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통해서 브라흐만에 대한 확신을 굳혀라

2020. 11. 24. 23:05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모든 것이 브라흐만일 뿐이다.  

이름과 형상은 거짓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는 죽어서 흙의 일부가 된다. 

바람은 흙의 모든 입자를 삼킨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고, 바람의 냉기는 물이다. 

바람의 열기는 빛이고, 바람의 무거움은 물질 곧 흙이다. 

모든 인간과 기타 동물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지만, 결국에는 모두 죽는다. 

모두가 바람과 하나가 된다. 

물이 얼면 굳어진다. 

 

'쁘리트위(prithvi- 흙)'는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마라티어에 '빠라따위(paratavi)'라는 동사가 있는데, 이것은 '돌아가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든 원소가 하나가 되면 생명기운 짜이따니야만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의 궤도를 도는 속도는 엄청나다. 

지구상에는 지구 자체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몸은 5대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소들은 짜이따니아나(생기) 와 같은 것이다. 

육체는 충분한 힘을 얻기 위해 음식, 물, 공기 등이 팔요하다. 

우리의 육체는 흙의 일부이므로, 육체는 음식으로 흙의 일부가 필요하다. 

5대 원소와 하나의 진아를 합친 여섯 요소가 한 그룹을 이루지만,

일곱 번째가 있으니 그것은 이 여섯 가지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스리 쌍까리(쌍까라차리아)가 베단타에 관해 설법하다가 말했다. 

"마야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이다. "

마야의 '마'는 '없다'는 뜻이고, '야'는 '것'을 뜻하므로, 마야는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하는 놀이가 거짓이듯이, 

마야가 실재한다는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논쟁하는 사람들의 실재성 여부도 마찬가지이다. 

 

마야에 대한 논쟁에 대해 몰두하는 사람들은 

마야가 그러한 만큼이나 실재하지 않는다. 

마야와 탐욕은 비슷하다. 

눈에 보이던 음식 덩어리가 먹는 과정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듯이,

눈에 보이는 장면도 보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식사와 식사하는 사람, 봄과 보는 사람 모두 가짜다. 

논쟁과 논쟁자 모두 가짜다. 

'단일성'과 '다수성'의 개념도 모두 거짓이다. 

'하나'와 '다수'도 거짓이다. 

 

오직 하나가 있고 두번 째는 없다. 

오직 유일한 하나가 완전한 전체적 존재이다. 

그 안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다.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충만하고 완전한 하나가 어떻게 거짓일 수가 있겠는가? 

 

주의 깊게 들어 보라. 

다른 어떤 것도 없고 오직 '하나'만이 있다는 것이 이해된다면, 

그대들이 저 브라흐만이 아닌가?  

일체가 '여러분의' 전체성, 그 하나의 브라흐만 안에 들어 있지만, 

브라흐만이라는 말조차 사라진다. 

이것은 무슨 시(詩) 구절이 아니다. 

어떤 상상의 유희도 없다. 

이 상상적인 개아는 거짓이므로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혹은 '타자(他者)'도 없다.  

 

한 항아리가 자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자신은 항아리가 아니라.

흙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항아리는 걱정에서 벗어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브라흐만의 전체성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시작하고,

신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육신들은 세계의 주님(나라야나), 곧 신의 거주처이다. 

 

신이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 자신들이 신이다. 

그릇된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 허물이며, 

의심을 갖는 것도 허물이다. 

실재 아닌 다른 뭔가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개념이다. 

 

여러분이 나라야나(Narayana), 곧 신일 때 여러분 자신을 사람(Nara)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개념이다.

나라야나는 시작이 없다. 

여러분이 그를 '사람'으로 부르는 것은 내버려야 할 잘못된 개념이다. 

그리고 의심이 무엇인가? 

여러분은 '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하는데,어떤 사람이 '그대는 신이다'라고 말할 때, 

이것을 의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하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의심이다. 

