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3. 23:10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개아의 상태는 환(幻)이다.
그것이 무지이고 원죄인 것이다.
환(幻)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개아를 뜻하는 jiva라는 단어는 'ja'와 'iva'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그것이 마치 태어나는 것 같이 보여도 실제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환(幻)인데,, 이 개아가 가짜라면, 진짜란 무엇인가?
사실은 "나는 태어나지 않는 어떤 것이다"라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어떤 사람이다, 아무개다 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환상이 빠져 있던 사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한 목동을 찾아가서 그의 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목동은 한 동안 그에게 우유를 주었는데, 나중에는 똥을 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자는 이때부터 굶주렸다. 그러다가 사자는 그의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 사자에게 말했다. "너는 어떤 동물이든 잡아 먹을 수 있는 사자다. 왜 똥을 먹고 있냐?"
사자는 자신의 본래능력을 알게 되자 숲속으로 들어 갔고, 사냥해서 자기에게 적절하게 먹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개아는 실제로 빠라마트만이지만, 자신을 개아로 착각해서 불행해졌다.
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내버리고, 감각대상이라는 똥을 먹는 습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똥을 먹는다는 것은 (이원적인)행위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개아가 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는 똥이고, 그것은 마야라는 양(羊)이 싸놓은 것이다.
자신이 시바임을 확인할 때,똥과 같은 그 행위의 결과들을 피하게 된다.
시비는 어떤 업(業)에도 구속당하지 않는다.
진아가 브라만이다.
상상적인 몸은 모든 감각기관과 함께 행위를 하게 되어 있다.
진아 깨달음이 있으면 행위의 결과를 받는 상속지위가 버려지며,
어떤 결과를 받는 개체도 없다.
그래서 '유죄'로 판결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
개아라는 환(幻)이 사라지면 모든 행위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업(業)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산더미같은 죄들은 불타서 재가 되고, 산더미같은 공덕이 세워진다.
여기서 공덕은 진리, 실재를 의미한다.
진아를 깨달은 사람은 신이 된 것이다.
진아 깨달음 자체가 산더미같은 공덕이다.
진아지를 깨달은 사람의 공덕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산더미같은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죄란 자신이 개아라고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개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개아라는 환상이 있으면 즉시 죄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참된 성품이 브라만임을 이해하면, 그 산더미같은 죄가 바로 무너져 버린다.
브라민 사제였던 사람이 자신이 카스트가 낮은 사람이라고 물소고기를 먹었다.
낮은 카스트라는 그 생각이, 브라민에게 죄가되는 행위를 유발시켰다.
어떤 노예에게 영원히 살라는 축복을 주면, 그것은 그가 영원히 노예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릇된 동일시가 죄를 일으켜준다.
자신이 개아가 아니라 브라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우리가 얻는 이익은 엄청나게 크다.
그때 노예상태가 사라지고, 개아라는 환(幻)이 사라진다.
그날이 오면 산더미같은 죄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깨달음(知)의 태양이 떠오르고, 다시 자기가 원래 왔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자신의 뿌리에 도달되면 네 가지 몸이 사라진다.
감각대상들 쪽으로 향하는 것은 내려가는 것이고,
진아 족을 향하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다.
진아를 깨달으면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다.
이것이 합일해탈(Sayujya Mukti)이다.
일체가 완전히 절멸되는 것이 이 합일해탈이다.
'나'가 없고 '너'가 없을 때, 해탈을 원하는 누가 있겠는가?
'나'의 해체를 통해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은 복받은 것이다.
그는 그 해탈의 주인이며, 그 상태를 남들에게 하사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 깨달은 진인이다.
사물들이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그것들은 브라만일 뿐이고, 별개의 어떤 것도 없다.
이 뭄바이라는 방대한 도시에서 흙 한줌을 집으면 그것이 흙인가, 뭄바이인가?
사람들은 그 흙에 뭄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따라서 행동한다.
실은 그것은 흙일 뿐이다. 뭄바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흙이 없으면 뭄바이도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기운 짜이따니야(Chaitanya,의식)가 없으면 세계는 존재성이 없다.
어째든 여러분은 이 생명기운 외에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 짜이따니야(의식)만 있다.
