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8. 20:59ㆍ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632. 아라한경(阿羅漢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련불읍 계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과 존자 발타라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존자 발타라가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라한을 얻게 되는 그런 법이 있습니까?
존자 아난이 존자 발타라에게 말했다.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라한을 얻을 수 있는 법이 있나니, 이른바 4념처(念處)입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제각기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633. 일체법경(一切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련불읍 계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법이라고 말한 것에서, 일체 법이란 4념처(念處)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34. 현성경(賢聖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련불읍 계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4념처(念處)를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힌다면 현성의 벗어남[賢聖出離]이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벗어남[出離]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바르게 괴로움을 다함,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남, 큰 과보를 얻음, 큰복과 이익을 얻음, 감로법(甘露法)을 얻음, 감로법을 완전히 성취함, 감로법을 체득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635. 광택경(光澤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련불읍 계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4념처(念處)를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힌다면 아직 깨끗하지 못한 중생은 깨끗해지고, 이미 깨끗해진 중생은 광택을 더욱 더하게 될 것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중생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저 언덕으로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게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얻고, 벽지불(?支佛)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636. 비구경(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련불읍 계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위해 4념처(念處)를 닦는 것에 대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4념처를 닦는 것인가? 비구들아, 여래(如來)·응공(應供)·등정각(等正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실 땐, 맨 처음의 말씀도 훌륭하고 중간의 말씀도 훌륭하고 맨 마지막의 말씀도 훌륭하시며, 훌륭한 이치와 훌륭한 뜻이 순전하게 원만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만일 족성자(族姓子:善男子)와 족성녀(族姓女:善女人)들이 부처님에게서 법을 들으면 깨끗한 신심(信心)을 얻어 이와 같이 닦고 배울 것이다.
가정생활의 화합은 향락의 허물이요 번뇌의 결박임을 보고, 텅 비고 한가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여 출가해 도를 배우며,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집 아닌 곳[非家]15)에 살면서, 한결같이 청정하고자 하여,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순전하게 원만 청정하면, 범행이 희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재물과 친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되, 몸의 행을 바로 하고 입의 네 가지 허물[四過]16)을 단속하며, 바른 생활로 청정하고, 성현의 계를 익히며, 모든 감관[根門]을 지켜,17) 마음을 단속하고 생각을 바르게 한다. 눈으로 빛깔을 볼 때도 그 형상을 취하지 않나니, 만일 눈이 율의(律儀)가 아닌 것[不律儀]18)에 머무르면 세간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항상 마음에서 새어나온다. 그러나 그는 눈에서 바른 계를 일으키나니, 귀·코·혀·몸·뜻에서 바른 계를 일으키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는 성현의 바른 계를 성취함으로써 감관을 잘 거두어 잡아, 가고 오고 돌아다니고 돌아보기와 굽히고 펴고 앉고 눕기와, 자고 깨고 말하고 잠잠하기를 모두 지혜에 머물러 지혜를 바르게 한다. 그는 이러한 성인의 계를 성취하여, 감관을 지켜 단속하고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고요히 세간을 멀리 떠나, 쓸쓸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마음을 집중해 편안히 머무르며,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끊고, 탐욕(貪欲)을 떠나 탐욕을 깨끗이 버린다. 또 세간의 진에개(瞋?蓋)·수면개(睡眠蓋)·도회개(掉悔蓋)·의개(疑蓋)를 끊고, 진에개·수면개·도회개·의개를 떠나, 진에개·수면개·도회개·의개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그리하여 마음과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는 모든 장애로서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5개(蓋)의 번뇌를 끊어 없앤다.
그러므로 안의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하고, 이와 같이 바깥의 몸과 안팎의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야 하나니,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하리라. 이것을 비구가 4념처를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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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집착을 벗어나 가정 생활[家法]을 버리고 출가(出家)생활을 하는 것을 말함.
16) 즉 험담[惡口]·이간하는 말[兩舌]·거짓말[妄語]·농담[綺語]을 말함.
17) 6식(識)의 감관(感官)을 통제하여 5욕(欲)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함.
18) 비율의(非律儀), 혹은 악계(惡戒)라고도 함. 선을 방해하고 악을 일으키는 마음 준비.
637. 바라제목차경(波羅提木叉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의 경에서 말한 것과 같고, 다만 다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와 같이 출가하고 나서 고요한 곳에 머물러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율의(律儀)19) 를 거두어 수호하고20) 알맞은 장소에서 바른 행위를 실천하며[行處具足],21) 사소한 잘못에도 크게 두려워하고, 계법을 받아서 배워야 한다.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끊고, 살생을 좋아하지 않으며,……(내지)……모든 업의 방도에 대해서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가사와 발우를 몸에 지니는 것은 새의 양 날개와 같나니, 이와 같이 계법을 배워 성취하고 4념처를 닦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38. 순다경(純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마갈제(摩竭提) 나라(那羅) 마을에서 병으로 열반하였다. 순다(純陀) 사미(沙彌)가 그를 간호하고 공양하였었는데, 존자 사리불이 병으로 열반하자, 존자 사리불을 공양한 뒤에 남은 사리(舍利)를 수습해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가서,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발을 씻은 뒤에,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존자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서서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존자시여, 마땅히 아십시오. 저의 화상 존자 사리불께서는 이미 열반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사리와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존자 아난은 순다 사미의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온 몸을 가눌 수 없고, 사방이 캄캄하고 아득하며,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순다 사미가 제게 찾아와 '화상 사리불이 이미 열반하시어, 그 분의 사리와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냐? 아난아, 그 사리불이 받은 바 계의 몸[戒身]22)을 가지고 열반하였느냐? 선정의 몸[定身]·지혜의 몸[慧身]·해탈의 몸[解脫身]·해탈지견의 몸[解脫知見身]을 가지고 열반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저 법(法)을 내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서 말한 이른바 4념처(念處)·4정단(正斷)·4여의족(如意足)·5근(根)·5력(力)·7각지(覺支)·8도지(道支)를 가지고 열반하였느냐?
