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체 보이는 것의 이전임'을 확신해야 한다

2023. 3. 20. 22:06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스승이 뿌린 씨앗이 한 구루 나무가 될 것이고, 여러분은 그것을 세계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날 그것이 사라질 테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획득하는 것은 남겠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향유하기에 적합한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의 느낌마저도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쾌락도 필요 없고 고통의 경험도 없는 것은 언제입니까?

그것은 "내가 있다"는 기억이 없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유년기와 청년기가 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개인성도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 것도 영구적으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아무 것도 여러분에게 충만함을 안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허기가 남겠지요.

여러분의 존재의 느낌 자체가 모든 탐욕의 원인입니다.

어떤 것을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얻으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참된 존재는 한량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에 대한 여러분의 관념과 관계없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습니다.

남들이 여러분이 죽었다고 선언해도,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성은 여러분이 좋아하든 않던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망이나 기술이 여러분을 지금의 이 형상으로 출현하게 했습니까?

 

명상 중에 무(無)의 체험이 있을 때, 그것을 아는 자는 어떻게 있습니까?

개인적 영혼들은 기적이 큰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지(知)가 아닙니다.

만일 앎이 끝나면 그것이 죽음입니까?

 

인간들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존재의 느낌은 모두에게 존재합니다.

그것은 가장 독보적인 것이고, 그것의 원인은 극소수만이 압니다.

그것이 탄생의 비밀입니다.

몸 안의 의식은 세계와, 세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세계가 출현할 때, 그것은 세계 이전에 의식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구루데바란 , " 나는 한 인간이다." 라는 앎의 원인인 저 순수한 의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형상을 갖기 이전에는 이 앎이 없었습니다.

 

모든 산 존재들은 살고 싶어 하는데, 그것이 그 존재의 원초적 욕구입니다.

모든 노력이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경주됩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계속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거의 숭배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초의 사랑이고, 그 뒤에 다른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지각성 혹은 아뜨만에 대한 직접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참된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 속으로 계속 "자야 구루" 만트라를 염하십시오.

결국에는 이 의식이 진아 속으로 합일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몸을 걷어 갈 수는 있어도, 그 의식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휴식을 얻습니다.

휴식을 얻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나는 남자다, 혹은 여자다"는 몸과 관련된 기억입니다.

그 몸이 잊어질 때는 어떤 욕구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우리의 참된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니라 의식인데, 그것을 우리는 몸과 동일시했습니다.

이것은 지(知)를 축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이 되었습니다.

실은 어떤 개인도 없고 현현물(현상계 전체)만 있습니다.

아스트랄체(미세체,마음)를 아는 자들은 그것이 전 세계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현자 그 자체에 대해 온갖 용어가 다 붙혀졌습니다.

세계와 브라만은 둘이 아닙니다.

세계는 의식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아는 자는 의식일 뿐이고, 이 앎 또한 의식에 기인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우리가 스승을 기억하면서 홀로 있어야 합니다.

스승과의 하나됨이 있을 때는 홀로됨이나 기억하기라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승과 하나됨이 없으면 영적인 지(知)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두들이 요가적 삼매로 자신들의 삶을 끝내야 했습니다.

그들의 의식을 가지고 계속해 나가기가 여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이원적 상태에서만 이 의식이 문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스승과 하나가 되십시오.

이것은 의식으로서 머무르라는 뜻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것'은 빛과 같은데,

그것이 의식이고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깨어 있는 한, 참된 지(知, 無分別持)에 대한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깨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러분은 보이는 모든 것 이전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일체의 이전이다" 라는 것은 여러분이 수백 살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이전의 존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아는 것은 의식하게 된 뒤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불과 한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가르침의 단순함은 분별을 할 수 있는 덕 있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없다면, 무엇이 존재합니까?

여러분이 스승(의식)과 하나일 때, 그의 은총이 흐르고 여러분은 적절한 이해를 갖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자신이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때에도 결코 행위자가 아니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재의 느낌과 그것의 모든 의미가 침묵하게 될 때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지성과 그것의 모든 능력은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필요한 것은 분별과 믿음입니다.

세계가 알려지는 것은 여러분 때문이고, 세계는 여러분 안에 거주합니다.

거미의 침에 의해 거미줄이 만들어 지듯이,

세계는 여러분 자신의 빛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세계라는 빛 안에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것이 여러분의 속박의 원인입니다.

실은 셰계가 여러분의 빛 안에서 나타납니다.

 

말이나 관념들이 행위를 일으킵니다.

아스트랄체의 빈 공간 안에 있는 것이 거듭된 부름에 의해 깨어납니다.

이 아스트랄체가 무엇이며, 그것은 언제부터 존재합니까?

그것은 그로 인해 우리가 존재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기억이 아스트랄체의 성질입니다.

(註 : 아스트랄체는 '미세신'으로 불린다. 이 보이지 않는 몸은 우리의 모든 카르마를 내장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본질적으로는 '존재에 대한 기억'이 곧 카르마이다. )

 

헌신자와 별개의 신도 없고, 신과 별개의 숭배자도 없습니다.

이 헌신자가 곧 의식, 혹은 태고의 신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몸-정체성과 죽음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전 우주가 이 단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것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를 압니다.

규칙적으로 장시간씩 명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스승의 참된 이들이라는 징표입니다.

힘들 때는 언제든 "구루, 구루"을 염하십시오.

어떤 상태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어떤 죽음도 없습니다. (245)

 

-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법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