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9. 22:11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마하리쉬 : 기적? 투시력?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최대의 기적은 진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옆길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그런 것들 위에 있습니다. 신지학회 리드비터는 투시력으로 본 수백생의 전생을 묘사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이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진아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까? 그런 생들은 몸의 탄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참된 탄생은 진아 안에 있습니다. 그대가 지금 (아스트랄체로) 영국에 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대가 더 나아집니까? 깨달음에는 조금도 더 가까이 있지 못할 것입니다.
명상 중에 나타날 수 있는 모습과 소리들은 그대를 한눈 팔게 하고 유혹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 중 어떤 것도 구도자를 속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문 : 환영(幻影)이 나타나거나 신비로운 소리를 듣는 것은 집중된 마음이 고요하게 비워지기 전입니까, 아니면 뒤입니까?
답 : 그런 것은 그 전에도 올 수 있고 뒤에도 올 수 있습니다. 요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계속 진아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런튼): 마하르쉬님은 환영(幻影)에 대해 변함없는 태도로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제자들이 와서 당신의 사진 모습이 찬란한 빛으로 화하여 그들에게 나타나는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릴 때도, 당신은 그들에게 모든 '형상'을 도외시할 것이며, 그와 같이 보이는 것은 소멸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들이 붙들어야 하는 것은 진아에 대한 직관적 지각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마하리쉬 : 마음이 진정한 꾼달리니(생명기운)입니다. 꾼다리니가 한 마리 뱀으로 표현되는 것은 우둔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차크라를 표현한 형상들(연꽃잎 모양)도 환적인 것입니다. 싯디(신비한 능력)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대가 이런 놀라운 능력들을 다 구사한다고 합시다. 그대는 그 욕망을 갈구하고 그것을 충족하려고 하는데, 새로운 한 가지 욕망이 발동하면 거기에 에너지와 주의력을 소모합니다. 그 최종 결과는 들끓는 마음에 걱정을 보탠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대의 진정한 목표가 행복이라면 궁극적으로 싯디에 한눈팔던 데서 돌아와, 그 행복을 원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탐구함으로써 그대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문 : 당신의 친존(親存)에서 느끼는 평안이, 제가 (이곳을) 떠난 뒤에는 왜 지속되지 않습니까?
답 : 그 평안이 진정한 성품입니다. 그에 상반되는 관념들은 덧씌움(실체 위에 덧씌워진 마음)일 뿐입니다. 이것이 참된 요가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 평안에 수행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실은) 수행에 의해 그릇된 관념들이 포기되는 것입니다. 그런 섬광들은 이어서 진아가 드러날 거라는 징후들에 불과합니다.
(브런턴); 사람들은 종종 삼매를 오해한다. 당신(바가반)은 갠지스강 가에서 황홀경에 든 체 수백 년을 보낸 어느 요기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깨어날 때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신이 황홀경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물을 떠다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되돌아와 마음을 지배하자 항홀경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마하리쉬 : 진정한 성취는 완전히 의식하는 것, 곧 주위 환경과 주위 사람들을 자각하고 그들 모두의 사이에서 움직이되, 의식을 환경에 합일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내면의 독립된 자각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것이 최고이며, 황홀경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단지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소멸해야지 정지해 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마하리쉬 : 인간은 그의 상습의 행로를 달려 갑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진아라는 가르침을 들으면, 그 가르침이 그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 상상력이 날뜁니다. 그의 신비체험들은 "나는 진아다(I am the Self)" 상태에 대한 그의 상상에 따라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르침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되어 그의 마음이 심장 속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는, 그 받은 가르침이 순식간에 작용하여 그가 진아를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쟁이 있습니다. (대담 275)
마하리쉬 : 환영(幻影)은 명상에 대한 열의를 북돋워 주지만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대담 400)
-폴 브런트 기록, 대성 옮김 <의식하는 불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