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24)

2020. 12. 24. 22:16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개인성이라는 마법에서 깨어나기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 이루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참자아는 아무 노력 없이도 시간을 초월하여 이미 확고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직접 깨닫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고 믿게 만드는 개인성의 마법,

혹은 화면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상태를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항상 원인 모를 불안에 시달립니다. 

특히 서양 문화권의 사람들은 늘 초조해 하며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는데,

그 이유는 항상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알게 되면, 평화 속에 잠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자연스럽게 듣고 반응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개인은 무척 바쁘지만, '존재 그 자체'는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결코 분주하지 않습니다. 

현존의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활동이 몸속 생명력에 의해 저절로 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스럽고 중립적인 상태로 들어갈 준비가 정말로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상태로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면 여러분은 오히려 아무 것도 안하려고 무척 애를 쓸지도 모릅니다. 정말 황당하게도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조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존재한다'는 느낌에 주의를 계속 기울이세요. 

 

만약 행동 그자체가 현존상태를 깨뜨린다고 잘못 믿어 버리면, 우리는 행동하기를 꺼리기 시작할 거예요. 

하지만 행동은 단순히 '내 존재'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고 있고, '내 존재'는 관찰자로서 그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행동 때문에 우리가 방해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행동은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요.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이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제가 다 받아들일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건가요?

이에 대한 제 대답은, 우리가 참된 존재 안에 완전히 자리잡을 때까지는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리잡고 있다면,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의 참된 존재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개인이 아닐 거예요. 

그러나 아직 개인이란 감각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그 감각은 계속 무언가를 찾아 헤멜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존재한다'는 현존감에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한, 그는 무슨 일이든 결국 싫증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 - 지금 당장 해 볼 수 있습니다. - '내가 존재한다'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으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요. 

사실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실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미 마음의 속임수에 넘어간 거니까요.

우리 자신이 바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진리는 얼마나 자연스럽고 얼마나 단순한가요 !

 

진리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습관으로 인해 '나'는 에고와 마음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고, 

우리는 개인이라는 감각이 마치 우리의 전부인 듯 행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그런 듯이 행동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작은자아'는 우리의 궁극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나'는 성스러운 현존입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기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꿈 속에서만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볼 수 있을 뿐이지요. 

삿상이란 이 현존이 진실임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그로 인해 참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과 평화 속에 안정적으로 머물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한 염원은 진실하고 믿을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저는 그런 염원을 가진 사람의 정체를 먼저 찾아 내라고 말하지요. 

이 점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 현존 자체는 이미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안의 무언가가, "어떻게 하면 제가 현존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존재하며 또 그가 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질문 자체가 벌써 어떤 분리감을 드러내지요. 

 

이러한 거리감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요? 

이것은 조건화로부터, 또 자신이 개인이라고 믿는 데에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나는 신과 떨어져 있다고, 또 나는 진리와 떨어져 있다고 상상하며 믿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신념 중 가장 맹독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독을 마구 퍼뜨리기 때문이지요. 

자신에게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늘 자신을 고치고 바꾸려는 노력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참자아를 깨닫는다고 해서, 우리가 성스럽고 큰 목소리로 "내가 참자아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로부터 새로운 향기가 풍겨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번영할 수 있는 고향에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이 삶은 허상에서 벗어나 참자유를 되찾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이 내게 지금 일어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현존이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합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어떤 불완전한 존재가 - 이 존재 자체도 단지 생각일 뿐이지만-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내려놓아 그 빈자리에 본연의 참자아가 있음을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질문이지요. 

우리가 그런 일을 겪게 될 '나'를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한,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러나 진리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현존은 시간을 초월하여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초시간적 진리를 발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단지 마음이 사고뭉치이기 때문이에요.

마음은 신념체계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허물어뜨려야 근거없는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반사반응같은 것이 우리를 자꾸 개인으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이렇듯 그동안 우리 안에 고요있던 거짓을 다 흘려보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거리는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가 진리를 찾을 차례입니다. 

진리 탐구를 최우선으로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 경험을 최선봉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라질 수 없고 고갈될 수 없으며 무한하고 불멸하는 그 무언가를 과연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인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요? 

 

시간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이름, 모든 형태를 변화시키고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인지하는 모든 것을 먹어 삼킬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먹을 수 없다. 의식이 나를 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 이처럼 시간이 가져가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초시간적 진리를 우리의 참자아로 깨닫지 않는 한, 시간은 우리가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취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전한 하나로 되돌아가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니 참자아가 되세요, 달리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지 법문, 드높은 하늘처럼, 무한한 공간처럼-참된 나를 찾아서(정신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