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24-2

2023. 3. 1. 21:40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611. 선취경(善聚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착한 법의 무더기[善法聚]와 착하지 않은 법의 무더기[不善法聚]가 있다. 어떤 것을 착한 법의 무더기라 하는가? 이른바 4념처를 말하나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正說]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원만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4념처에서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身身觀念處]와 느낌[受]·마음[心]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法法觀念處]이니라.

 

어떤 것을 착하지 않은 무더기라 하는가? 착하지 않은 무더기란 이른바 다섯 가지 덮개[五蓋]3)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원만하지 못한 것이 착하지 않은 무더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섯 가지 덮개란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진에개(瞋?蓋)·수면개(睡眠蓋)·도회개(掉悔蓋)·의개(疑蓋)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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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팔리어로는 pancanavara a라고 함. 개(蓋)는 장애(navaraga)를 뜻하는 말로서 마음을 덮는 다섯 종류의 번뇌 즉, 탐욕개(貪欲蓋:탐냄)·진에개(瞋?蓋:화냄)·수면개(睡眠蓋:무지몽매함)·도회개(掉悔蓋:불안심리)·의개(疑蓋:의심)이다.

 

 

612. 궁경(弓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네 종류의 탄탄한 활을 가지고 센 힘으로 기술을 부려4) 다라(多羅) 나무 그림자를 쏘면 걸림 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래의 네 성문(聲門)5)은 뛰어난 방편과 날카로운 근기와 지혜로써 백 년 동안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래에게서 백 년 동안 설법과 가르침을 받을 때, 다만 밥 먹고 글 쓰고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말하고, 항상 들으며, 날카롭고 밝은 지혜로 여래의 말씀을 끝까지 받아 지녀 아무런 장애나 막힘이 없어 여래께 두 번 묻지 않아도 된다. 여래의 설법은 끝이 없는 것이라, 백 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법을 들어 목숨이 다하더라도 여래의 설법은 다할 수 없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 설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며, 그 설법의 단어[名]와 구절[句]과 음절[味]의 몸6)도 또한 한량이 없고 끝이 없다. 이른바 4념처에서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을 관찰하는 염처[身念處]와 느낌[受]·마음[心]·법(法)을 관찰하는 염처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모든 사념처경(四念處經)은 모두 '그러므로 비구여, 4념처를 충분히 닦아 익히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키고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로 공부해야 하느니라'라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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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대장경에는 '네 개의 탄탄한 활'로 표현되어 있으나, 팔리본(S. 20. 6. Dhanuggaho 弓術師)에는 '훌륭한 궁술을 가진 잘 배우고 숙련되고 훈련된 네 명의 궁술사'로 표현되어 있다.

 

5) 즉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를 말함.

6) 명구문신(名句文身)과 동일한 말로서 인도 일반의 문법학에서는 명(名, naman)은 명사를, 구(句, pada)는 단어를, 문(文, vyanjana)은 자음을 의미함.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좀더 자세히 하여 명은 사물의 이름으로 단어를 가리키며, 구는 '제행무상(諸行無常)'등의 성구(成句) 혹은 문장을 가리키고, 문은 명(名)과 구(句)가 근거로 하는 음성의 굴곡, 문자(文字) 즉 개개의 음절을 말함. 이것들이 각각 두 개 이상 집합할 때를 신(身)이라 하는데, 여기서 '신'은 집합의 뜻으로 복수를 나타내며 두 개 이상의 것은 다문신(多文身)·다명신(多名身)·다구신(多句身)이라 함.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명구문 자체가 실재하는 것으로 본 반면, 경량부(經量部)나 유식파(唯識派)에서는 이를 가유(假有)의 것으로 봄.

 

 

613. 불선취경(不善聚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착하지 않은 무더기[不善聚]와 착한 무더기[善聚]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무더기인가?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착하지 않은 무더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뿌리란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의 착하지 않은 뿌리[貪不善根]와 성냄의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와 어리석음의 착하지 않은 뿌리[癡不善根]이니라.

 

어떤 것이 착한 무더기인가? 4념처(念處)를 말한다. 왜냐하면, 순전히 착함을 원만히 갖춘 것을 4념처라 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관찰하는 염처와 느낌·마음·법을 관찰하는 염처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뿌리에 대해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몸으로 짓는 나쁜 행[身惡行]·입으로 짓는 나쁜 행[口惡行]·뜻으로 짓는 나쁜 행[意惡行]의 세 가지 나쁜 행과, 탐욕의 생각[欲想]·성냄의 생각[?想]·해침의 생각[害想] 등 세 가지 생각과, 탐욕의 감각[欲覺]·성냄의 감각[?覺]·해침의 감각[害覺] 등 세 가지 감각과, 탐욕의 경계[欲界]·성냄의 경계[?界]·해침의 경계[害界] 등 세 가지 경계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614. 대장부경(大丈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장부(大丈夫)란 어떤 이를 대장부라 하며, 어떤 이를 대장부가 아니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비구가 여래에게 대장부의 뜻을 묻는구나.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해 주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만일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기는 하지만, 그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면서 마음이 욕심을 여의지 못하여 해탈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有漏]를 다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를 대장부가 아니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비구가 느낌[受]·마음[心]과, 법(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면서 마음이 욕심을 여의지 못하여, 해탈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면서 마음이 욕심을 여의어 해탈하고 모든 번뇌를 다했다면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만일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그가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면서 마음이 탐욕을 여의어 해탈하고 모든 번뇌를 다했다면,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해탈하였기 때문이니라.

