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없는 신을 알려고 하는가?

2009. 9. 28. 19:35성인들 가르침/지두크리스나무리티

 

 

 

"나는 신을 알고 싶읍니다"

그는 거의 고함치다싶피 격렬하게 말했다.

그는 체구가 컸으며 수염과 머리칼을 말끔히 밀어버린 채였다.

우리는 작은 방 마루 위에 앉아서 강을 굽어 보고 있었다.

겨울이라서 마루바닥은 차가웠다.

그는 빈털털이였지만 남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신을 알고 싶읍니다. 물론 이 생각이 오늘날 시대에 뒤졌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음세대인 학생들은 반항심과 정치적 행위, 합리적, 비합리적 요구를 갖고 있어서 모든 종교를 비웃죠.

그들이 옳아요. 성직자들이 해온 짓을 보십시오.

젊은 세대가 종교에 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들은 교회나 사원이 인간을 착취한다고 보고 있어요.

그들은 구세주,의례,그 밖의 난센스들로 이루어진 성직자의 계층적인 견해를 전적으로 불신합니다.

나역시 그들과 동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모든 것에 대항하는 몇몇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신을 알고 싶읍니다.

나는 한때 공산당원이었지만 오래전에 탈당했읍니다.

공산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의 신과 교조와 이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처음에 그들은 진정 위대한 혁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열렬한 공산주의자 였읍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들은 자본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건 뭐든지 갖고 있읍니다.

세속적인 길로 타락해 버린 것이죠.

나는 사회개혁에 잠깐 손댄적도 있고 정치활동도 했읍니다.

그러나 인간이 과학과 기술을 통해 절망과 근심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걸 집어치웠읍니다.

아마도 길은 오직 하나일 겁니다.

나는 어떠한 미신도 믿지 않으며, 삶에 대한 두려움도 없읍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겪어보았고,보시다싶히 몇해는 더 살수가 있읍니다.

진정 나는 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읍니다.

몇몇 방랑하는 수행승들에게 물어도 보았고,

온종일 "신이 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고 떠드는 사람과 신비로운 척하면서 비법 몇가지를 전수하는 사람도 만나보았읍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올가미에도 걸려 들지 않았읍니다.

결국 반드시 발견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겁니다."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앵무새들이 지저귀면서 창가를 지나갔다.

새들의 빛나는 초록 날개와 빨간 주둥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 당신은 자신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찾아 들어가면 그것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측정하는 마음이 그 측정 불가능한 것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식으로 발견해 나갈 작정인가?

어떻게 알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가?]

 

"난 정말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면 알것입니다."

 

[마음에 의하여, 가슴에 의하여, 지성에 의하여 그것을 알게 된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앎은 그 중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읍니다. 나는 감각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읍니다.환상이 얼마나 쉽사리 생기는지도 깨닫고 있어요."

 

[아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던가? 경험하는 것은 인식하는 것이며, 인식은 기억과 연상작용이다.

당신이 말한 "앎"의 뜻이 과거의 사건이나 기억 또는 전에 발생했던 일의 결과라면 그때의 앎은 이미 일어났던 것에 대한 앎이다.

당신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는가?

아니면 한순간이 지나 그 일이 끝났을 때만 알 수 있는가?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시간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앎>은 언제나 시간 속에 있다.

당신은 시간요소로 만들어진 눈- 그 사건에 이름을 붙히고 해석하고 기록하는-으로 그 사건을 바라본다.

분석적인 과정을 통했던, 즉각적 인지를 통했던, 이것이 소위 말하는 앎이다.

이 앎의 영역 속에서 당신은 언덕의 뒤편이나 저 숲의 배후에 있는 것을 가져오고 싶어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 배후에 숨겨진 것을 알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흐르는 물을 손이나 마음 안에 담을 수 있는가?

당신이 붙드는 것은 말이며, 눈으로 보았던 것이며, 나아가 그 말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나 기억은 물이 아니며, 결코 물이 될 수 없다.]

 

"알겠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걸 만나게 될까요? 나는 오랫동안 학구적인 생활을 해 왔지만, 제도나 사회체제 그 어느것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나서 책읽기를 그만두었읍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 받아야 하며, 어찌됐던 현상황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신을 찾는 나의 절박한 염원도 인간을 걱정한 나머지 나온 절규입니다.

지금 확산되고 있는 이 폭력은 인간을 좀먹고 있읍니다.

나는 폭력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숱한 논쟁들을 알고 있읍니다.

한때는 희망을 가졌지만 지금은 모든 희망을 버렸읍니다.

진정 갈 데까지 간 상태죠.

나는 절망을 벗어나거나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어 이런 질문을 하고 있읍니다.

나는 어떠한 빛도 볼 수 없읍니다.

그래서 나는 이 한가지 질문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실재(實在)가 존재한다면, 제가 실재를 밝혀내도록 도와줄 수 있읍니까?"

 

다시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비둘기의 구구거리는 소리가 방으로 들려왔다.

 

" 선생님이 지금 (침묵으로) 의미하는 바를 나는 압니다.

여태컷 나는 이토록 철저한 침묵 속에 있어본 적이 없어요.

질문은 거기, 이 침묵의 외곽에 있읍니다.

내가 이 침묵으로부터 질문을 바라보면 질문은 멀어져 갑니다.

당신은 측정 불가능한 것이란 이 완전하면서도 의도되지 않은 침묵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고 계시죠?"

 

또 다른 기차가 덜컹거리면서 다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환상을 낳는 애매모호한 감상, 이것이 온갖 어리석음과 신비주의적 히스테리를 초래한다.

이는 우리가 뜻하는 바가 아니다.

정치적 환상, 종교적 환상, 미래에 대한 환상 등 모든 환상을 떨쳐 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자신을)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가장 큰 환상 중의 하나인 사고(思顧)작용인 것이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칭칭 얽어놓은 이 혼란과 광기를 명백히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볼 수 있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너무너무 건전한 마음이 필요하다.

보고자 하는 충동으로부터의 자유, 이 희망이 환상을 낳는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유이며,

자유가 있을 때에는 더이상 환상을 갖지 않는다.

그러한 때에 마음자체는 측정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지두 크리스나무리티의 일기-

 

 

*주; 위 본문의 대화내용 중에서  "       " 안의 대화는 방문자의 말이며,

[          ]안의 대화는 지두 크리스나무리티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