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58)

2021. 7. 30. 21:33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기적 -- 

 

질문자: 기적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라메쉬: 아무 의미도 없어요. 

 

질문자: 주의를 환기시키는 어떤 것이 아닐까요? 제 말은, 기적 없이 나아갈 수 없다는 거죠. 

 

라메쉬: 아닙니다. 기적이란 인간의 마음이 지금 가진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일 뿐입니다. 

 

질문자: 참의식이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 때는 어떤 목적이 있는데, 아닙니까? 

 

라메쉬: 아닙니다. 단지 즐기는 거죠. 

 

질문자: 연극을 즐기기 위해서군요. 그런데 다른 개체들의 마음을 혹하게 해서 믿게 하죠. 

 

라메쉬: 그렇죠. 그래서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을 독립된 개체라고 여기는 이런 거짓 개체들을 계속 이렇게 얽매이게 하려고 이런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그렇고 말고요. 그 때문에 이 놀이가, 즉 이 릴라가 계속되지요. 

 

-- 초능력 -- 

 

질문자: 중력과 공중 부양에 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의식 변성 상태에서 몸이 가볍게 되는데, 맞습니까? 그럼 중력은 어떻게 돼죠? 어떻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죠? 

 

라메쉬: 보시면, 또 한번 당신이 하는 질문은 기계적인 문제와 관련된 겁니다. 기계적인 부분은 과학에서 지금 설명해 줄 수 없으면 언젠가는 설명해줄 겁니다. 이런 호기심들은 모두 기계적 수준의 것일 뿐이죠. 백 년 전에 사람들은 라디오 전파를 몰랐기 때문에 라디오는 기적이었습니다. 아마 지금부터 수백 년이 지나면 이런 모든 초능력이 과학적 용어들로 완벽하게 설명될 겁니다. 하지만 요점이 뭡니까? 

 

질문자: 침묵 속의 전달이란 뭔가요? 

 

라메쉬: 개념이죠. 그 뿐이예요. 

 

질문자: 아드바이타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을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말로써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배웁니까? 

 

라메쉬: 말로 가르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제 손에 달린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그 불쌍한 사람은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거죠. 

 

질문자: 어떻게 그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해를 얻나요? 

 

라메쉬: 불가사의한 힘이 그 사람을 제게 보냅니다. 

 

질문자: 그게 에너지입니까? 

 

라메쉬: 예,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 행동하는 참의식이 에너지죠. 

 

질문자: 제가 뵀던 다른 스승들은 늘 주위에 황금색 불빛을 켜놓으셨습니다. 그분들 주위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죠. 거기에는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는 아무것도 없군요. 선생님께서는 그냥 여기 계시고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군요. 

 

라메쉬: 기쁘군요. 이 이해의 요점이 평범함이죠. 제게 큰 장점이 하나 있는데, 제가 영향을 미쳤다면 근사해 보이는 물리적인 것들 때문에 그 영향이 일어났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죠. 영향이 있으면, 영향이 있는 거죠. 

 

질문자: 이 모두가 수많은 개념들을 가지고 서커스를 하는 거군요. 

 

라메쉬: 서커스에서 계속해서 여기저기 돌고 돌고 돌아 다니죠! 

 

-- 현상세계를 조작하기-- 

 

질문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들은 앉아서 자기가 큰 수입을 얻게 될거라고 반복해서 상상합니다. "크고 멋진 빨간 캐딜락 자동차를 마음 속에 그려봤죠. 보세요. 빨간색 자동차를 가졌죠."라고 말합니다.

 

라메쉬: 몸-마음 유기체는 기능하는 과정 중에 마음에 그려보는 일을 이용하지요. 

 

질문자: 이런 사람들은 기능하는 것은 참전체성이라고 그냥 인정하는 대신에 자기가 자신의 현실을 책임진다고 믿습니다. 

 

라메쉬: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는 그 현실이 바로 그 기본 환상 속에 있지요. 다른 몸마음 유기체들을 고려해보면 어떨까요? 현실을 창조하는 이 사람이 그 현실 안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제할까요? 

 

질문자: 그 사람들 생각대로라면 그래야 겠지만, 그렇게 못하죠. 

 

라메쉬: 맞아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작용 때문에 참의식내에서 어떤 것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지요. 

 

질문자: 그럼, 선생님 말씀은 돈을 벌거나 차 또는 어떤 목표가 생긴다면, 아니 생겨지게 된다면, 어쨌든 그것도 모두 계획의 일부군요? 

 

라메쉬: 정말 맞는 말입니다. 

 

-- 유체 이탈 -- 

 

질문자: 참의식은 육체 없이도 인식할 수 있습니까? 

 

라메쉬: 참의식은 자신을 객체로 표현해 내려면 정신과 신체로 구성된 기구가 필요합니다. 

 

질문자: 그럼 어떻게 유체 이탈이 일어납니까? 제가 여기 앉아있는데 느닷없이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제 몸으로 보는 것일 수가 없거든요. 

 

라메쉬: 아니죠. 도구를 통해서 관찰하는 것은 참의식입니다. 자신은 참의식이 없이는 단지 전혀 쓸모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해 보세요. 

 

질문자: 제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제가 여기 앉아서 눈을 감으면 제 몸이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있지 않는데도 어떻게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인식할 수가 있죠? 

 

라메쉬: 왜 안됩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개별 도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뭡니까? 이 도구가 존재하든 안 하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계속해서 일어날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상대성 이론은 인류에게 주어져야만 했고, 제가 이전에 말했듯이, 그 이론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과학적으로 진화된 도구를 통해서 적절한 시간에 주어졌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참의식의 작용이고 여기에 도구의 개념적 도움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질문자: 아인슈타인이 그 생각들을 받아들인 것과 제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것을 인식하는 일이 같은 종류의 현상이라는 말씀인가요? 

 

라메쉬: 바로 그렇습니다. "내"가 자기가 뭔가를 관찰했다고 말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나지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이 잊혀졌는데, 그것은 도구를 통해서 그런 관찰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 일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질문자: 가끔 사람이 죽고 나서 수술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는데, 의사가 죽음에서 그를 다시 데려옵니다. 다시 한번, 이것도 참의식이 육체 없이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이 떨어져 있는 육체를 보기 때문이죠. 

 

라메쉬: 예. 하지만 그 까닭은 육체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후 체험으로 여겨지는 그 체험은 사후의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단지 죽음에 가까운 경험일 뿐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몸에 의식이 없지요. 몸이 죽으면 경험도 일어날 수 없고 마음 속에 형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질문자: 그럼 제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라메쉬: 당신은 오직 죽음에 다가가는 경험만을 할 겁니다. 당신은 깊은 잠을 자는 상태에 다가가는 경험만 할 수 있어요. 깊은 잠을 자는 상태는 경험할 수가 없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잠에 들기 전 그 순간... 

 

질문자: 에고가 사라지군요. 

 

라메쉬: 그렇죠. 하지만 일단 잠이 들면 누가 있어 깊이 잠든 상태를 경험하겠습니까? 그래서 죽음에 다가가는 경험만 할 수 있는데, 죽음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당신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있을 수가 없지요. 이것이 제 말의 요점입니다. (32jung) 

 

                                  -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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