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한편의 웃기는 코메디

2022. 12. 28. 21:51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어느 날 저녁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 마하리지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종종 ' 모든 현상은 환상일 뿐이다. 마치 영화나 연극처럼- - '

이라고 말씀하시는데 - - - "

 

마하리지가 질문을 중단시키고 말했다.

마하리지 : 그것은 정말로 웃기는 코메디, 어릿광대들이 시끄럽게 뛰놀다 사라지는 희극일 뿐입니다.

이 세상이 정말 어떤 것인지 아신다면 당신도 웃고 말 것입니다.

자, 여기 내가 내집에 있습니다. 나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내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들이 몰아 닥쳐서는 모월 모일 내가 캘가타에서 살인과 절도를 했다고 잡아가려고 한다 칩시다.

나는 집 밖에도 나가지 않은 내가 캘가타에서 살인과 절도를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무 자신있게 말하니까 경찰들이 다소 당황해서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과하고는 가버립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여러분은 앞서 말한대로 저같이 칼가타에 있지도 않았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죄인취급을 하며 잡아가려 하니까, 경찰관이 무서워서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잡혀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서는 구속이 싫다며 자유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습지요?

내가 분리되지 않고 전체 그대로인 원래의 상태에서는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태어났고", 어떠한 육체가 "나"이며, 어떤 두 남녀가 내 "부모"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나는 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내가 태어났다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존재한다고 완전히 믿게 되었고 한 인격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태어난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또 태어나기 전에 태어나는 것에 동의한 적도 없고, 육체가 억지로 떠맡겨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는 했습니다. )

이런 생각은 점점 더 굳어져서, 내가 어떤 육체적 존재로서 태어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 날 나는 "죽을" 것이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승의 은혜로 나는 나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놀림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으로 알려진 것이 흐르는 동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사건이 일어난 것보다, 우리가 이런 관념적일 뿐인 사건을 경험되는 어떤 실체라고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더 놀라운 착각입니까 ! 이러한 착각 뒤에는 이런 착각을 가능케하는 더 근원적인 착각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입니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객체들이 움직일 수 있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움직이는 이 객체들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은 어릿광대가 나와서 떠들다가 사라지는 코메디같은 것이라고 제가 한 말이 이해가 됩니까?

좀 더 나아가서 여러분들 스스로 만든 개념적인 존재들이 어떻게 이 코메디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 봅시다.

여러분은 삶이라는 이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행동하고 있다고 계속 상상합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이 코메디는 미리 쓰여진 각본에 따라 펼쳐져야만 합니다.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사람이라는 이 관념적 존재는 스스로 자신을 사건에 결부지어 놓고는 고통을 자초합니다.

그리고는 구속이니 자유니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자유란, 삶은 한낱 코메디일 뿐이라는 것과 여러분의 진정한 실체는 어떤 모양, 이름, 성질을 가진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유란, "나"의 본래 모습은 모든 지각있는 존재들에 있는 지각할 수 있는 힘, 즉 의식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의식 이전의 그 본체를 아는 것입니다.

자유란, 절대적 독존인 "나"는 분리되어 나타나는 상대적 대상없이 현상 속에 있는 작용을 가능케 하는 근본, 즉 듣고, 보고 , 느끼고, 맛보고, 냄새맡고, 생각하는 그 이전(以前)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제 왜 당신이 고통스러운지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자신을 잘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잘못 알아본 그것을 당신 자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 담배가계의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