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관론(絶觀論)-8

2021. 6. 2. 22:41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본문] 

또 묻는다. 

"이미 공(空)이 도(道)의 근본이라 하였으니 공(空)이 부처님이 아니겠습니까? "

답한다.

"그렇다(空이 부처님이다)

 

[해설]

불(佛)은 말로 나태낼 수 없다. 분별을 떠난 자리이기 때문이다. 

단지 공(空)을 부처님이라 함은 그 공의 뜻이 곧 분별을 떠난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유(有)에 상대하여 공이라는 상(相)이 분별되는, 하나의 법으로써의 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상(無相)이고 자재(自在)하며, 견(見)함이 없고, 지(知)함이 없으며, 분별함이 없는 것은 곧 공의 성(性)이며, 

불(佛)의 성(性)이다. 

 

[본문]

또 묻는다.

"만약 공(空)이 그와 같다면 (도의 근본이라면), 성인(聖人)께서는 왜 중생으로 하여금 공을 염(念)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불(佛)을 염하라 하신 것입니까?"

답한다.

"우인(愚人)에게는 염불하라 하고, 도심(道心)이 있는 자에게는 공(空)임을 염(念)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몸이 실상(實相)임을 관찰하도록 한다. 불(佛)을 관(觀)함도 또한 그러하다.(實相으로 觀함) 

실상이란 곧 공(空,無相)이다. "

[해설]

불(佛)의 이름이나 상(相) 및 공덕을 염(念)함을 여기서는 염불이라 하였다. 

공(空)임을 염함은 실상(實相)이 곧 공(空), 무상(無相)인 까닭에 실상염불(實相念佛)이 된다. 

<능가사자기(楞伽師姿記)> '도신(道信)의 장(章)'에서도 

 

"부처님께서 둔근(鈍根 :둔한 근기)의 중생을 위해 서방(西方:극락세계)을 향하도록 한 것이지

이근인(利根人 :날카로운 근기, 뛰어난 근기)을 위해 설한 것이 아니다."

 

고 하였다.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하더라도 극락에 구품(九品)의 차별이 있고, 여기에 들지 못하는 변지(邊地)가 있어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는 상품(上品)에 들지 못한다. 

궁극에는 불(佛)의 체(體)인 실상(實相)의 리(理)를 요지(了知)하여야 한다. 

즉 달마대사가 말한 이입(理入)이 되어야 한다.

단지 여기에서 공(空)임을 염하라고 한 것에 주의를 요하는 사항이 있다.

공을 상념화 하여 공이라는 하나의 상(相)을 떠올려서 집중하게 되면 큰 병이 되어 버린다. 

공이란 일체의 상이 공이어서 그 상에 향할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으며, 영향받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얻을 수도 없다는 뜻이니, 공을 염함이란 바로 이러한 요지함을 말한다. 

그러하거늘 어찌 공이라는 상에 향하거나 마음을 둘 수 있겠는가,

이렇게 알아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않고, 달을 볼 수 있게 된다. 

 

[본문]

또 묻는다. 

"대조(大道)는 오직 형령(形靈: 준동함령, 동물)에만 있습니까, 또한 초목에도 있습니까?

담한다.

"대도(大道)는 두루 없는 곳이 없다"

[해설]

대도란 어디에만 따로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니 두루하여 없는 곳이 없다. 

 

[본문]

또 묻는다.

"도(道)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두루 어디에나 있다면), 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되고, 초목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안되는 것입니까? "

답한다.

" 무릇 죄가 있다거나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모두 정(情)에 따르고 현상에 의거한 것으로 정도(正道)는 아니다.단지 사람이 도리에 체달(體達)하지 못하고 나의 몸이 있다고 망립(妄立)하여, 죽였다면 곧 마음이 있게 되고, 업을 맺게 되니 곧 죄라고 하는 것이다.

초목을 죽이는 것이 죄가 안된다는 것은 초목은 정(情)이 없는 까닭이며, (초목은) 내가 있다고 생각함이 없는 까닭이다. 죽이는 자가 그런 분멸망상이 없다면 죄와 무죄를 논할 바가 없는 것이다. 무릇 무아(無我)를 체달한 이는 몸을 초목과 같이 보아, 베는 것을 숲을 베는 것과 같이 본다. 문수보살이 구담(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불)에게 칼을 대들고 , 앙구라마가 석가모니 불에게 칼을 들고 덤벼든 것은 이들 모두 도에 합치한 것이며, 똑같이 무생(無生)을 증득하여 (몸이) 환화(幻化)이고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안 때문이니 유죄와 무죄를 논하지 않는 것이다. 

[해설]

일체의 분별을 떠난 자리는 곧 당처(當處)만 있을 뿐 그 당처를 평가하거나 선악을 시비(是非)할 그 어느 것도 없다. 당처에 즉하면 생사(生死)와 자타(自他)의 분별이 없어 어떠한 행의 당처이든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어떠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처(當處)는 대상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당처에 즉함을 증(證)하지 못한 채로 함부로 살생을 하는 것은 곧 죄업을 짓는 것이 된다. 

 

[본문]

또 묻는다

"만약 초목도 도에 합치하는 것이라면 경에서 왜 초목의 성불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고, 단지 사람의 성불에 대해서만 치우치게 설하고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단지 사람에 대해서만 설한 것이 아니라 초목에 대해서도 또한 설하였다. 

까닭에 경에서 말하길, '일미진(一微塵:한 티끌) 가운데 일체법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하였고,

또 설하길, '일체법 또한 그러하고, 일체중생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 

그러하니 차별이 없는 것이다."

[해설]

일체가 모두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으니 일체가 성불한다. 

단지 사람은 의식과 정(情)이 강하여 이에 얽매여 있는 까닭에 여러 방편으로 가르침을 설해서 인도해 주어야 한다. 

 

                                                       -박건주 역주 <絶觀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