아닙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비록 받은 바 계의 몸에서부터 나아가서 도품(道品)의 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가지고 열반하진 않으셨지만, 존자 사리불께서는 계를 지니고 많이 들었으며,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셨고, 항상 세간을 멀리하며 수행하고, 방편으로 꾸준히 힘썼으며, 생각을 거두어 편안히 머물고 한마음으로 선정에 들어 민첩하고 날랜 지혜[捷疾智慧]·깊고 예리한 지혜[深利智慧]·초월하는 지혜[超出智慧]·분별하는 지혜[分別智慧]·큰 지혜[大智慧]·넓은 지혜[廣智慧]·매우 깊은 지혜[甚深智慧]·비할 바 없는 지혜[無等智慧]의 보배를 성취하시어, 보이고 가르치며, 비추고 기쁘게 하며, 잘 칭찬하면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저는 법을 위하고 법을 받는 이[受法者]를 위해서 근심하고 괴로워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앉거나 일어나거나 혹은 생성하는 일들은 무너지고야 마는 법이니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무리 무너지지 않게 하려한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내가 전에 이미 말한 것처럼, 사랑스러운 모든 사물과 마음에 드는 것 등 일체의 것들은 다 어긋나고 이별하게 되는 법으로서 늘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큰 나무의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가 무성한 데서 큰 가지가 먼저 부러지는 것처럼, 큰 보배산에서 큰 바위가 먼저 무너지는 것처럼, 여래의 대중권속에서 저 대성문(大聲門)이 먼저 반열반(般涅槃)한 것이니라.
만일 그 곳이 사리불이 머물고 있던 곳이면, 그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처럼 그곳에서 나는 공허하지 않았으니, 그건 사리불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이미 그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난아, 내가 말했듯이 사랑스럽고 갖가지 마음에 드는 것들은 다 이별하기 마련인 법이니, 너는 이제 너무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 또한 오래지 않아 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마땅히 자기[自]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않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라면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에서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깥의 몸과 안팎의 몸,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리라.
아난아, 이것을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섬으로 삼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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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율장(律藏)에 포함된 계들의 집성(集成)을 말하는데, 바라제목차는 팔리어로 Patiokkha라고 하며, 의역하여 별별해탈(別別解脫)이라고 함. 한 가지 한 가지의 계행(戒行)을 지니고 잘 지켜, 몸과 입으로 짓는 그릇된 죄의 허물을 삼가고 막으면, 점차로 번뇌를 해탈하게 되는 것을 말함. 율의(律儀)는 선을 일으키는 계의 의미로, 바라제목차와 합하여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라고도 함. 수계(受戒)의 작법에 따라 많은 계를 실천하여 신·구·의의 악업을 벗어나는 것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임. 이렇게 하여 많은 계의 조문이 완전히 구비된 것이 구족계(具足戒)임.
20)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계 가운데 중요한 계행(catunna silana jesakasalana)을 요구했다. 첫째는 계본(戒本)의 수호(守護), 둘째는 감관(感官)의 수호, 셋째는 생활의 청정, 넷째는 생필품과 관련된 계행이다.
21) 이 부분은 팔리본에 cara-gocara-sampanno라고 되어 있는데 cara는 바른 행위를 뜻하고, gocara는 소가 풀을 뜯는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맥의 전체적 의미는 '바른 행위를 실천할 수 있는 장소를 갖추고', 즉 알맞은 장소에서 바른 행위를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22) 이 부분이 팔리본에는 sila-kkhandham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한역하면 '계온(戒蘊)' 즉 '계행의 다발'이라고 할 수 있다.
639. 포살경(布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투라국(摩偸羅國) 발타라(跋陀羅)강 가에 있는 산개암라(傘蓋菴羅) 숲에 계셨는데, 존자 사리불과 목건련이 열반하고서 오래지 않은 때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달 보름날 포살(布薩) 때 대중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대중의 모임을 관찰하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대중을 관찰해보니 텅 빈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것은 사리불과 대목건련이 반열반(般涅槃)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성문(聲門)들 중에 오직 이 두 사람만이 능히 잘 설법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변설(辨說)하기를 만족스럽게 행했었다.
두 종류의 재물이 있으니 금전이란 재물과 법이란 재물이다. 금전이란 재물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했었고, 법이란 재물은 사리불과 목건련으로부터 구했었지만, 여래는 이미 세간[世]23)의 재물과 법의 재물에서 떠났느니라.
그러나 너희들은 사리불과 목건련이 열반하였다고 하여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비유하면 큰 나무의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가 무성한 데서 큰 가지가 먼저 부러지는 것과 같고, 보배산에서 큰 바위가 먼저 무너지는 것처럼, 여래의 대중 가운데서 사리불과 목건련이라는 두 대성문(大聲聞)이 먼저 반열반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너희들은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생긴 법·일어난 법·지어진 법·만든 법·무너지는 법으로서 어떻게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아무리 무너지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내가 전에 이미 말한 것처럼, 사랑스러운 어떤 것도 모두 떠나고 흩어지기 마련이니, 나도 오래지 않아 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자기[自]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안의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한다. 그와 같이 바깥의 몸과 안팎의 몸과,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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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시(施)'자로 되어 있으나 앞뒤 문맥의 흐름과 송(宋)·원(元)·명(明) 본을 참조하여 '세(世)'자로 바꿔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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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청계사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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