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비움(空)은 비움(空)이나 無라고 말할수도 없다.

2009. 6. 23. 21:00성인들 가르침/지두크리스나무리티

 

 

 

전날 우리는 양옆으로 황량한 산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협곡을 올라갔다.

협곡에는 수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살았고 작은 동물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계속 걸어서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언덕과 산들이 저녁노을에 물들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빛이 내부에서 빛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당신(크리스나무리티 자신)이 쳐다보자 그 빛이 희미해지면서 서녂하늘엔 저녁별이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랑스럽도록 아름다운 저녁이었으며,

당신(크리스나무리티 자신)은 온 우주가 곁에 있으면서 기묘한 정적으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걸 느꼈다.

 

개인들에게는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빛이 차단되어 있다.

대신에 지식의 빛, 재능이나 학식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인공적인 빛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종류의 빛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고통으로 변해 버린다.

생각의 빛은 스스로 그림자로 변한다.

그러나 시장거리에서 사고 팔수없는 심오한 내면의 빛은 결코 꺼진 것이 아니며,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그것은 마음의 영역 속엔 없기 때문에 추구 할 수도 없고,

상상하거나 그것에 대해 어떤 논의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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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정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승려였다.

수도원에 은둔하기로 마음먹고 외딴 곳에서 홀로 진리를 추구하면서 살기로 한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승려 : "명상에 관한 당신의 말씀은 진실인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은 거기까지 뻗지는 못하는데,

이는 무언가를 바라거나 추구해서는 안되고, 명상을 한답시고 행하는 온갖 종류의 짓거리- 특별한 자세로 심각하게 앉아있는 짓, 혹은 삶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취하는 태도 등-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될까요?

말로 지적하는 것이 도데체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크리스나무리티 :" 당신은 비움(空)을 찾아내서, 그 비움을 채우려 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려고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내적 빈곤에서 나온 이 외향성 움직임은 개념적이고, 사변적이며, 이원론적이다.

이것이 갈등이며, 그 갈등의 전개는 끝이 없다.

그러니 손을 밖으로 내밀지 말라 !

그러나 밖으로 향하고 있는 그 에너지는 이번에는 밖에서 안으로 손을 뻗치면서 오늘날 "내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묻고 탐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두 움직임(내향성과 외향성)이 모두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으로,

둘 다 끝장내 버려야 한다."

 

승려 : "당신은 이 비움(空)에 단순히 만족해 있으라고 말하시는 겁니까?"

 

크리스나무리티 : "물론 아니다"

 

승려 : "그렇다면 비움(空虛)이 남으면서 일종의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이 추구할 수 조차 없다면 이 좌절은 더욱 깊어  집니다"

 

크리스나무리티  : " 당신(승려)이 내향성 움직임이든 외향적 움직임이든 모두가 무의미하다는 진리를 본다면 과연 좌절할까?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것에 만족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 비움을 받아 들이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당신(지두 자신)은 외적으로 행하는 것이든, 내적으로 행하는 것이든 모두 일소해 왔다.

당신(지두 자신)은 이 비움(空)과 직면하는 마음의 모든 운동을 거부해 왔다.

그렇게 하면 마음자체가 비워진다.

왜냐하면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의 움직임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모든 움직임은 비어있는 것(空)에서 비롯되어 있으므로,

어떤 움직임도 그 근원이 되는 실체는 없다.

마음을 텅빈 상태로 놓아 두어라.

마음을 비우면, 마음 스스로가 과거,현재,미래를 씻어낸다.

마음 스스로가 움직임을 만드려는 경향성을 씻어내는데,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라는 것도 없고, 비교 측정해야 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비움(空)이 되는 것이 아닌가?

 

승려 : " 이러한 상태는 자주 왔다 갑니다. 그것이 비움(空)이 아니라 해도, 당신이 말한 법열(삼매)도 아닌 것 만은 확실합니다."

 

크리스나무리티 : " 이제껏 말해 온 것을 잊어 버려라.

또 그것이 왔다가 간다는 것도 잊어 버려라.

왔다가 간다고 하는 생각엔 이미 시간이 개입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가 버렸다'고 말하는 관찰자가 있는 것이다.

관찰자는 비교하고 측정하고 평가하는 자라서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비움(空)이 아니다."

 

승려 : "지금 제게 체면을 거시는 겁니까?" 그는 웃었다.

 

크리스나무리티 : "비교측정과 시간이 없을 때 비움(空)에 대한 경계나 테두리가 있을까? 그때에 당신은 그것을 비움(空)이나 無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그때엔 일체가 그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지두 크리스나무리티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