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31. 23:06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본문]
惺惺無妄, 寂寂明亮,
萬物常眞, 森羅一相
去來坐立, 一切莫執
決定無方, 誰爲出入
성성하게 깨어 망념됨 없고
고요하고 밝으니
만물이 항상 그대로 진실하며
삼라만상이 일상(一相)이네.
가고 오고 앉고 서고,
그 어느 때나 집착하지 말지니
결정코(결정된) 사방(四方)이 없는데
누가 출입함이 있겠는가!
[해설]
각성(覺性)이 심체(心體)이다.
성성하게 항상 개어 있음은 곧 각성(覺性)인 심체에 계합됨이고,
망령된 사량분별을 떠남이다. 그래서 고요하고 밝다.
일체가 그대로 각(覺)으로서 체현되며,
각(覺)의 체현은 곧 신증(身證)됨이니
만물이 항상 그대로 진실하고 일상(一相)이다.
이상이라 함은 능(能: 인식주체), 소(所 :인식대상)를 떠나 있음을 말하고,
능소를 떠난 자리가곧 각(覺)이며 진여(眞如)이다.
능가경(7권본)의 <게송품>에
능취(能取)와 소취(所取) 떠난 것을 (離於能所取)
나는 진여(眞如)라 하느니라.(我說爲眞如)
고 하였다.
즉 일상(一相)은 대상으로서의 상이 아니다.
능,소를 떠난 각(覺,보리)과 진여(眞如)는 그래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상(相)이 아닌 것을 일상이라 칭한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대상으로서의 상이 아니라
곧 몸으로 증(證)되는 각(覺)일 뿐이다.
삼라만상이 일상(一相)이고,
일상이란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뜻하는 까닭에
행주좌와 어느 때나 삼라만상을 대상으로 집착해서는 안된다.
사방(四方)이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인식주관(能)의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이나
그 인식주관의 자리가 따로 없음을 요지(了知)한지라 사방이 따로 없고,
어디에서 어디로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출입함이 없다.
유심(唯心)이고 각해(覺海)인지라 출입함을 얻을 수 없다.
-박건주 역주 <心銘>-
---------------------------------------------
또롯 또롯 깨어있으면서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은 고요 고요 하면서도 밝은 지혜가 환하게 비춘다네.
惺惺無妄 寂寂明亮
온갖 다양한 모양들은 있는 그대로 참된 것이고
온갖 다양한 경계들은 모두가 다 똑 같은 하나라네.
萬像常眞 森羅一相
오고 가며, 앉고 서 있을 때, 언제 어디서든
(경계에) 붙잡히지 않고 전체와 하나가 되나니,
去來坐立 一切莫執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방향과 처소가 없는데
어디를 들어가고 나가야 할 곳이 있겠는가?
決定無方 誰爲出入
-閑-
'성인들 가르침 > 과거선사들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傳心法要] 머뭄바 없는 마음이 곧 부처의 행이다.(2) (0) | 2021.06.05 |
---|---|
절관론(絶觀論)-8 (0) | 2021.06.02 |
[傳心法要] 머문바 없는 마음이 곧 부처의 행이다(1) (0) | 2021.05.29 |
[傳心法要] 구함이 없음(無求) (0) | 2021.05.22 |
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18-2) (0) | 2021.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