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법사의 조론 공부16] 물불천론(物不遷論)- 11

2024. 10. 7. 22:00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그러므로 여래의 공덕은 만세에 유전 하면서도 항상 존재하며,

도는 영겁(永劫)에 통하면서도 더욱 경고하가만 하다.

[주해]

여기서부터 깨달으면 성인이 되는 경지를 논변하였다.

그 때문에 성인은 섞어 없어지지 않고 상주불변하여 인과(因果)가 천류하지 않음을 밝혔다.

여래의 굥덕이 만세에 유전한다 한 것은 이타(以他)의 실천이 항상 존재해 있는 것이며,

도가 영겁에 통한다 한 것은 자리(自利)의 행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만세백겁(萬世百劫)이 지나며 시간이 천류하는 듯 하면서도 자리와 이타의 두 가지 행은 썪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 실제이다.

 

[본문]

비유하자면, 산을 이루는데는 처음 한 삼태기의 흙을 빌려 완선하고,

먼길을 떠나는 데는 첫걸음부터 시작하여 목적지에 이르러 가는 것과 같다.

이는 인에서 과에 이르기 까지, 결과를 이루었다 하여 인의 공업(功嶪)이 썩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해]

여기서는 공자와 노자의 말을 인용하여 인과가 천류하지 않는 의미를 논증하였다.

<논어>에서는 말하기를, '비유하면 산을 만드는데 한 삼태기의 흙을 덮고 나아감도 내가 나아감이다.'라고 하였고, <노자>에서는 말하기를, '천리 길을 가는 것도 첫발부터 시작한다.'라고 하였다.

이 두 말은 모두가 시작의 인(因)을 의지해서 끝맺음인 결과(果)를 이룬다 한 의미이다.

만 길 높이의 산을 만드는 데도 한삼태기의 흙을 빌려서 공을 이루고, 산을 완성되었다 해도 처음에 부었던 한 삼태기의 흙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천리의 길을 가려면 첫걸음부터 시작하나 천리 길에 이르고 나서도 첫걸음은 천리의 끝으로 옮겨가지 않는 것과도 같다.

그 때문에 수행의 공부가 성취되어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이 가득찼다 해도 처음 보리의 마음을 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화엄경>에서 말한, '초발심과 필경의 성불한 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다.' 한 경우와 같다.

수행의 인지(因地)로부터 성불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수행마다 인과가 천류하지 않는다.

<유마경>에서 말하기를, '이지(因地)에서 내가 지은 업(業)을 과지(果地)에서 잊지 않는다.'하였는데, 잊지 않는다면 인과는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 선악의 인과도 모두 이와 같다.

여기서는 성인의 수행 공덕을 논변하였다.

 

[본문]

성인의 공업은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행의 인지(因地)는 수행할 때의 과거에 있으면서 변화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과지(果地)로 천류하지 않는다. 천류하지 않기 때문에 담연(湛然)하여 인과가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말하기를, ' 삼재(三災)가 충만하다 해도 수행의 공업은 담연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믿을만 하구나.

[주해]

여기서는 성인의 공업이 썩지 않는 것으로써 인과가 천류하지 않는다 한 의도를 해석하였다.

성인의 공업은 썩지 않는다 말한 것은 과거 수행의 인지가 변화하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천류하지 않으며, 천류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의 인지와 성불의 결과가 담연하여 평등하게 하나로 맞닿아 있음이 분명하다 하였다. 그리고는 경전에서 인용하여 증거를 대고 자기의 논리를 성립시켰다. '미륜(彌綸)'은 충만하다는 의미이다. 삼재(三災)가 불어 닥쳐 삼천대천세계가 무너지는 괴겁(壞劫)은 사물의 천류 가운데서도 극치이다. 그런데도 여래의 수행과 공업은 담연하여 움직이지도 무너지지 도 않음을 말하였다.

이는 '큰 겁화(劫火)가 대천 세계를 태울 때 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기만 하다'고 말한 경우에 해당한다. 즉, 극도로 천류하는 가운데 극도로 천류하지 않는다 한 말을 경험할 만하다 하리라.

 

                                                                        - 승조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