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가 아닌 것"이 부정 될 때에 "있는 그대로"가 된다.

2009. 8. 27. 11:40성인들 가르침/지두크리스나무리티

 

 

 

이번에 찾아 온 사람은 자신이 특정종교조직에 속해 있거나, 특정한 신앙을 가지진 않았지만, 자신을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온갖 종교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랫동안 수행을 해 왔지만,

결국 실망한채 지금은 그들 모두와 결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으로 변한건 아니었지만,

자기가 찾고있던 축복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대학교수였는데, 명상과 자기 탐구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직업마저 그만두었다.

 

방문자: 그러니까 말이죠, 나는 늘 내 삶이 단편성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읍니다.

나는 이 우주의 전체성과 합일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느라고, 스스로 분열되고 파편화 되어버려서, 지금은 나에게 삶의 단편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현대사회가 모든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애써왔읍니다만,

과연 나눠지지 않는 그 무엇 속에서 우리가 모든 분열로 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지두 : 우리는 삶을 가정과 집단, 가정과 국가, 가정과 사무실, 정치와 종교생활,평화와 전쟁, 질서와 무질서 같은 끝없이 분열하는 대립적인 이원화로 나누고 분별해 왔다.

우리는 이 끝 없이 돌고 도는 이 삶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음과 가슴사이의 조화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으며,사랑과 욕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거기서 어떤 조화를 이루려고 애쓰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데체 무엇이 이 분리를 가져오는 것일까?

분리나 대비-흑과 백,남과 여 등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면 이 단편화의 본질이나 근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단편화는 여전히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 이원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방문자: 나는 이 끝도 없을 것 같은 분열의 온갖 원인과 그 대립적 분열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시도한 수많은 방법들을 제시할 수 있읍니다.

이 분열의 이유를 지적으로 얼마든지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저의 내면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남과도 이 게임을 해 보았읍니다.

즉, 만물의 통일성을 느끼기 위해, 일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명상이나 극기훈련같은 것을 다 해 보았지만, 모두가 헛수고 였읍니다."

 

지두: 물론 분열의 원인을 발견하는 것이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공포의 원인을 알아도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념적인 지적 탐구가 그저 날카로운 사고력에만 지나지 않을 땐 즉각적인 실천력은 잃어버린다.

 

나는 나 아닌 것, 즉 아내,가정,집단, 또는 개념이 만든 신앙의식 등,등과 하나가 되어 어울려 보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열의 근본원인은 분명히 '나와 나 아닌 것의 분열'로서 변하지 않고 계속된다.

 

이 '나'는 여전히 어떤 일체성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 '나"가 일체시하려고 하는 대상들은 여전히 개념이나 기억, 즉 생각,사고들의 구조 범위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도데체 (의식적인 측면에서) 이원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객관적으로 음지와 양지 같은 것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 그런 것들이 존재할까?

 

우리는 객관적 이원성을 받아 들이듯이, 심리적 이원성(분별의식)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들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것들 중의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이 제약조건(분별의식)에 대해서는 결코 스스로 의심을 해 보지도 않고,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되돌려서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심리적인 이원화 분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말없이) "있는 그대로의 것"만이 오직 존재할 뿐,

(개념적인) "있어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있어야 할 것"은 사고(생각)가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회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논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이원적인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실제의 현실(現存)과 추상적인 개념(상상)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이 추상적 개념은 공상적이고 낭만적이고, 관념적이다.

 

실재적인 것은 "있는 그대의 것"이며,

그 밖의 것은 모두 비실재적인 것이다.

 

고통은 실제로 체험되는 것이지만,

고통 속에서의 비고통이라는 생각은 고통과 고통없는 상태 사이에 분열을 초래하는 상상적인 생각의 즐거움일 뿐이다.

 

사고작용, 생각이란 것은 언제나 이원화 상태로 분리시킨다.

사고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공간,시간을 각자 따로 따로 분리한다.

 

그러나 실재로써 항상 바탕에 존재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변함없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관찰자가 아무런 생각없이 "있는 그대의 것"을 보는 것이 바로 단편화를 끝장내는 것이다.

 

생각,상상,사고작용은 사랑이 절대로 아니다.

즐거움,쾌락,욕망에 기인하는 상상,생각,사고작용은 일원적이고 경계없는 무한한 사랑을 자기 취향에 맞는 개념의 협소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버리고,

그러한 폐쇄된 사고 울타리 안에서 또 다시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닌 것을 부정할 때에

"있는 그대로의 것"이 존재한다.

 

사랑이 아닌 것을 부정할 때에,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전체적인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두 크리스나무리티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