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56)

2021. 7. 16. 20:47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마하라지가 라메쉬에게 가르침을 전하라고 말하다 --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대담을 시작하셨나요? 

 

라메쉬: 제가 마하라지를 처음 찾아뵀을 때 제가 처음 결심한 것 중에 하나가 그분이 질문하시면 지능이 답변에 끼어들어서 그분이 만족하실지 아닐지를 생각하지 않고 솔직히 대답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있을 때마다 그분께 솔직하게 바로 생각나는 답을 드렸죠. 마하라지께서 어느 특정한 날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셨죠. 그날 이후부터 그분과의 관계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격식이 사라지고 그분과 있을 때 예전에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떤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요. 제 누이는 아주 전통적 종교인인데, 사람들이 제게 찾아와서 저희가 이런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걱정했었는데, 왜냐하면 누이에게는 구루의 허락없이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이에게 마하라지께서 제게 대담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확실히 하셨다고 설명해주어야 했지요. 이렇게 인가받은 일은 독특한 형식으로 일어났지요. 제가 대담 통역을 시작했는데, 그때 통역이 필요했었죠. 마하라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단어가 "필요"입니다. 모든 일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일어나는데, 제가 마하라지의 발 밑에 있던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필요를 충족시켰는데, 마하라지의 처지에서와 제 처지에서죠. 제 처지는 명백하죠. 마하라지를 찾아뵙기 전에 저는 거의 30년간을 라마나 마하리쉬를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었죠.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마하라지의 발밑에 앉을 운명이었기 때문이죠. 마하라지의 입장에서는 통역가가 필요했는데, 그분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영어라는 언어에 관해 아주 충분한 지식이 있으며 서양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여기 라메쉬라고 불리는 몸-마음 구조체가 어떡하다 그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시키게 되었죠. 마하라지께서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몹시 아프셨어요. 누워계셨지만 여전히 위층 방에 올라가셔서 말씀하실 수는 있으셨죠. 그분이, 정말 처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시면서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질문이 있으면 계속해서 물어도 됩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저를 가리키시면서, "라메쉬가 질문에 답하도록 인가 받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죠. 마하라지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셨지만, 아무 질문도 없었고 당연히 어떤 답변도 없었죠. 제 가까이 있던 두 사람이 제게 "보세요. 당신이 말 안 하면 마하라지께서 올라오셔서 화내실 겁니다." 제가 "하지만 질문이 없어요. 저는 질문에 답하라고만 인가받았지 이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는 아닙니다." 마하라지께서 다시 오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셨죠. 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문이 없어서 답변도 없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마하라지께서 뭔가 투덜대시더군요. 그런 뒤에 그분께서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마하라지께서는 전에 인가하셨던 사실을 기억하시고 제가 말을 하지 않은 사실도 아셨음이 틀림없어요. 그분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이었고 너무나 편찮으셔서 속삭이실 수만 있었죠. 그분 말씀을 들으려면 그분을 개인적으로 시중드는 사람이 말 그대로 허리를 굽혀서 그분 입에다 귀를 갖다 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몸이 약하신데, 마하라지께서 느닷없이 팔꿈치를 짚고 일어나셔서 두 달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그분의 평상시 목소리로 이렇게 제게 소리치셨습니다. "왜 말을 안 하나?!" 그러고는 다시 쓰러지셨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마하라지께서는 이틀을 더 사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담을 시작하게 됐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제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제가 평상시 하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저는 그냥 집에 앉아 있어요. 만일 참전체성이 제게 어떤 사람들을 보내면 그들에게는 말하지요. 저는 거기에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말합니다. 제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전체성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 크리슈나무르티 -- 

 

질문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당신이 세상이고 세상이 당신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직관적 이해인가요? 

 

라메쉬: 그렇습니다. 당신과 세상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있는 모두가 참전체성의 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말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는 "당신과 세상은 같다."라고 말하고, 저는 "있는 모두가 이 현시 전체를 통해서 기능하는 참의식이다."라고 주로 말하지요. 덧붙여서 말하자면, 저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존경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위대한 스승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크리슈나무르티는 있는 모두가, 여기 그리고 지금, 현재의 순간에 있는 '있는 그대로'라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인을 대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되풀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생에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역할은 다수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해야 했죠. 그렇게 하려면 크리슈나무르티는 개인을 대상으로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개인"이 가로막지요. 한번은 크리슈나무르티를 따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뭄바이에 왔는데, 아마도 크리슈나무르티가 뭄바이에서 여는 마지막 대담을 들으려고 왔나 봅니다. 그 사람들이 제게 전화해서, "저희가 이런 말씀들을 들으려고 여기 왔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씀이 끝나면 저희가 선생님을 찾아 뵈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죠. 전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죠. 저희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떠날 때 그 중 한 사람이 주저하면서 제게 다시 왔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모든 것이 명확해졌는데, 왜 저는 30년 동안을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가야만 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답을 해주었죠. "마하라지는 크리슈나무르티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명백히 당신이 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 한 30년은 준비기간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로 오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30년이죠! 그리고 당신이 30년 동안 이 문제와 씨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그렇게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사람은 크게 안도하고 떠났습니다. 