 

비구여, 이런 이들을 대장부와 대장부가 아닌 자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그 발에 예배하고 떠나갔다.

 

 

615. 비구니경(比丘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사위성으로 들어가다가 도중에 '나는 지금은 먼저 비구니 사원으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서 곧 비구니 사원으로 갔다. 여러 비구니들은 멀리서 존자 아난이 오는 것을 보고, 빨리 자리를 펴 앉기를 청하였다. 그 때 비구니들은 존자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저희 비구니들은 4념처(念處)를 닦아 마음을 매어 머물면서, 앞의 생각[前]·뒤의 생각[後], 마음의 안정됨[昇]·마음의 산란함[降]7)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존자 아난이 모든 비구니들에게 말했다.

훌륭하오, 훌륭하오. 누이들이여, 마땅히 그대들이 말한 바대로 공부해야 할 것이오. 무릇 4념처를 닦아 익혀 마음을 매어 잘 머무는 이는 마땅히 그와 같이 앞의 생각·뒤의 생각, 마음의 안정됨·마음의 산란함을 알게 될 것이오.

 

그 때 존자 아난은 여러 비구니들을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였고, 설법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사위성에서 걸식하고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발을 씻은 뒤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비구니들의 말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마땅히 그렇게 공부하여야 한다. 4념처에 마음을 매어 잘 머물면 앞의 생각·뒤의 생각, 마음의 안정됨·마음의 산란함을 알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을 바깥에서 찾으나 그것을 제어한 뒤라야만 그 마음을 찾게 되며, 마음이 산란하면 해탈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문다면, 그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며 혹 몸이 잠에 빠지거나 마음이 게을러지더라도, 그 비구는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고 깨끗한 모양을 취할 것이다. 깨끗한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깨끗한 모양을 기억하면 그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즐거운 뒤에는 기쁨이 생길 것이며, 그 마음이 기쁜 뒤에는 몸이 편히 쉴 것이요, 몸이 편히 쉬면 곧 몸의 즐거움을 느낄 것이요, 몸의 즐거움을 느낀 뒤에는 그 마음이 곧 안정될 것이니라. 마음이 안정되면 그는 곧 거룩한 제자이니, '나는 이 이치에 있어서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거두어 쉬게 하여, 거친 생각[覺想]과 세밀한 생각[觀想]을 일으키지 않고,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이 평정한 마음[捨念]으로 즐겁게 머물자'라고 마땅히 이렇게 공부하고서 즐겁게 머물면 사실 그대로 알게 되느니라. 느낌·마음·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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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념처에 마음을 매어두고 수행할 때 앞의 생각과 뒤의 생각이 분명해지고, 마음의 안정됨과 마음의 산란함을 스스로 알게 됨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 '승(昇)'은 마음이 경지에 오른 상태 즉 안정된 상태를 뜻하고, '강(降)'은 마음이 후퇴한 상태 즉 산란한 상태를 뜻한다.

 

 

616. 주사경(廚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자기 마음의 모습[心相]을 잡아 밖으로 흩어지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비구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으며 현명하지 못하면, 자기 마음의 모습을 잡지 않고 바깥의 형상을 취하며 그런 뒤 타락하여 스스로 장애를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요리사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어 숙련된 솜씨로 여러 가지 맛을 조화하지 못하면, 주인을 받들어 공양할 때에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것에 있어 주인의 생각을 맞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인이 좋아하는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여러 가지 맛의 조화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주인을 친히 모시지도 또 가까이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바라는 바를 잘 들어 그 마음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 마음을 써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켜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만일 주인의 뜻에 맞지 않으면 주인은 기뻐하지 않으리니,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상(賞)도 받지 못할 것이요, 또한 사랑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리석은 비구도 그와 같아서 분별력이 없고 현명하지 못하면,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데 머물면서 큰 번뇌를 끊지 못하고, 그 마음을 거두어 잡지 못하며, 또한 안 마음[內心]의 적정함을 얻지 못하고, 훌륭하고 묘한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앎[正知]을 얻지 못한 채, 다시 네 가지 증상된 마음[增上心法]과 현세에 안락하게 머묾과 본래부터 얻지 못한 안온한 열반(涅槃)을 얻지 못한다. 이것을 비구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으며 현명하지 못하면, 안 마음의 모습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고 바깥 형상을 취해서 스스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지혜롭고 말재주[辯才]가 있어, 훌륭한 솜씨로 안 마음을 잡아 파악한 뒤에 바깥 형상을 취한다면, 그는 뒷날 끝내 후퇴하거나 스스로 장애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면 요리사가 지혜롭고 총명하여 훌륭한 솜씨가 있으면 주인에게 공양할 때 능히 여러 가지 맛을 잘 조화하여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맛에 대해 주인이 좋아하는 맛을 잘 파악하고, 여러 가지 맛을 조화하여 그 마음에 맞추는 것과 같다. 그 주인이 원하는 맛을 잘 들어 자주 바치면, 주인은 기뻐서 반드시 녹(錄)을 주고, 몇 곱이나 사랑이 더할 것이다.

