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0. 22:08ㆍ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용어 풀이
아드바이타: 둘이 아님, 불이원성 (아= 부정하는 접두사 + 드바이타= 이원성) 베단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파.
아항카라: 에고 아난다: 지복, 즉 기쁨 (삿-칫-아난다라는 궁극의 본질을 이루는 세가지 요소들중 하나)
아바타: 화신, 즉 신의 강림 옴: 브라마, 즉 궁극의 원리를 나타내는 단어이며 소리로서, 지고의 참자아의 상징, 가장 신성한 만트라.
아비약타: 비현시 (아= 비, 부정 + 비약타 = 현시) 박티: 헌신, 구원의 방법으로써의 숭배함
박타: 헌신자
보가 (보기): 육감적 반응을 경험하는 것 또는 경험자
브라마: 힌두의 삼 신(브라마-창조자, 비슈누-보존자, 시바-파괴자) 중 하나
브라만: 절대, 궁극의 참실재
체타나: 의식 칫: 보편적 참의식
다르샨: 보는 것, 즉 만남
달마: 내재된 속성, 즉 타고난 특징 (또한, 행동과 임무의 확고한 규칙)
드히야나: 명상 구루 푸르니마: 구루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새롭게 하는 7월/ 8월경의 보름날
이시바라: 힌두교에서의 말하는 우주의 최고신이며 주인
자파: 말 그대로 "중얼거림", 신의 이름을 반복하기
지바: 개별적으로 식별된 의식 (시바, 비개인적, 보편적 참의식에 반대됨)
즈나나: 지식, 특별히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지식
즈나니: 참으로 아는 사람
카르마: 행동, 즉 인과 관계의 법칙
쿤달리니 요가: 샥티라 불리는 영적 힘을 일으키기 위해서 몸에 있는 물리적 중심점들(챠크라들)에 집중하는 요가 체계
릴라: 신의 놀이, 하나의 신성한 놀이로서 보는 우주
마하바카: 말 그대로, "위대한 말씀", 좀 더 구체적으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참자아의 실재를 확인하는 4가지 인용구를 일컫는다. 4가지 인용구 - 1) 그대가 그것이다. 2) 나는 브라만이다. 3) 이 참자아가 브라만이다. 4) 프라야나(참의식)가 브라만이다.
마나나: 명상, 성찰을 통한 차별적 이해
마야: 망상, 현실을 숨기고 비현실을 비추며 감추는 힘
모크샤: 해방
나마 루파: 이름과 형상으로 된 현상 세계
니디드호야사나: 심오한 명상 뒤에 남아서 자리 잡은 것
니살가: 자연의 상태
파라브리티: 말 그대로 가장 높은 (파라) 일련의 행동 (브리티), 변화된 행동
프라냐: 순수 인식, 비자아의식 지식, 직관적 이해
사마디: 초의식 상태
바이야기라: 세상일들에 무관심함
베단타: 말 그대로, 베다의 마지막, 힌두 철학의 여섯 학교 중에 하나
베다: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의 힌두교 경전의 4가지 모음들. "드러난 지식",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하고 궁극적 권위를 가진다
야마: 힌두교 죽음의 신
옮긴이의 글
-- 아드바이타 스승들 --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는 1933년 자신의 영적 스승인 싯따르 메쉬와르 마하리지를 만나고 1936년 마하리지에게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다. 1966년부터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루에 두 번 대담을 열며 가르침을 전했다. 1973년에 마하리지의 가르침을 엮은 'I AM THAT'이 출판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 “아이 엠 댓”으로 번역 출판된다. 1981년 타계했다. 라메쉬 발세카르는 1977년 인도 은행의 사장으로 은퇴한 후 마하라지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고 가르침을 받는다. 1979년 인도 명절 디왈리(Diwali)날 마하라지의 대담을 통역하던 중 라메쉬에게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다. 1981년 마하라지가 죽기 두 달 전, 자신의 삿상15에서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은 질문이 있으면 계속해서 물어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라메쉬를 가리키면서, "라메쉬가 질문에 답하도록 인가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라메쉬에게 가르침을 전하도록 권한다. 라메쉬는 뭄바이의 자신에 집에서 매일 삿상을 열고 가르침을 전했다. 2009년 9월 27일 타계했다. 웨인 리쿼만은 1987년 9월 라메쉬 발세카를 만나고 가르침을 받는다. 1989년 4월 웨인에게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다. 1996년 영적 스승을 위한 스승의 날 격인 구루 푸르니마(Guru Purnima)날, 라메쉬는 자신의 삿상에서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은 모두 내일 다시 오세요. 내일은 웨인이 질문에 답할 겁니다.”라고 말했고 다음 날 웨인의 첫 삿상이 열렸다. 