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1. 23:03ㆍ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인간의 조건이 되는 감지력과 지능 --
질문자: 왜 제게는 두려움과 불안이 많은 걸까요?
라메쉬: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다른 물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곤충들처럼 감지력을 부차적으로 부여 받았고 여기에 지능이 더해졌다는 측면에서만 다르지요. 인간은 지능이 있기 때문에 질문하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지능이예요. 동물은 임박한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경계하다가도 위험이 사라지면 긴장을 풀지요. 인간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능은 앞날을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하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하지?"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지능이 두려움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지능이 안전의 보장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변화를 거부하고 안전의 보장을 바라는 것은 지능이예요. 동물에게는 생각하는 마음 따위가 없기 때문에 안전의 보장을 신경쓰지 않아요.
질문자: 불안도 없겠군요?
라메쉬: 생각하거나 개념화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불안도 없죠!
-- 꿈 그리고 꿈꾸는 것 --
질문자: 꿈꾸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라메쉬: 꿈꾸는 것이라? 꿈꾸는 것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현상세계에는 세가지 상태가 있는데, 깨어있는 상태와 꿈꾸는 상태 그리고 이 둘 다가 없는 깊은 잠의 상태입니다. 깊은 잠의 상태에 있다가 문득 개인이 꿈꾸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라고 부르는 참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이 깨어있는 꿈과 흡사해요. 만일 세상에 감지력을 가진 존재가 오직 하나뿐이라면, 있는 모든 것인 참의식이 자신을 감지력을 가진 존재의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냅니다. 이 감지력을 가진 존재에게는 비개별적으로 인식한다는 의식이 확고합니다. 이 감지력을 가진 존재가 깨어나서 세상을 볼 때는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입니다. 참의식이 이 유일한 감지력을 가진 존재를 통해서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세상을 창조합니다. 이 감지력을 가진 존재는 깊은 잠 속에는 없어요. 그래서 깊은 잠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 참의식이 본연의 상태지요. 그러다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인식하는 첫번째의 순간이 바로 참의식이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다 감지력을 가진 다른 존재들이 있으면 상호관계가 일어나지요. 하지만 다른 감지력을 가진 존재가 없다면 세상을 관찰하는 참의식만 존재할 뿐 "나"라는 의식은 없어요. 세상을 인식하는 의식만 있을 뿐이죠. "나"와 "다른"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아요.
질문자: 꿈꾸는 것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잠자는 사람들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는데, 과학자들은 꿈꾸는 것을 꿈의 상태 또는 급속 안구 운동을 하는 램 수면 상태라고 부릅니다. 근데, 과학자들은 이 꿈의 상태에서 마음이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라메쉬: 바로 그거죠. 그렇죠. 당신이 말하는 것은 꿈을 만들어 내는 두뇌의 기계적인 측면이예요. 이 세상이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기본적인 이유가...
질문자: 잠잘 때 꾸는 꿈 말입니까?
라메쉬: 아니예요. 여기 이 살아있고 깨어있는 꿈에는 아주 오래된 산과 강이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상이라는 꿈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말할 수가 있냐고 묻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이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거부하지요. 꿈이 갑자기 일어났다면 어떻게 여기에 연대(年代)적 시간대가 있을 수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개인이 꿈을 꿀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와 같다는 거지요. 급속 안구 운동이 시작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개인의 꿈이 나타나지요. 그리고 여기 이 "삶이라는 꿈"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주 오래된 산과 강, 태어나는 아기들과 죽어가는 노인들이 모두 다 개인의 꿈속에도 있어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잠에서 깨어날 때 비로소 깨우칩니다. 그래서 깨어나는 것은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일이 됩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죠. 당신이 잠에서 깨어날 때 정말로 일어나는 일은 자신의 꿈에서 여기 이 살아있고 깨어있는 꿈으로 깨어나는 일입니다.
질문자: 개인적으로 개인의 꿈이 꿈꾸는 상태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제가 깨어있을 때의 상태가 꿈이라는 사실은 깨우치기가 어렵군요.
라메쉬: 그렇죠. 그럼요. 무슨 말인지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꿈속에서도 지금처럼 서로 이야기 하고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질문자: 두려운데요. (웃음)
라메쉬: 보시면, 이 삶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당신의 개인 꿈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거죠!
질문자: 그럼 저는 언제 이 세상에서 깨어날까요?
라메쉬: 이해가 있고 이 세상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어떤 의심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이 꿈에서 깨어납니다.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꿈에서 깨어나셨고 저는 여전히 꿈 속에 있다고 느끼십니까?
