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31)

2021. 3. 16. 22:5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경전에서 묘사하는 '나는 몸이다'라는 근본적인 소견에 기초한 따마스와 스리 바가반이 당신의 가르침인 '나는 누구인가?'에서 권장하는 순수한 존재의 근본적 소견에 기초한 따마스 간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줄 한 사건을 살펴보자.

 

스리 바가반의 헌신자들 가운데 으뜸가는 산스끄리뜨 시인이었고 최소한의 음식으로 살아가는 따마스에 능했던 까바야깐타 가마빠띠 샤스뜨리가 한번은 스리 바가반께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한 달에 3루피만 있으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스리 바가반의 응수가 곧바로 나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몸조차 필요 없는데, 3루피는 왜 필요 합니까?"

 

우리는 이 대화의 저변에 함축된 의미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가나빠띠 샤스뜨리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몸뚱이가 살아간다는 의미로 말한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근본적 소견은 '몸이 나다'라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스리 바가반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이라고 되받았을 때, 

그것은 '진아가 살아가는 데는'의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따라서 당신의 근본 소견은 다섯 껍질이 없는 순수한 의식이 '나'라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대화에서 독자들은 그들이 각기 자기 존재에 대한 앎으로써 무엇을 체험하고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이것으로 볼 때, 스리 바가반 자신이 늘 모든 상황에서 당신의 참된 상태인 진아 의식 안에 흔들림 없이 머무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헌신자들에게도 '나는 몸이다'라는 그릇된 동일시가 일어날 여지를 조금도 주지 말라고 가르쳤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스리 바가반의 가르침은 혁명적 성격을 지닌 그 나름의 특별한 위대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까지 우리가 참되고, 독특하고, 명료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고 따르던 다양한 수행법들보다 더 빼어나다 !

 

그러나 우리들 중 일부는 신심(信心)의 부족으로 인해 종종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요가적 행법에 의해 마음이 먼저 성숙되어 힘을 얻지 않으면 그것이 자기탐구를 하기에 적합하겠는가? 그것은 생각의 파도로서 헤메지 않겠는가? "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

이 점에 관해 스리 바가반은 당신의 산문체 저작인 <나는 누구인가?>에서 분명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서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다른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것들이 누구에게 일어나는지 보라. 

'나에게서'가 그 답일 것이다. (즉, 이 '나;가 그대에게 '나'-의식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즉시 자기 주시, 곧 '나는 누구인가?'에로 돌아갈 수 있다. 

거듭 거듭 이렇게 수행하면 마음이 자신의 근원에 머무르는 힘이 증가한다. "

 

다른 수행에서 마음이 얻는 힘은 마음이 그 근원에 머무르는 데 필요한 그런 힘이 아니다.!

신성한 명호의 염송, 명상, (라자요가에서 말하는) 여섯 차크라 중 어느 하나에 대한 집중, 

신성한 빛이나 소리에 대한 집중 - 이 모든 행법에서 마음은 어떤 닟선 대상(2인칭이나 3인칭)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뿐이다. 앞에서 말한 낯선 대상들 중 어느 하나를 붙잡도록 훈련하여 마음이 얻는 힘은 진아지를 알기에 유리한 진정한 마음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불리한 힘이므로 마음의 '힘'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힘의 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소를 한 마리 사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다른 사람의 외양간에 여러 날 동안 매어 둔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날 주인이, 습관의 힘을 통해 이전의 환경에 익숙해져 버린 그 소를 자기 외양깐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소가 자기 집에 와서 가만히 있겠는가? 아니, 먼저 있던 외양간으로 도로 달아날 것이다. 

그래서 영리한 농부라면 새로 산 소를 자기 외양깐에만 매어 두어 소가 그곳에 머물도록 길들일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아 아닌) 2인칭과 3인칭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의 힘을 기른 구도자들은 애를 써도 자기 주시 - 자기 자신이 존재함을 알기 - 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어떻게 표적으로 삼는지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느낀다 ! 

"먼저 다른 수행으로 마음을 훈련하여 마음의 힘을 얻고 나서 자기 탐구를 하겠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다른 수행으로 장기간에 걸쳐 마음을 훈련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다시피, 그런 마음은 다른 어떤 수행도 해 보지 않은 보통의 마음보다도 오히려 진아 쪽으로 향하는 힘이 더 약하다.  

