 이미 저절로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응답이 되고,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며,항상 편안하게 긴장이 풀려 있으면서도 일이 벌어지면 즉각적으로 처리하게 되는데, 일원적인 하늘의 도 안에 있으면 무슨 일이든 저절로 잘 되고, 이 세상 모든 일이 그 도의 작용(하늘그물)인 의식의 움직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勇於敢則殺(용어감칙살); 과감한 용기는 죽음을 담보로 삼는다.

勇;용기, 於;기대다,의지하다,따르다,敢; 과감하다,함부로,감히 하다.용맹스럽다.,則; 기준으로 삼는다,모범으로 따른다.본보기로 따른다. 

 

이 문장의 구성면에서 보면, 주격(主格)이 <勇於敢>이고, <則>이 수식어, <殺>은 목적격(客語)이 됩니다.

<勇於敢>은 "과감한 용기, 무모한 용기, 함부로 부리는 용기"등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과감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용맹스런운 용기를 표현한 것이죠.

<則>은 "본보기로 삼는다. 기준으로 삼는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죽음을) 전제로 삼는다" 또는 "(죽음을) 담보로 삼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읍니다. 

자기 목숨도 개의치 않고 과감하게 용기를 내는 것은 애초부터 자기 목숨을 희생한다는 전제하에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죠.

이런 과감한 용기를 부린 사람들은 대략 자기나라가 위기절명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기 한 목숨을 바쳐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주거나 나라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자기를 희생시킨다든가, 혹은 기타 사회적 국가적 의인(義人)이나 애국지사의 행동들이 이러한 용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읍니다. 즉 적극적인 자기 희생정신을 갖춘 용기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다. 

 

勇於不敢則活(용어불감칙활); 과감하지 않은 용기는 삶을 기준으로 삼는다.

과감하지 않은 용기란 자기 목숨이나 신체적인 안전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용맹스러운 활동을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 경우에는 자기 목숨을 스스로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이것 저것 헤어려가면 용기를 내는 활동이므로 좀 소극적인 용기라고 볼 수가 있겠읍니다.

 

위의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과감한 용기와 그렇지 않고 약간 소극적으로 행하는 용기 중에서,

대체로 자기 목숨조차 희생하는 과감한 용기를 더욱 가치있는 용기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아래 문장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此兩者 或利或害(차양자 혹리혹해); 이 두 가지는 혹 이롭기도 하고 혹 해롭기도 하다.

此; 이(지칭대명사), 兩: 둘, 或; 혹은, 어느때는, 利;이롭다. 害; 해롭다.

 

이 두가지는 때에 따라서는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보자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한 용기가 더욱 가치있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행동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그러나 실제로는 그 상황에 따라서는 이득도 될 수 있고, 오히려 더 나뿐 해악을 끼쳐서 일을 더 크게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목숨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조건하에서 적절하게 용기를 부리는 소극적인 용기도 역시 상황에 따라서는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고, 또는 자기목숨을 희생하는 적극적인 용기보다도 더욱 바람직한 이득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 두가지 용기는 비록 보통사람들이 흔하게 행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적인 마음 상태에서 나타나는 행동이므로 자기 의지대로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늘의 운명이 그 모든 것을 정해 줄 뿐이며, 개인의 행동이 어떠하든 하늘의 뜻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天之所惡 孰知其故(천지소악 숙지기고); 하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누가 그 이유를 알수 있겠는가?

所惡; 싫어하는바, 孰; 누가, 其故: 그 까닭을

 

자기에게 하나 밖에 없는 목숨마저 희생해가며 정의를 위해서 용기를 낸 적극적인 행동이든, 아니면 자기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 적절하게 기회를 틈타서 용기를 낸 좀 소극적인 행동이든, 상황에 따라서는 더 나쁜 해악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자연적인 운명 때문이며, 이렇게 하늘의 운행에 의해서 인간의 행동이 거절당하는 것에 대하여 누가 그 하늘의 의도를 알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인간이 옳바른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정의로운 행동을 할지라도 하늘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적인 인간 개인 행동은 전체적인 하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도를 깨쳐서 전체적인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정의로운 개인 행동이라도 소용이 없는 헛짓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늘이 싫어하는 바>라는 것은 "자연의 운행과 맞지 않는 것"을 말하며, 개인의 인의적인 생각과 활동을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전제로 한 과감한 용기든, 그렇지 않고 소극적인 용기든, 개인의식의 개념하에서 일어난 의지적 활동이며, 이러한 인의적인 개념과 활동을 <하늘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문장부터는 이원적인 개념이나 개인의 의지적인 행동이 아닌 무위자연적인 하늘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읍니다. 

 

天之道(천지도); 하늘의 도에서는 

<天之道>는 있는 그대로의 무위 자연의 도 또는 자연법칙을 말합니다.

사람의 의식이 이 천지도에 합일되는 것이 깨달음이며, 비이원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비이원적인 상태란 전체와 나가 일체가 되어 보는자와 보이는 대상으로 나눠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전체와 나가 하나가 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며, 이런 상태를 무아 또는 공의 넘어라고 말합니다.