주의 깊게 살펴서 보면, 눈에 보이는 어떤 세계도 없다.
이런 식으로 보고, 모든 행위가 거짓임을 잘 알면서도 모든 행위를 하고,
그런 태도로만 행동한다면 이것이 생존해탈자(Jivanmukti, 육신을 가지 동안의 해탈)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이 해탈을 얻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죄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알파벳 전체를 다 암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이 진아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베다 경전과 온갖 영적인 철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지복으로 가는 길은 괴로움을 뚫고 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사드구루(참스승)은 그것이 맞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 몸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러분이 지불해야 할 댓가이다.
우리는 한 육체로서의 삶을 살아서는 안되고,
순수한 생명기운 따이따니아(순수의식)로서 살아가야 한다.
여러분이 스승을 찾아가면 해탈은 아주 가까이 있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환(幻)은 그 제자에 대해 쓸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는 스승에 대한 믿음의 부족 상태이다.
우리는 스승에게 봉사하고, 결실을 얻을 때까지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제자는 열매가 익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착실하게 기다려야 한다.
"나는 브라만이다"라고 선언해도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죽어서 악마가 된다.
망고가 익기도 전에 그것을 먹으면 신맛이 나고, 망고의 제대로 익은 맛을 즐길 수 없다.
충분히 익지 않았으면 그 과일에서 진실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참스승은 우리에게 '진리를 직접 자각하는 내적인 시각'이라는 제 3의 눈을 주었다.
이것이 주 시바의 '지혜의 불'이라고 하는 제 3의 눈이다.
이것은 육안이 아니다. 지혜의 눈이다.
우리는 두 개의 육안이 있는데, 스승이 우리에게 지혜의 태양이라는 이 새로운 눈을 주었다.
전 세계의 주(主), 만물에 편재하는 형상없는 존재(뿌루샤)가 이 눈이다.
이 눈으로 보면 전세계가 사라진다.
세계가 소멸되고 우리는 브라만을 보게된다.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환(幻)의 속박인데, 참스승이 준 이 새로운 눈이 이 환(幻)을 소멸한다.
스승의 헌신자는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됨의 지복을 즐긴다.
주 시바가 진아지를 가졌을 때, 그가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아가 꾸는 그 꿈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이 꿈이 나 자신임을 알았다."
그 꿈은 진아이며, 우리의 진아로서의 존재이다. 그 경험은 우리의 것이고, 그것이 그런 것은 우리의 존재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진아 체험이라고 한다.
진아 때문에, 그리고 스승이 주는 도움을 받아서 이 깨달음의 빛이 켜지게 된다.
우리가 이 지혜의 빛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진아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는 어떤 '다른 것(他者)'도 없다.
이것이 진아의 진아에 의한 체험이기 때문에 그것을 진아체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 브라만, 진아체험 등의 모든 용어는 오직 한 가지,
즉 이 모든 것은 진아의 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진아 체험이 진아 깨달음이다.
세계는 어른들의 놀이터라고 한다.
이것은 그 '어른들'이 깨달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진아지혜를 가지고 있고, 위대한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전 세계가 하나의 장난감, 즉 가지고 놀 장난감들인 것이다.
이 게임에서 그들에게 의기소침이나 의기양양, 손해나 이득, 슬픔, 죽음 등은 없다.
이 세계를 진아 체험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즐거움의 게임이다.
무지한 사람들은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들에게 슬픔, 비탄, 걱정,두려움은 삶 속에서 당연히 겪어야 할 운명이 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세계가 실재하지 않음을 알고,
그들 자신만의 만족이라는 집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산다.
깨달은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아무도 갈 수 없는 나라에 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래 도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아무도 거기서 돌아오지 않는 곳이다.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은 그 도시의 일을 이야기하고, 그 도시에 관해서만 묻는다.
그 도시는 그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부자들은 그들 자신의 부유한 삶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고,
진아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은 브라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의 말씨와 행동으로 그의 사회적 계급이 무엇인지,
그의 종교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안다.
깨달은 진인의 거동, 말, 행위는 늘 지혜로 가득 차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살 것이다.
-Master of Self-Re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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