이후 웨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헐모사 비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매주 세 번 삿상을 열고 이 삿상은 아드바이타 웹사이트(http://www.advaita.com)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인터넷으로 참여할 수 있다. 매년 전 세계를 돌며 정기적으로 삿상을 열고 있다. 아드바이타 웹사이트에서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발라16는 1987년 9월에 열린 라메쉬의 삿상에 참석하는데 이 삿상에는 자신의 마지막 스승이 되는 웨인도 참석하였다. 1998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웨인의 삿상에 참석하고 자신의 마지막 영적 스승으로 여기며 가르침을 받는다. 1년 반뒤 뉴욕에서 열린 웨인의 주말 삿상뒤에 발라에게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다. 2012년 4월, 웨인은 뉴욕에서 열리는 자신의 삿상에서 발라가 가르침을 전하도록 권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모두 오세요. 한 대담에서 내 친애하는 발라가 가르침을 전할 15 Satsang. 진리와 함께한다는 뜻으로 영적 스승과 함께하는 대담을 일컽는다. – 옮긴이 16 Bala 겁니다. 발라는 저와 스타일이 전혀 달라요. 제 스타일이 라메쉬의 가르침과 완전히 다르듯이 말입니다. 스타일은 달라도 본질과 정신은 하나죠… 살아있는 가르침이라는 대서사시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롭겠군요.”
-- 번역 동기 --
2007년 7월 7일, 진리를 갈구하던 나는 참 스승을 찾기 위해 바다가 굽어 보이는 헐모사 비치 언덕 위에 한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웨인이 우편물을 가지러 걸어 나왔다. 웨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돌진하듯 "저의 스승이 되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웨인은 "자네가 원하는 한 그러겠네."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스승을 드디어 찾게 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의 제자가 되어 웨인의 자택에서 열리는 삿상(진리와 함께하는 모임이란 뜻으로, 참 스승과의 대담을 일컫는다.)에 매번 참석하기 시작했다.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기존에 가졌던 진리에 대한 편견과 환상들이 무참히 깨어져 나갔다. 불교와 기독교,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철학·명상서적들을 읽으며 쌓아왔던 편견과 오해들이 무참히 부서져 나갔고, 사회·문화적으로 고착됐던 얽매임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고가 뿌리째 뽑히고 갈아엎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2012년 초에 웨인의 삿상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따금 언급하던 라메쉬의 'Consciousness Speaks (참의식이 말하다)' 책을 마침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엄청났다. 너무도 재미있었다.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내가 궁금해 왔던, 웨인에게 묻지 못했던 그 모든 잠재된 궁금증들에 이 책은 모두 답하고 있었다. 어느 장을 읽다가 이것도 궁금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 장에 그 의문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엄청난 공명이 일었다. 어느 글귀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는가 하면, 어느 구절에서 낄낄대며 한참을 웃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갑자기 내면의 큰 종이 ‘쾅’ 하고 울리는 듯 한동안 그 울림에 꼼짝 못 하거나 합장17을 하며 그 울림의 여운을 느끼기도 했다. 웨인의 삿상에 책을 들고 갔을 때, 웨인이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는 "이제, 이 책을 읽는군. 참 좋은 책이지."라고 했고, 나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최고 편집자의 사인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했고, 웨인은 늘 그렇듯, 책의 첫 장에 "For Sky- with much Love-"라는 문구와 함께 사인해 주었다. Sky는 나의 영어 이름이다. 그리고 덧붙이길, "이 책은 라메쉬의 가르침과 나의 가르침이 같이 녹아있네. (합장은 두 손을 모으며 둘이 아니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행위다.
