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17)

2020. 10. 16. 21:24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질문자: 깨어있으면서 뭔가를 하다가 내가 뭘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일을 하면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것 같은 것이 목격인가요? 

 

라메쉬: 그렇죠. 이해나, 목격, 일하는 마음은 다 똑 같은 겁니다. 일하는 마음이 일을 할 때는 목격이 필요가 없는데, 일하는 마음 자체가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고 저는 이것을 완전한 명상에 비유해요. 왜냐하면 이때는 "내"가 없고 시간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지요. 오직 활동만 있어요. 보면, 이렇게 활동을 하다가 시계를 보고 "이런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네!"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이렇게 활동할 때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요. 특정 시간동안 기억이 없는 것은 생각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질문자: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비목격 상태나 그와 비슷한 상태인가요? 

 

라메쉬: 그렇게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저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저는 오직, 일하는 마음이 생각하는 마음의 간섭없이 주어진 일에 집중할 때와 "이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내 일에 영향을 줄까? 어떻게 이득이 되지?"와 같은 생각으로 간섭할 때, 이 두 가지만 비교할 겁니다. 일하는 마음이 간섭당하지 않기 때문에 일하는 마음이 완전히라고 말했지. 이게 실수였네. 그렇게 말했으니 말이 경주에 마음을 집중할 수나 있었겠냐고!" 그래서 어떤 결과가 있을지,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생각하면 일하는 마음은 영향받을 수 밖에 없지요.  장악하고 있을 때는 하루 일과가 끝날 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긴장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취하는 자 없이 성취하는 굉장한 느낌이 있어요. 일하는 마음과 생각하는 마음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요. 윈스턴 처칠은 말 한 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말로 경마 대회에서 우승하기를 기대했지만 우승하지 못했죠.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처칠은 이렇게 말했어요. "내 실수야. 경기전에 내가 말에게 가서 '니가 이번 경주에서 이긴다면 남은 평생 아무일도 할 필요가 없을 거다. 최고의 여자 친구가 생길 거고 아무런 걱정없이 살거다.'

 

질문자: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습관들이 모두 일하는 마음에 속하나요? 

 

 

라메쉬: 상황에 따라 다르죠. 일하는 마음이 일을 잘하려면 습관이 필요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부분의 습관들은 생각하는 마음에 속해요. 최악의 습관은, 제가 최악이나 최선이라고 말할 때는 최악과 최선의 것들 모두가 참전체성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셔야 해요. 

그래서 최악의 습관은 일어나는 일을 개인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거예요. 심지어 일어나는 생각 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네, 없네라고 하면서 판단하지요. 이것이 조건에 길들여지는 겁니다. 개념화하는 것도 최악의 습관이지요. 개념화한다는 말은 비교하고 판단한다는 뜻이예요. 옛 사람들이 어떻게 완벽한 지식을 얻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장자(莊子)의 아름다운 문구가 있어요. "그들은 사물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다 사물이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사물들을 서로 비교하지는 않았다. 사물을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물들을 서로 분별하기 시작하면서 도(道)는 사라졌다.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도는 사라졌다." 이 글은 진화의 과정에서 어떻게 정체성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주는데, 시작할 때는 사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다가 판단하고 비교하면서 끝을 맺어요. 도가 일어나서 도의 움직임을 지나서 도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결국 이 과정은 완전히 한 바퀴를 돕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인간은 과정이 일어나는데 쓰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질문자: 무슨 일을 하면서 그 순간 완전히 그 일에 집중하고 하는 일이 잘 될지 안 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일하는 마음인가요? 

 

라메쉬: 맞아요. 그래요.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내게는 결과를 통제할 방법이 전혀없다. 삶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나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통제할 수가 없다."라는 이해가 있어야만 해요. 이것이 바로 이해의 핵심이예요. 이러한 확신이 있으면 어떤한 간섭도 없이 일하는 마음은 계속 이어질 수가 있어요. 

 

질문자: 제가 "나는 일하는 마음을 쓸꺼야."라고 생각하면 더 방해만 되나요? 

 

라메쉬: 맞는 말이예요.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이해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나에게는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나는 단지 꿈속의 인물일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기능하는 것뿐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때 반응하는 도구로써의 몸-마음 유기체만 있을 뿐이지 진정 "나"란 없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하는 것입니다. 몸-마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밖에서 들어오는 생각이나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는 것뿐이예요. 그래서 몸-마음 유기체가 외부의 생각이나 일에 반응하는 것이 일하는 마음이 하는 일이에요. 