 

가나빠띠 무니로 유명한, 스리 바가반의 중요한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스리 가나빠띠 샤스뜨라의 경험을 예로 들어 보자. 

염송에서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수천만 번의 염송을 했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의 제자들도 그를 '진언의 신'으로 불렀고, 그 역시 <스리 라마나 기타> (제18장, 15연)에서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는 또한 아수까삐드암(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즉흥시를 지을 수 있는 능력), 사따바다암(동시에 백 가지 사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 같은 놀라운 마음의 힘들을 계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종 "나는 인드라 천(天)에 가서 인드라(천신들의 왕)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말할 수 있지만, 내면으로 들어가서 '나'의 근원을 찾지는 못하겠다." 고 말했다. 

 

스리 바가반 자신도 몇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야나(가나빠띠 무니)는 곧잘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마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뒤로 물러나게, 즉 내면으로 향하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쪽으로는 (즉, 2인칭과 3인칭들 쪽으로는) 어떤 거리도 어떤 속도로도 나아갈 수 있지만, 

뒤로는 (즉, 1인칭 쪽으로는) 한 걸음도 물러나기가 어렵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가? 

염송의 결과에 대한 미세한 점들은 실제로 그것을 최대한의 열의와 진지함으로 수행하는 사람들만 분명히 이해할 것이고, 단순히 "염송을 하면 우리가 자기탐구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스리 가나빠디 무니는 오랜 세월 동안 염송 수행에 몰입했고, 거기서 최고의 체험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경험은 우리가 위에서 말한 것이 옳음을 분명히 증명해 주지 않는가? 

 

이와 관련해서 어떤 사람이 묻는다. 

"사실이 그렇다면 왜 스리 바가반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신의 형상에 대한 명상이나 진언의 염송에 의해 생각은 더욱 더 가라앉고, 이렇게 하여 일념집중과 힘을 얻은 마음은 자기 탐구를 쉽게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씀했는가? 그러니 염송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탐구를 하기가 더 쉽지 않겠는가?"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저작에서 실제로 말하고자 한 바를 깊이 탐색해 보아야 한다. 

늘 헤메는 마음은 무수한 생각들로 확산되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생각은 힘이 극히 약해진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코끼리의 코에 쇠사슬을 하나 쥐어 주면 코끼리가 그것만 꽉 붙들게 되어 코로 다른 장난을 치지 못하듯이, 마음을 신의 이름이나 형상들 중 어느 하나를 붙들도록 훈련하면 그 마음은 일념집중을 얻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마음이 많은 생각들로 분화하는 성질을 잃게 된다. 

 

마음이 진아 안주를 이루지 못하게 방해물 역활을 하는 두 가지 장애가 있으며, 

따라서 마음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마음의 힘이 필수적이다. 

첫 번째 힘은 마음이 감각 대상들 쪽으로 향하는 습(대상습)의 힘을 통해 무수한 생각들로 분화되지 못하게 하는 데 필요한 힘이다. 

두 번째 힘은 마음(주의력)을 1인칭, 곧 자기를 향하도록 이끄는 데 필요한 힘, 즉 실제로 진아에 주의를 기울이는 힘이다. 

염송이나 명상과 같은 수행으로는 첫번째 장애, 즉 감각대상을 향하는 습에서 벗어나는 힘을 얻을 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 주시를 닦는 마음에게는 필요한 두 가지 힘 모두가 자연스럽게 계발된다. 

 

염송과 명상을 통해 마음이 많은 생각들로 분화되어 약해지지 않는 힘을 성취하기는 하나, 

그것은 여전히 2인칭(대상)에만 머무르고 있다. 

이처럼 염송이나 명상의 수행은 마음이 이런 저런 2인칭만 큰 집착을 가지고 붙드는 힘을 계발해 준다. 

이렇게 하여 두 번째 큰 장애, 즉 마음을 2인칭에서 1인칭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 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증가한다. 따라서 그런 마음이 진아 쪽으로 향하려고 할 때는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스리 가나빠띠 무니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이다.  

 

                                                                  -스리 라마나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