– 옮긴이----- ) 라메쉬의 가르침을 나의 방식대로 썼지."라고 말했다. 책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내 속에서 잠들어 있던 모든 의문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에서 말하는 가르침들에 대한 의문들이 마구 들끓었다. 참지 못한 나는 삿상에서 웨인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웨인은 답을 하다가, 이건 마치 두더지 오락게임 같다고 말했다. 두더지 한 마리를 망치로 내려쳐 없애면 다른 두더지가 계속해서 튀어나오듯이 헛된 질문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다음날, 일요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발라의 삿상에 참석했다. 발라는 웨인의 제자로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났으며 웨인의 권유로 2012년 초부터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발라의 삿상에서도 나는 횡설수설하며 질문을 쏟아내던 중, 발라는 잠시 나의 말을 멈추게 하고 "여기 밑에 흐르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세요."라며 콕 집었을 때, 나는 갑자기 막혀버렸고,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듯 그렇게 멍해졌다. 잠시 후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며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합장했다. 다음날 웨인의 월요일 저녁 삿상에 참석했다. 람다스 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들이 찾아왔다. 그들 중 한 여자가 웨인과 신랄한 토론을 했는데, 한 번은 웨인이 그 여자의 질문에 "이 가르침은 당신이 직접, 직관적으로 그것을 보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내 안에 엄청난 울림이 일면서 존재가 꽉 차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웨인이 늘 하던 그 말이 직관적으로 와 닿았고 들끓던 의문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392쪽에 달하는 책 ‘참의식이 말하다’의 가르침과 여태껏 들어왔던 웨인의 가르침과 옛 스승들의 가르침이 무엇을 가리키고자 한 것인지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가슴에 박혔다. 나는 웨인에게 "방금 하신 말씀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라고 말했고, 웨인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내가 5년이 됐다고 하니, 이 친구는 5년 동안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고 두드리니 이제야 깨졌다고 말했다. 물론, ‘내게’ 일어난 이 이해는 영적 여정 속의 작은 깨달음일 뿐이다. 그리고 이해라는 말보다 받아들임이란 말이 더 적당해 보인다. 단지 이제야, 늘 존재하는 가르침에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서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12년 7월 21일 토요일 삿상이 끝난 후 나는 웨인에게 책 'Consciousness Speaks (참의식이 말하다)'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고, 웨인은 "좋아. 해보게."라고 답했다. 내가 "온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이에 웨인은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네."라며 답했다. 그렇게 이 책을, 이 충격적인 가르침을, 이 완벽한 가르침을, 이 편안한 가르침을, 그러나 개념들일 뿐인 이 가르침을 나는 나의 조국 한국에 소개하기로 마음먹고 번역을 시작했다. 여러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해 보았으나 마땅한 출판사를 찾을 수 없어 인쇄된 책자로 발행은 하지 못하나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하기에 많은 사람이 가르침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웨인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영적 이해는 일상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일까? 라메쉬 발세카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라메쉬는 “영적 이해는 일상에 멋진 조화로움과 긴장 완화 그리고 자유로움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한다. 퇴직한 은행장이며 골퍼이며 가장으로서, 라메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도의 영적 스승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라메쉬가 받은 교육과 그가 자란 환경과 함께 라메쉬의 궁극적 이해를 보면 라메쉬가 동서양을 잇고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이어주는 이상적인 스승임을 알게 된다. 있는 모두가 참의식이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을 완전하게, 깊이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면 더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책을 내려놓고 남은 인생을 기쁘게 즐기세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처럼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이 책이 도움될 수도 있을 겁니다. (편집자의 글 중에서)
아드바이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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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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