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8. 21:26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제 1장 물불천론(物不遷論)(3)
-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본문]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에 이르기를 "제법은 본래 온 바도 없고 또한 간 바도 없다"고 하였다.
(또한) <중관론(中觀論)>에 이르기를 "(가는) 방향을 보고 그가 간다는 것을 알지만, 가는 자는 (그) 장소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주해]
여기서는 <도행반야경>과 ㅡ중관론>에서 인용하여 물불천의 종지로서의 극치를 단정하였다.
모든 법은 자체가 고요히 소멸하여 본래 스스로 발생함이 없이 인연을 따라 나왔다.
그러므로 흘러온 유래가 없고,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지기 때문에 과거로 흘러가도 이를 곳이 없다.
왜냐하면 마치 허공에서 일어난 헛꽃(空華)은 실제로 일어남도 사라짐도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중관론> 제 2권 <파거래품(破去來品) 가운데서 '간다는 법(去法)과 가는 사람(去者)과 갈 곳(去處)은 모두가 상대적으로 서로 의존관계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단정젃으로 있다거나 결정적으로 없다 라고 말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의미만을 요약해서 인용하였다.
그러므로 결정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세 가지 법은 허망한 성공(空)이며 실제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거짓 이름(假名)만이 허깨비의 변화처럼 있을 뿐이다.
방향을 초월한 절대의 방향(大方)은 방향이 없으므로 본래 단정적인 방향이란 없다.
그런데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은 어느 방향이라고 허망하게 지적하나,
실제로 이르러 갈 만한 단정적인 방향이란 없다.
비유하면 동쪽으로 가는 사람이 끝내 어디를 동쪽이라 해야 할지 모르는 것과도 같다.
[본문]
이것은 모두 움직임에서 고요함을 찾은 것이고, 이로써 물(物)은 천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이 분명하다.
[주해]
여기서부터는 사물이 천류하지 않음을 밝혔다.
<도행반야경>에서 '모든 법은 과거에서 흘러 옴도, 과거로 흘러 감도 없다'고 말했다면 일상에서 눈에 부딪치는 대로가 진상의 도이며, <중관론>에서 '간다 해도 끝내 일정한 방향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면 방향을 향해서 간다 해도 실제론 가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제법의 움직임에 나아가서 본질의 고요함을 찾았던 은미한 뜻이다.
이 두 경전과 논서의 말씀으로써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분명하다 하리라.
[본문과 주해]
일반 사람들은 '모든 사물은 움직이며 변화한다'라고 말들 하는데,
이는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이르러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움직이면서 고요하지 않다'라고 말들 한다.
(마치 옛날엔 한창 젊은 나이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늙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물은 움직이면서 고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사물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다' 함도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이르러 오질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나의 입장에서 관찰해 본다면 젊은 시절의 얼굴은 그대로 옛날에 안주해 있지
현재로 옮겨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물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일반 사람들이 '사물은 움직이며 고요하지 않다; 한 것은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일반사람들이 사물이 천류한다고 여기는 것은 젊은 시절의 얼굴이 현재의 늙음으로 옮겨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물은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물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한 것은 현재의 사물이 과거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물이 천류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젊은 날은 옛날에 머물러 있고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으며, 지금의 늙음은 현재에 있지 옛날의 젊음으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물은 고요하다 여긴다)
이와 같다면 일반 사람과 내가 나아간 대상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는데도 이를 보는 견해는 동일하지 않았다. (둘 다 동일하게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흘러오지 않았다 하면서도 움직임과 고요함을 보는 견해는 동일하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이 진리를 거역함은 막힘이라 말하고,
깨달은 사람이 진리를 순종함을 통한다고 말한다.
(미혹한 범부는 허망한 마음(情)으로 진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막히고.
깨달은 사람은 이치(理)로써 현상의 사물에 통달하기 때문에 통한다)
굳이 그 도를 체득하기만 한다면 어떤 상(相)에 막힐수 있겠는가?
슬프도다, 인정(人情)의 미혹함이 오래되어 눈앞에 진리를 대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다니 !
- 승조법사 지음,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 경서원-
- 승조법사 지음,감산덕청 주해, 강승욱 역주 <조론>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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