 

벽에 그려진 바다그림이 바다로 보이면 그 벽이 어떻게 있겠는가?

벽에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실은 '벽'이라는 한 물건일 뿐임을 아는 것이 지(知)이다. 

무지(無知)가 죄 중에서 제일 큰 죄다. 

무지의 편을 드는 것은 덧없이 서글픈 일이지만, 

무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마야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죄다. 

'모두가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고, 최고의 공덕이다. 

'이 모든 것은 브라흐만의 성품, 신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계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진리이다. 

주 크리슈나가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이고, 이 모든 것은 브라흐만이다.'라고 했을 때, 

그는 진리를 말했다. 

오늘은 여러분이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진리를 말해야 할 것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주 크리슈나가 한 말이 참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참'이나 '거짓'의 어떤 이원성도 없었다고 가정하면 어떻겠는가?

그가 죄인이 될까? 

예를 들어 (독신이었던) 하누만의 결혼이야기는 거짓이 아닌가?

맹세를 하고 말하지만 허망한 겉모습을 참되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개념을 토대로 말하는 사람은,

거짓된 진술을 하게 마련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이 모든 세계의 겉모습이 참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에 반하여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다. 

어떤 사람은 달이 달빛의 우유를 마신다고 한다. 

그것을 장님이 보았고, 귀먹어리는 달이 우유를 마시는 소리를 들었다고 맹세했으며,

앉은 뱅이는 그곳까지 걸어갔다는 것이다. 

마야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이야기는 이와 비슷하다. 

 

거짓말쟁이가 하는 모든 말이 거짓이듯이 말이다. 

여러분이 브라흐만에 대해 확신할 때 비로소 지(知)의 길을 걸을 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누가 진정한 지(知)를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기 자신이 브라흐만임을 아는 자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

그런 사람이 큰 요기, 즉 완전히 깨달은 자이다. 

 

보통의 기준으로는 죄인이고 무지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는 '모두가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따라서 브라흐만과 하나이다. 

남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우리 자신의 깨달음이다. 

깨달은 자는 신의 능력을 얻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모두 진리로 증명된다. 

 

지혜의 계발이 덜 됬다고 봐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여전히 어떤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계발이 덜 된 사람'이다. 

아무 의심이 없는 사람은 브라흐만이 되었다. 

의심이 사라진 사람은 평정심(平靜心)을 가지고 있다. 

그의 체험은 무엇이며, 그의 확신은 무엇인가? 

그는 만물과의 '하나임'를 알고 또한 느낀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눈꼽만큼의 차이도 없이 그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평정심이라고 한다. 

모두가 완전한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진실로 이해한 사람들은

자신이 브라흐만인지 아닌지, 자신의 상태가 덜 익은 것인지 완전히 익은 것인지 질문할 필요가 없다. 

나귀는 자신이 나귀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덜 성숙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덜 성숙한 것이다. 

이것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스승의 축복을 받을 만 하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스승의 축복'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대가 그것이다'를 이해하는 것이 스승의 축복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누만의 꼬리가 얼마나 긴지를 묻는다면, 

그 답은 여러분의 의심이 큰 만큼 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스승을 찾아가자 마자 모든 의심을 놓아버렸다면,

지체없이 브라흐만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영적인 지(知) 또는 브라흐만에 대한 깨달음(知)이라고 한다. 

이것을 실제로 알때, 여러분은 지극히 중요한 지혜를 성취한 것이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눈에 보이는 대상들과 그것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영원한 브라흐만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한가?

다만 의심이라는 결함이 사라져야 한다. 

 

여러분이 브라흐만이 되었을 때, 

스승의 가르침은 결실을 거두게 되고 

'신에 의한 영적(靈的)인 힘'이 있게 된다. 

그러나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힘이 있는 것은 브라흐만이다. 

이 힘을 아는 자이며, 소유한 자는 브라흐만이며,

이 힘 속에서 브라흐만은 초연하다. 

 

                                              -Master of Self-Re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