 

질문자: 일하는 마음이 일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나요? 

 

라메쉬: 아니죠.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마음은 비어있지 않아요. 이런 일하는 마음과 생각하는 마음의 차이는 단지 관념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일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요. 이 말은 마음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당장 주어진 일에 집중한다는 뜻이예요. 

 

질문자: 일하는 마음이 직관적인 마음인가요? 

 

라메쉬: 그렇죠. 그렇게 말해도 되요. 생각하는 마음이 개입하면 일하는 마음의 능률이 떨어져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생각하는 마음은 낄 수가 없어요. 이때는 일하는 마음이 온통 차지할테니까요. 

 

질문자: 생각하는 마음이 쓸모없다는 말씀인가요? 

 

라메쉬: 참의식이 지금과 같은 삶과 생활을 일으키는데 생각하는 마음이 꽤 쓸모가 있지요. 인간 관계를 만들고 이 관계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생각하는 마음이예요.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삶과 생활은 없었겠지요. 비개인적인 마음인 보편적 참의식이 일부러 자신을 개인의 개별 마음과 동일시 한 것이 바로 생각하는 마음이고 이렇게 해서 삶과 생활이 계속될 수 있게 하지요. 

 

질문자: 그러면 에고라는 개념이 생각하는 마음의 도구인가요? 

 

라메쉬: 에고가 바로 생각하는 마음이예요. 

 

질문자: 에고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개념이 아닌가요? 

 

라메쉬: 에고는 당연히 개념이죠. 생각하는 마음, 에고, "나", 이 모두가 다 같은 것입니다. 환상이라고 하는, 이 같은 것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일 뿐이지요. 

 

질문자: 어떻게 목격하는 것이 일하는 마음과 다른지 이해가 안 되는데, 일하는 마음에도 관찰하는 자는 없거든요. 

 

라메쉬: 자, 그것은 생각하는 마음이 몰두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일하는 마음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하고 있는 일에 정말로 열중해서 할 때는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요. 꼭 일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좋은 음악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완전히 집중해야하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로지 일하는 마음뿐이지요. 

 

질문자: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마음에 몰두하는 것만큼이나 그런 일에 몰두할 겁니다. 

 

라메쉬: 아, 그렇지요. 맞아요. "몰두한다"라는 말 때문에 혼동되나 보군요. 일하는 마음이 온전히 나타나려면 하고 있는 일에 정말 '완전하게' 몰두해야만 해요. 이 "몰두한다"라는 말 때문에 혼동이 되나 보군요. 

 

질문자: 아, 그럼 비록 제가 생각하는 마음과 동일시하면서 몰두한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산만한 것들과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군요. 

 

라메쉬: 그렇죠. 그래서 생각하는 마음에 몰두하는 것은 일하는 마음이 몰두하는 것을 방해해요. 

 

질문자: 보통은 저는 생각하면서도 뭔가 다른 일도 하고 있어요. 

 

라메쉬: 그래서 정말 몰두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일하는 마음이 완전히 몰두해야지만 생각하는 마음이 간섭하지 못해요. 

 

질문자: 그렇군요. 그럴 때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끼죠. 

 

라메쉬: 일하는 마음이 완전히 몰두하고 있으면 확실히 시간이 없는 것을 느끼죠. 왜냐하면 일하는 마음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서만 기능할 수가 있기 때문이예요. 과거나 미래에서 일하는 것은 언제나 생각하는 마음이지요. 

 

질문자: 문득 정신이 들면서 "30분이나 지났네!"라는 생각이 들죠. 

 

라메쉬: 바로 그래요. 

 

질문자: 길을 건너는데 차가 돌진해 온다면, 그것을 제게 말해주는 것은 일하는 마음이지요? 

 

라메쉬: 일하는 마음은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일하는 마음은 바로 행동할 겁니다. 

 

질문자: 그래서 비켜서겠군요. 

 

라메쉬: 그렇죠! 길에서 비켜서는 일은 본능적으로 일어날 겁니다. 

 

질문자: 하지만 제가 앉아서 월 말에 돈을 빌리러 가야할지 걱정하고 있다면... 

 

라메쉬: 그것은 확실히 생각하는 마음이지요. 

 

질문자: 정말 시간 낭비군요.

 

라메쉬: 물론이죠! (11cho)

 

 

                          - 리쿼만 편집, 김영진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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