 

 

11장. 형이상학적 질문들

 

-- 삶의 의미 -- 

 

질문자: 그런데,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 떠오르는데요.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싶은데, 제가 삶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이 느낌이 사라지는군요. 

 

라메쉬: 그렇죠. 

 

질문자: 이 문제가 힘든 것 같군요. 

 

라메쉬: 바닷가에 가보시면 모래성을 쌓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그 성을 부셔버리죠. 그런데 당신이 그 아이에게 "오랜 시간과 사랑으로 그 성을 짓고 나서 부셔버리는 것이 무슨 뜻이니?"라고 물으면, 아이는 아마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겁니다. 그 아이는 "성을 쌓고 싶었고, 그러고는 부셔버리고 싶었죠!"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죠. 그냥 놀이일 뿐이죠. 

 

질문자: 어려운 답이군요. 

 

라메쉬: 보시면, 인생의 의미를... 누가 알고 싶어합니까? 

 

질문자: 글쎄, 여기서 막히는군요. 

 

라메쉬: 이해합니다. 확실히.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 모두가 놀이의 일부니까요! 

 

-- 사마디 -- 

 

질문자: 사마디에 들어가면 사람의 성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배웠어요. 

 

라메쉬: 부인, 그렇지 않습니다. 사마디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 사람은 여전히 잉태되고 창조될 때 가지고 있던 같은 특징들을 가진 같은 사람일 겁니다. 한 요기에 관한 오래된 케케묵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요기가 사마디에 들어갔다가 돌아왔을 때 제자에게 "엄청 배가 고프니 음식을 좀 가져오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도착했을 때 요기는 사마디에 다시 들어갔죠. 마침내 요기가 사마디에서 다시 나와서 물었죠. "내 음식 어디 있느냐?"라고. 20일간의 사마디나 20년 간의 사마디에 들어갔다 나오더라도 여전히 같은 순간으로 돌아옵니다. 

 

질문자: 제가 선생님 말씀을 바로 이해했다면, 자극이 있을 때 선생께서는 그것을 목격하시죠. 아무 자극도 없으면 선생께서는 비목격 상태로 들어가시나요? 

 

라메쉬: 그렇습니다. 

 

질문자: 이것이 사람들이 사마디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건가요? 

 

라메쉬: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비목격 상태라고 부르는 것이고 라마나 마하리쉬가 자연의 상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마디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보통사람에게는, 늘 얽매임이 있습니다. 얽매임과 "나"와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 남는 것은 목격 상태입니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그저 목격될 뿐입니다. 목격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그때 마음은 비목격상태로 더 깊이 들어가지요. 그런 비목격상태에서는, 소리가 들려지고, 냄새가 맡아지지만, 극히 수동적인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그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의식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필요하면 부드럽고 쉽게, 의도적으로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목격의 상태로 다시 들어갈 수 있어요. 의식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소리가 들리면 목격의 상태로 다시 들어갑니다. 목격과 비목격이 즈나니가 머무는 상태지요. 비목격 상태가 보통의 상태이고 목격의 상태는 목격할 뭔가가 있으면 일어납니다. 

 

질문자: 사마디가 비정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사마디가 바래서는 안 될 것이라는 뜻인가요? 

 

라메쉬: 아닙니다. 그냥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마디는 자연의 상태에서 더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비정상이지요. 그런 사마디의 상태는 일어날 수 있어요. 

 

질문자: 억지로 들어가는 사마디에 어떤 가치가 있나요? 

 

라메쉬: 모르죠. 그렇게 사마디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요. 당신이 바다에 들어가고 나와서 물을 말립니다. 바다에 다시 들어가고 나와서 물을 말립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요. 마하라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사마디에 두 시간, 이틀, 2년, 또는 200년간 들어갔다가 나온다 해도, 현상세계로 다시 돌아오게 돼!" 요점이 뭡니까? 

 

질문자: 다시 돌아온다. 아, 알겠습니다. 현상세계 안에서 개인으로서 인식하는 한은 변했다고 말할 수 없군요? 

 

라메쉬: 맞습니다. 

 

질문자: 깊은 잠과 사마디 간의 차이가 뭔가요? 

 

라메쉬: 깊은 잠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일입니다. 사마디는 정신적 일이죠. 당신의 몸은 정신과 신체로 구성된 장치입니다. 깊은 잠은 좀 더 신체적인 일입니다. 사마디는 몸의 정신적인 부분에 좀 더 해당되지요. 

 

질문자: 제가 사마디에 들어갈 때의 차이를 어떻게 아나요? 깊은 잠은 알겠습니다. 

 

라메쉬: 그것은 육체적이죠. 하지만, 실은 정말 당신도 알죠. 매일 그런 순간이 있어요. 당신이 인식 못 할 수도 있겠지만, 깊이 평화로운 느낌이 있는 순간이 정말 있어요. 휙 지나가버리는 순간들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순간들은 있어요.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서 나올 때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을, "내"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을, 안녕의 느낌이 있었던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곧바로 "그런 순간들에 더 있고 싶다."라고 말하죠.(31jung) 

 

                                 -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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