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60)

2021. 8. 13. 20:52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12장. 감정에 관해서

-- 일반 토론 -- 

 

질문자: 전 화가 날 때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내가 여전히 자신을 독립된 개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저 자신에게 말하는데요. 그럼,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이 어떤 격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라메쉬: 이유는 그 뿐입니다. 

 

질문자: 글쎄 그렇다면, 자신을 한 개체로 생각하는 것이 격한 감정이나 화가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유일한 원인이라면, 다시 한번 마하라지께서 화를 내셨다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봐야겠군요! 

 

라메쉬: 하지만 단지 말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또 제가 한 말은, 누가 "마하라지 선생님, 왜 화를 내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분은 아마 자연 발생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누가 화를 내고 있나?"라고 물으실 것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나는 화가 나고, 내 자신을 정화하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마하라지는 화를 냈던 사람이 마하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미묘하지만 엄청난 차이죠. 

 

질문자: 방금 화가 나는 유일한 원인이 자신을 독립된 개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라메쉬: 그렇지만, 마하라지는 화를 내는 개체가 아니죠. 몸-마음 구조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개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마하라지께서 "화가 있지, 나는 화나지 않는다. 큰 고통이 있지만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죠. 

 

질문자: 그럼 제가 화가 날 때... 

 

라메쉬: 당신은 "내가 화가 난다. 내가 화내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내 에너지를 빼앗고 많은 장애들을 만든다."라고 말하죠. 그 모두가 수평적으로,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얽매이는 일입니다. 

 

질문자: 그럼, 다음 번에 제가 화나게 되면 최선의 방법이... 

 

라메쉬: 아니죠! 방법이란 없죠! (웃음) 말 장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문제는 아주 흔하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다음 번에 화가 나면 이해할 것은 화가 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초적인 이해입니다. 

 

질문자: 그냥 참의식의 작용이군요. 

 

라메쉬: 그렇죠! 이해에게 기회를 주세요. 

 

질문자: 우리는 자동으로 행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게 놔둔다는 사실을 알겠군요. 

 

라메쉬: 바로 그렇죠! 

 

질문자: 그 뿐인가요?! 

 

라메쉬: 바로 그렇죠! 그 뿐이죠. 정확히 그 뿐이죠! 그리고 그것을 깊이 직관적으로 확신하면 엄청난 해방감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지능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오직 좌절할 뿐입니다. 

 

질문자: 이것이 제가 찾고 있었던 겁니다. 고맙습니다. 

 

질문자: 전 때때로 감사함을 크게 느끼는데, 마치 제가 감사해야할 신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 솟아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라메쉬: 마음은,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해. 이 감사를 헌납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만 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왜 그럽니까? 솟아 올라 넘치게 놔두세요. 눈물이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나게 놔두세요. 괜찮습니다. 당신이 그 감사함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일어난 것입니다. 일어나게 놔두세요. 그것이 이 이해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지능적으로 이해한다고 그런 감사가 솟아 오르는 것이 아니죠. 

 

질문자: 감정의 기능이 뭔가요? 

 

라메쉬: 생각이나 바람 같은 감정은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 바람이 일어나는 일은 늘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납니다. 당신은 특정한 감정을 일으키게 할 수 없고 계속 일어나게도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일어나면, 보통 사람들처럼 감정에 얽매이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이해가 있으면 목격이 일어나고 그런 감정이나 생각, 바람에 얽매이는 일은 멈추게 되지요. 

 

질문자: 감정이 일어나는 형태가 특정 개인의 본성에 달려있나요? 

 

라메쉬: 그렇지요. 일단 감정이 일어나면 앞으로의 얽매임은, 어떤 식으로 얽매일지, 그 특정 유기체의 특징들에 달려있을 겁니다. 정말 그렇죠. 

 

-- 사랑과 연민 -- 

 

질문자: 뭔가가 다른 뭔가를 사랑하는 일이 있습니까? 

 

라메쉬: 어떤 객체를 사랑하는 주체란 없습니다. 사랑이 있고, 자비가 있고 박애 또는 당신이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것이 있을 뿐입니다. 현시와 비현시는 단지 관념적 차이일 뿐입니다. 

 

질문자: 그럼 그것은 감정이 아니군요? 

 

라메쉬: 아, 아니죠! 감정과는 거리가 멀죠. 정확히 감정과 정반대죠. 

 

질문자: 현상과 본체가 정말로 같기 때문에, 현상에 대한 본체의 사랑이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라메쉬: 그러죠. 왜 안됩니까? 

 

질문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사랑은 어떻나요? 그냥 또 다른 개념인가요? 

 

라메쉬: 그렇죠. 그런데 보편적 사랑이란 양극성을 이해하는 것, 모든 객체가, 모든 인간이 같은 보편적 참존재의 객체적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지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묻겠죠.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 사람은 고약한 괴짜인데요. 내 개를 발로 차고, 내 고양이를 나무로 쫓아 버리죠. 왜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지만 모든 객체적 표현이 같은 참존재에서 나왔다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때 사랑 또는 연민이 일어납니다. 

 

질문자: 그럼 그냥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고 "모든 것을 사랑하라."군요. 

 

라메쉬: 그렇죠. 그것은 이해로 인해 생기는 일이죠. 이 현상세계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이웃이고 진정 당신의 참자아입니다. 

 

질문자: 비개인적 의식에서 자신의 참자아군요. 

 

라메쉬: 정말 그렇죠.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수피 이야기가 있는데, 수피들 중 한 사람이 공개적으로 "나는 신이다!"라고 외쳤고 세속 종교를 믿는 대중들에게 돌 판매 질을 당해 죽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수피에게 돌을 던졌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이 팔을 벌리고 그 죽은 수피를 환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돌을 던진 사람이 신께 여쭈었죠. "신께서는 파라오가 '나는 신이다.'라고 해서 그를 지옥으로 보내셨습니다. 수피도 같은 짓을 했는데 수피는 천국으로 환영해주시는군요." 신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파라오가 '나는 신이다.'라고 말했을 때 파라오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이 수피가 '나는 신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33jung)

 

                           -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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