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9. 21:16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수행을 통해 이 에고가 제거됨을 여러 번 체험해 본 사람들은,
에고가 제거된 뒤에도 '내가 있다'로서의 자신의 순수한 존재 - 의식을 체험하는데 익숙하므로,
잠에서 막 깨어나는 순간에도 '아무개'라는 부가물이 어떻게 들어와서 혼합되는지를 세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한 수행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날 때는 에고를 그것이 일어나는 장소에서 인식할 수 없다.
그들에게 쉬운 일이 있다면, 생시상태에서 시작된 노력을 통해 에고가 가라앉는 곳(에고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을 발견하는 것뿐이다.
어느 경우는 목표나 성취는 동일할 것이다.
주의가 '내가 있다'는 느낌을 향해 내면으로 점점 더 깊이 집중되고,
그럼으로써 에고가 더욱 더 줄어들어 무(無)가 될 때,
우리의 주의력은 가장 미세한 원자보다도 더 미세해지며, 그래서 더 예리하고 더 밝아진다.
이제 두 상태 사이에서,
즉 잠이 끝난 뒤 깨어나기 전 - 바꾸어 말해서,
첫 번째 생각에 사로잡히기 전 - 의 상태에서 균형을 잡고 머무르는 안주의 힘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 힘을 통해 구도자는, (잠에서 깨어날 때) 나타나서 혼합되는 '아무개'라는 부가물이 2인칭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하는 기술을 얻게 될 것이다.
(즉, 지금까지는 그것이 흡사 1인칭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 비진아, 원초적 껍질, 낯선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인인 자나까 왕이 "지금까지 나를 망쳐 온 도둑을(도둑이 드는 때를, 곧 에고가 일어나는 때와 곳을) 찾아냈다. 그에게 응분의 벌을 가라겠다"고 했을 때 말하고자 한 바였다.
지금까지 마치 1인칭인양 행동해온 에고가 우리에게 낯선 2인칭임이 밝혀졌으니,
그것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바가반 스리 라마나가 가르친 자기 주시를 회복하는 방법{"누구에게?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을 통해 진정한 1인칭('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
곧 존재-의식을 확고히 붙듦으로써,
(마치 반사광이 그것이 일어난 곳에서 소멸되듯이)
에고를 바로 그것이 일어나는 곳에서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대가 이 존재-의식 안에 더 많이 안주하면 할수록(즉, 잠과 생시사이의 상태 안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앞서 그대를 장악했던 보통의 잠은 융해되고, 감각지로 가득찬 생시가 다시 슬며시 기어들 것이네. 그러니 거듭거듭 지칠 줄 모르고 그 안에 안주하라 - [수행의 핵심]-
이 존재-의식 안에 안주하는 수행을 더 크게 확고하게 해 나가면,
우리가 일상 업무에서 벗어날 때마다 이 상태가 종종 찾아와서 우리를 저절로 장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존재의식의 상태는 사실 '우리'일 뿐이므로, 그런 상태가 찾아와 우리를 장악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일이 끝난 뒤 다른 어떤 2인칭이나 3인칭에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진정한 상태, 곧 존재-의식에 안주한다.
이런 일은 매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앞에서 말한 수행을 통해 진아의식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나의 2인칭 생각을 떠난 뒤 다른 생각을 붙잡기 전에 (즉, 두 생각 사이에서) 진아 안주의 상태가 분명히 식별될 것이다.
(<수행의 핵심>의 위의 두 연에서)
왜 우리는 그 상태(우리의 존재-의식)에 있으려고 거듭 노력해야 하고, 더욱 더 많은 사람으로써 그 안에 안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왜냐하면, 우리를 거기서 몰아내는 모든 원습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까지는 이 상태가 오고 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아에 안주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네 (- - -)
이 수행을 통해 우리의 존재-의식 상태가 피할 수 없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체험될 때는, 설사 생시, 꿈, 잠이 지나간다 해도 아무 해가 없다네. (- - -)
이 이른바 세 가지 상태(생시,꿈,잠)에 편재하며 그것을 초월하는 끊임없는 진아의식 안에 잘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 한 가지 상태, 곧 전체, 일체만 있으며, 그것만이 실재한다네 !
'나는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조차도 없는 이 상태가 그대의 본래적인 존재상태라네 ! <수행의 핵심) -
어두운 방에 있던 사람이 반사광을 확고히 붙들고 그것을 따라 열린 공간으로 나왔듯이,
탐구자는 '내가 있다'는 느낌을 근면하게 붙들므로서 감옥- 신경을 통한 몸에 대한 집착-에서 나와 심장의 열린 공간에 도달한다.
이제 이 과정이 진보된 탐구자의 몸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 보자.
잠에서 막 깨자마자 '나'라는 의식이 심장에서 뇌로 번개같이 솟구쳐오른다.
그런 다음 그것은 뇌에서 전신으로 신경을 따라 퍼져나간다.
이 '나'의식은 전기 에너지와 같다.
그것의 추동력 혹은 전압은 그것이 몸을 '나'로 동일시하는 집착의 힘이다.
'나'로서 엄청난 추동력과 속도로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이 의식은 심장 속에서 아무런 부가물도 덧붙혀지지 않은 채 순수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뇌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의 집착의 힘이 워낙 커서 그것이 심장에서 뇌로 솟구쳐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백만분의 1초라고 할 정도로 극히 짧아서, 보통 사람들은 아무 부가물이 덧붙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일어나는 '나'-의식의 이 순수한 상태가, 스리 바가반이 <마하리쉬 복음>제 1권 제 5장 '진아와 에고'에서
" 두 상태 혹은 두 생각 사이의 틈에서 순수한 에고(에고의 순수한 상태 혹은 참된 성품)를 경험한다"고 했을 때 지적한 그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뇌에서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이 '나'의식에게는 신경이 전기력을 나르는 전선과 같은 전달선이다.
( 이 신경이 얼마나 많은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있다'는 순수한 의식이 뇌에 도달한 뒤 '나는 이것이다, 나는 아무개다, 나는 몸이다'와 같은 부가물과 혼합되는 것이 이른바 속박 또는 매듭이다.
이 매듭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으니, 신경속박매듭과 집착매듭이 그것이다.
이 힘, 곧 '나'- 의식과 거친 신경체계의 연관을 '신경속박매듭'이라고 하며,
그것과 원습의 형상을 한 원인신의 연관(집착)을 '집착매듭'이라고 한다.
신경속박매듭은 생기에 속하고, 집착매듭은 마음에 속한다.
마음과 호흡(생기)은 생각과 활동을 각기 작용으로 갖는 한 나무의 두 갈래 가지와 같지만,
그것들의 뿌리(활동력)은 하나라네. -<우빠데샤 운디야르, 제12연>
마음과 생기의 근원은 하나(심장)이므로,
자아탐구를 통해 마음이 절멸되어 집착매듭이 끊어지면 신경속박매듭도 끊어진다.
라자요가에서는 호흡제어를 통해 신경 속박 매듭을 제거한 뒤,
그렇게 하여 제어된 마음이 뇌(사하스라라라)에서 심장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자신의 근원에 도달하게 되어 집착매듭이 끊어진다.
-스리 라마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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