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9. 22:48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ㅇ. 마음이 그 자신의 성품을 끊임없이 탐구하면, 마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 드러나네.
이것이 모두에게 집적적인 길이라네.
마음은 생각에 불과하며 모든 생각 중에서 '나'라는 생각이 뿌리라네.
따라서 마음은 '나'라는 생각에 지나지 않네.
이 '나'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을 내면에서 추구하면, 그것은 사라진다네.
이것이 지혜의 추구라네.
그 '나'가 사라진 곳에 '나-나'가 스스로 나타나니,
이것은 무한자(완전자)라네.
에고가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이 있고,
에고가 없으면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실로 에고는 모든 것이네.
따라서 이 에고가 무엇인가 하는 탐구가 일체를 놓아버리는 유일한 길이라네.
'나'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그것'의 상태라네.
'나'가 일어나지 않는 그 상태를 탐구하여 그것을 성취하지 않고서
어떻게, '나'가 다시는 되살아 날 수 없는 자기 소멸을 성취할 수 있으랴?
그것을 성취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기가 바로 '그것'인 자신의 참된 상태 안에 안주할 수 있으랴?
물에 빠진 물건을 찾으려는 사람이 물 속으로 잠수 하듯이,
말과 호흡을 제어하면서 예리한 일념의 마음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 속으로 뛰어들어 '나'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내야 하네.
진아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탐구는 '나'라는 말의 근원을 추구하는 것이네.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저것이 아니다'에 대한 명상은
탐구에 보조수단은 될지 모르지만 탐구는 될 수 없네.
마음의 내면에서 '나는 누구인가?'하고 탐구하면,
우리가 심장에 도달하자마자 개인적인 '나'는 부끄러워서 넘어지고,
즉시 실재가 '나-나'로서 저절로 스스로 드러낸다네.
그것은 '나'로서 자신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에고가 아니라 완전한 존재, 곧 절대적 진아라네.
바가반 : 속박과 해탈의 관념은 마음의 변상(變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 자체 아무런 실재성이 없으며, 따라서 스스로 작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어떤 것의 변상이므로,
그것들의 공통근원이자 토대인 (그것들과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만약 속박과 해탈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 근원을 탐구해 들어가면,
우리는 그것들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누구인가?"하고 진지하게 탐구하면 우리는 '나'나 '나에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이때 남아 있는 것(진아)을 우리는, 오직 '그것 자체'로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 존속하는 것으로서 생생하고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지고의 진리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체험인 이 생생한 깨달음은,
자기 자신으로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이 단 한 순간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말뿐인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내면을 탐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 옵니다.
따라서 이 깨달음을 성취하여 진아와 절대적으로 동일한 상태로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하는 확림된 결론에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바가반 : 진아는 순수의식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그 자체 자각능력이 없고 스스로 '나는 육체다'라고 말하지 않는 육체와 동일시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무한한 진아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순수의식과 지각능력 없는 육체 사이에서 가짜 '나'가 일어나서 그 자신을 육체 안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를 찾아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유령처럼 사라집니다. 이 유령이 에고, 혹은 마음, 혹은 개인성입니다.
모든 경전들은 이 유령의 출현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현재의 상태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목표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ㅇ. 반가반은 여기서 에고를 '유령' 혹은 '가짜 나'라고 부르고 있다.
앞에서 두명의 파르시 여사들에게 한 설명에서 그는 '거짓 나'와 '참 나'를 이야기한다.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그는 가끔 거짓 '나'를 포기하고 참'나'를 탐구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단지, 보편적인 진아로서의 자기의 참된 동일성(정체성)을 깨달으려면
'나'를 하나의 개인적 존재로 그릇되게 동일시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개의 '나'가 있어서 하나의 '나'가 다른 하나의 '나'를 추구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번번히 주장했다. 비이원성의 진리에 따르면 진아를 본다는 것은 진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의 주체와 하나의 대상이라는 이원성과, '보는 자', '봄', 그리고 '보이는 것'이라는 3요소가 있게 될 것이다.
헌신자 : 진아를 어떻게 깨닫습니까?
바가반 : 누구의 진아입니까? 찾아내십시오.
헌신자 : 저의 진아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입니까?
바가반 : 찾아내야 할 사람은 그대입니다.
헌신자 : 저는 모르겠습니다.
바가반 : 그 물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대의 말에서 그 '나'는 누구입니까? 무엇을 모른다는 것입니까?
헌신자 : 어떤 사람 아니면 제 안의 어떤 무엇입니다.
바가반 : 그 어떤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구의 안에 있는 것입니까?
헌신자 : 아마 어떤 힘이겠지요.
바가반 : 찾아내십시오.
헌신자 : 제가 왜 태어났습니까?
바가반 : 누가 태어났습니까? 그 답은 그대의 모든 질문과 동일합니다.
헌신자 : 그러면 저는 누구입니까?
바가반 : (미소지으며) 그대는 저를 시험하러 왔습니까? 그대가 누구인지는 그대가 말해야 합니다.
헌신자 : 아무리 애를 써도, 저는 그 '나'를 붙잡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식별이 되지 않습니다.
바가반 : '나'가 식별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대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헌신자 : '나는 누구인가?'하고 탐구하는 대신에, 저 자신에게 '나는 누구냐?'고 물어서, 스승의 형상을 한 신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당신께 제 마음이 고정될 수 있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쩌면 저는 저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기 보다는, 그러한 탐구를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목표에 더 가까이 갈 듯 합니다.
바가반 : 그대의 탐구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그대는 결국 하나인 '나'. 즉 진아에 도달해야 합니다.
'나'니 '너'니,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이런 모든 분별은 무지의 표시일 뿐입니다. 지고의 '나'만이 존재합니다.
이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의 목표는 자기탐구를 통해 지금 여기서 뭃리적 존재의 이러한 겉모습을 초월하려는 것인데, 단지 육체에 속할 뿐인 '나'와 '너'의 구별을 할 여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대가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서 생각의 근원을 탐구할 때, '너'가 어디 있고 '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대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진아를 추구하고 진아가 되어야 합니다.
헌신자 : 그러나 '나'가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는 결국 하나의 공허한 공식으로 귀결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제가 스스로에게 이 물음을 끝없이 던지면서, 마치 어떤 진언(mantra)을 암송하듯이 해야 합니까?
바가반 : 자기탐구는 절대로 공허한 공식이 아니며, 그것은 어떤 진언을 암송하는 이상의 것입니다.
만약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가 단순히 마음 속으로 하는 질문일 뿐이라면, 그것은 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 탐구의 목적은 온 마음을 그 근원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나'가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탐구는 더 더욱 공허한 공식이 아닌 것이, 이 탐구는 마음을 순수한 진아자각(Self-awareness)에 꾸준히 맞추어 가는 온 마음의 강렬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자기탐구야말로 조건지워지지 않은 절대적 존재로서의 진정한 그대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수단이며 유일한 직접적 수단입니다.
-아서 오즈번 엮음, 대성 번역 <바가반이 친히 말씀하신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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