아래 문장들은 이 비이원적인 도의 본체상태에 머물러 있는 궁극적인 도인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읍니다. 

 

不戰而善勝(불전이선승); 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기며,

戰; 싸우다. 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최선의, 勝; 이기다.

 

궁극적인 도의 상태는 전체가 하나이므로 나와 너라는 상대성이 없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싸운다는 상대적인 행위가 의미가 없는 것이죠.

상대적인 싸움이 있기 이전에 이미 도는 세워져 있는 것이고, 전체가 도이므로 저절로 이긴다고 말하는 것 같읍니다.

<善勝>은 "가장 최선의 승리"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나, <善>이라는 것은 <무위자연적 것>을 뜻하므로, 여기서는 "저절로 잘" 또는 "있는 그대로 잘"라고 해석할 수가 있읍니다.  

 

不言而善應(불언이선응);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응답이 되고

應; 대답하다.

 

전체가 일체가 된 도인의 상태에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弗召而自來(불소이자래);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召;부르다. 來;오다.

 

도인의 일원적인 직관적 반응상태를 표현한 것으로써,

어떤 행위와 반응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죠.

 

(糸單)而善謀(선이선모); 느긋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도모하며,

 (糸單); 느슨하다,완만하다, 헐렁하다.계속되다. 謨;꾀,살피다,모략,속이다.

도인은 항상 주의를 느긋하게 놓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즉각적으로 잘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즉 평소에는 아무데도 주의를 주는 것 같지 않고 편안하고 느긋해 보이지만,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저절로 적절하게 꾀가 나와서 잘 처리된다는 것입니다. 

 

天網恢恢(천망회회); 하늘 그믈은 넓고도 넓어서

天網: 하늘그물, 恢; 넓다.

 

도의 작용범위는 한계가 없이 넓고 넓다는 말이죠.

무한한 도의 작용은 의식의 움직임이며, 이것을 하늘의 그물이라고 비유하고 있읍니다. 

<天網> 전체 우주 삼라만상의 그물은 가로는 인(因)과 세로는 연(緣)이라는 실로 아주 촘촘하게 엮어진 거대한 우주그물과 같다고 표현한 말로써 인도 흰두교나 불교 개념에서 나오는 <인디라 그물> 또는 <삼사라>를 중국어 한문식으로 표현 한 단어입니다.

이 우주그물이란 바로 전체가 파동의식으로 엮어진 거대한 하나의 그물로써, 온갖 수억천개의 삼라만상의 파도가 하나의 의식 바다 위에서 생주이멸하며 출렁거리는 것처럼 모든 삼라만상이 한 그물 위에서 서로 인연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전체가 하나의 의식바다이며, 온갖 삼라만상은 그 의식바다 위에서 파동치는 개별 파도의 움직임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현대과학에서 발견한 레이저 광선의 홀로그램 파동의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읍니다.

이 세상 다양한 삼라만상은 전체가 하나의 존재의식이라고 하는 기본 파동의식 안에서 단순히 이차적으로 반사되어 변조된 잡음파동 의식이 사람의 감각기관에 의하여 그림자 영상으로 나타난 환영입니다.

하늘의 그물, 즉 의식의 홀로그램은 그 크기가 무한하고, 단일한 의식파동이지만, 또한 그 안에서 변화의 다양성은 한계없이 무한합니다.  

 

疎而不失(소이불실); 엉성하나 놓치는 것이 없소

疎; 성기다, 트이다,엉성하다. 失; 잃다.

 

모든 작용은 도의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하늘의 그물이 엉성하다는 것은 실지로 그렇게 보인다기 보다는 비유적으로 아무 한계가 없어 보인다는 것을 엉성한 것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제각기 흩어져서 무질서하게 각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단 하나도 흩으러지는 것 없이 상호간에 밀접한 인연관계로 조화롭게 짜여져서 작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한가지도 불필요한 것이 없고, 단 한가지도 쓸데없이 제 홀로 움직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죠. 모두가 하나의 촘촘이 엮여진 인드라 그물 안에서 서로서로 연결되어 상호간의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파도 물결이 연못 물밖으로 절대로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은 의식으로 된 움직임이기 때문에 의식의 바다 안에서 파동으로써 생주이멸 할 뿐이지, 그 파동의식의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삼라만상은 오직 도의 작용인 하나의 의식 범위 안에 있는 것일 뿐, 그 밖에 다른 것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바싹 마른 나무닢 하나가 겨울 찬 바람에 우연히 떨어지는 인연도 이 우주의 전체 움직임에 연관되어 우주파동의 그물 일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이장에서 주객 이원화 현상세계에서 개인의 의도적인 행위는 아무리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일지라도 그 결과를 하늘의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지만, 비이원적(非二元的)인 道 안에서는 하늘의 무위적인 작용의 주체가 되어 억지로 함이 없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가르침을 들어 보았읍니다.

또한 이 현상계 안의 모든 삼라만상의 움직임은 하늘 그물인 도(道)의 작용(의식) 밖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도 알았읍니다.  감사합니다. -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