 

이 지혜롭고 영리한 요리사가 주인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것처럼 비구도 또한 그와 같으면,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데 머물면서 큰 번뇌를 끊고, 그 마음을 잘 거두며, 안 마음이 고요히 쉬고, 바른 기억과 바른 앎으로 네 가지 증상된 마음과 현세에 안락하게 머묾과 본래부터 얻지 못한 안온한 열반(涅槃)을 증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지혜롭고 말재주가 있어 훌륭한 솜씨로, 안 마음의 모습을 잘 취해 가지고 바깥 형상을 거두어 가져서 끝내 타락해 스스로 장애가 생기는 일이 없는 것이라 하나니, 느낌·마음·법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17. 조경(鳥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세상에 라파(羅婆)8)라는 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매에게 사로잡혀 허공으로 날아 오르면서 공중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는 자각하지 못하여 갑자기 이런 변을 당했구나. 나는 공연히 부모의 경계(境界)를 버리고 벗어나 다른 영역[他處]을 노닐다 이런 곤경에 처한 것이다. 오늘 이렇게 남에게 곤란을 겪으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하리?'

 

매가 라파에게 말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네 자신의 경계가 어디에 있느냐?'

라파가 대답했다.

'밭 언덕 밑에 내 경계가 있어 족히 모든 어려움을 면할 수 있다. 그곳이 내 집이요, 부모의 경계다.'

 

매는 라파에게 교만한 생각이 일어나 말했다.

'밭 언덕 밑으로 돌아가도록 너를 놓아주면, 내게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에 라파는 매 발톱에서 벗어나 밭 언덕 큰 흙덩이 밑으로 돌아가 편안히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흙덩이 위에서 매와 싸우려고 하자, 매는 크게 화를 내었다.

'요 조그만 새가 감히 나와 싸우려 드느냐?'

 

그리고는 잔뜩 성을 내어 세차게 날아 곧장 곤두박질 쳤다. 그러자 라파는 흙덩이 밑으로 들어갔고, 매는 날던 힘에 몰려 가슴을 단단한 흙덩이에 부딪치고는 몸이 부서져 곧 죽고 말았다.

 

그 때 라파가 흙덩이 밑에 납작 엎드려 우러러 보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매가 잔뜩 힘을 쓰며 내려올 때

라파는 제 경계 의지하였네.

사납게 일어나는 분노의 힘을 따라

그 몸 부서지는 화를 입었네.

 

나는 샅샅이 꿰뚫어 알아

스스로 내 경계 의지하나니

원수를 항복 받은 그 마음 기쁘고

스스로 돌아보니 그 능력 기쁘네.

 

비록 너에게 사납고 어리석은

백천 마리 큰 코끼리의 힘이 있어도

그것은 마침내 내 지혜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저 서슬 시퍼런 매를 꺾어버린

뛰어나고 훌륭한 내 지혜를 보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저 새와 매의 경우처럼 어리석어 가까이 해야할 부모의 경계를 스스로 버리고 다른 영역[他處]에서 노닐면 그런 재앙을 만나게 되느니라. 너희 비구들도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의 경계와 노닐 영역을 잘 지키고 다른 경계[他境界]에서 벗어나기를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니라. 비구들아, 다른 영역[他處]과 다른 경계[他境界]란 이른바 다섯 가지 탐욕의 경계이니, 눈으로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기억할 만한 오묘한 빛깔[色]을 보면 욕심으로 물들어 집착하게 되고, 귀로 소리를 인식하고, 코로는 냄새를 인식하며, 혀로는 맛을 인식하고, 몸으로는 감촉을 인식하여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기억할 만한 묘한 감촉을 인식하면 욕심으로 물들어 집착하게 되는데, 이것을 비구의 다른 영역과 다른 경계라고 한다.

 

비구들아, 자기 영역[自處]과 부모의 경계[父母境界]란 곧 4념처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念處),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자기가 다닐 영역과 부모의 경계에서 스스로 노닐고, 다른 영역과 다른 경계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마땅히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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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팔리어로는 lapa라고 함. 메추라기[?]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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