라메쉬: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깨달음은 현실로 보이던 것이 정말로 현실이 아니라고 불현듯 깨우치게 되는 것을 뜻할 뿐이예요. 그리고 현실이 아니던 것이 현실로 체험되지요. 깨달음에는 초월적인 갑작스러운 의식이, 초월적인 통찰력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꿈이라는 생각이 더는 개념으로만 남아있지 않아요. 현실이 되지요. 깨달음이 일어난 뒤에 사별(死別)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사람의 몸-마음이 사별이라는 사건에 반응은 하지만 이런 사별이라는 사건도 꿈의 일부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합니다.
질문자: 제가 꿈에서 깨어날 때 보면, 저 자신이 꿈속에 있던 사람들과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꿈속에 있던 "나"까지도 지어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것들을 지어내려면 제가 꿈속에 존재하는 객체가 되어서는 안되죠. 그래서 제가 이 깨어있는 꿈에서 깨어날 때는 전 이 작은 "나"라는 것이 될 수가 없어요. 자각하는 큰 "내"가 되어야만 하겠군요.
라메쉬: 그렇죠. 맞는 말입니다. 그것이 핵심이예요. 이 때문에 이 모두가 꿈이라는 깨우침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자신을 독립적인 개체라고 늘 생각했던 "나"도 꿈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우치게 됩니다.
질문자: 여기 역설이 있는데요.
라메쉬: 물론 그렇겠죠!
질문자: 그 꿈의 비유로 돌아가서, 깨달은 사람이란 잠자는 꿈에서 깨어났다가 여전히 꿈속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꿈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선택한 사람인데, 그리고 다시 돌아오고, 이렇게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까?
라메쉬: 그렇죠. 지금 당신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내"가 이 깨어있는 꿈을 꾸고 있고 "내"가 개인의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이 꿈 둘 다, "내"가 꾸는 꿈이 아닙니다.
질문자: 그렇군요!
라메쉬: 당신 개인의 꿈도 참의식이 창조하는 것이고 이 깨어있는 꿈도 참의식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꿈꾸는 이는 오직 참의식 뿐입니다.
질문자: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모든 것, 모든 개별적이라는 것, 모든 분리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겠습니다.
라메쉬: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는 오직 참의식뿐이죠. "개인적인 나"라는 개념은 너무도 강해서 "내가 꿈꾼다."라고 말하게되죠. 하지만 꿈꿀 수 있는 "나"는 없어요. 그래서 이 깨어있는 꿈에서나 당신의 개인 꿈에서나 "꿈꾸는 자"는 오직 참의식뿐입니다. 참의식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참의식이 자신을 개인과 동일시하며 생기는 개별 마음을 통해서 개인의 꿈이 창조되지요.
질문자: 그럼 "개인의 꿈"을 언급하실 때 "삶이라는 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메쉬: 아니죠. 개인의 꿈은 당신이 잠잘 때 꾸는 꿈이예요. 하지만 제 말은, 수십억 인간이 꾸는 개인 꿈들과 여기 이 살아 숨쉬는 거대한 세상이라는 꿈, 이 둘 다에서 "꿈꾸는 자"는 참의식이고 우리는 모두 꿈속에 나오는 인물이예요. 우리가 자신이 "꿈꾸는 자"라고 생각하면 실수는 더 커지고 환상은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는 "꿈꾸는 자"가 아니라 단지 꿈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지나지 않아요.
질문자: 꿈꾸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우리가 꿈꾸어진다고요?
라메쉬: 그럼요. 우리는 꿈속의 인물입니다. 우리는 단지 인물들일 뿐이예요. 우리는 자신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살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속의 인물이예요.
질문자: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꿈꾸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메쉬: 그것을 자각몽(自覺夢)이라고 부른다고 들었어요. 괴상한 것들 중 하나죠. 예를 들어 꿈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죠. 이 말은 누군가의 전생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들을 기억한다는 뜻인데 기억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자신의 전생이라고 착각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기억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제 생각에 당신이 말하는 것은 자각몽 같은 것인데 전 자각몽에 대한 기술적인 면은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리쿼만 편집, 김영진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성인들 가르침 > 라메쉬 발세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스님의 경책(10) (0) | 2020.09.10 |
---|---|
참의식이 말한다(11) (0) | 2020.09.04 |
참의식이 말하다(8) (0) | 2020.08.14 |
참의식이 말한다(7) (0) | 2020.08.07 |
참의식이 말하다(6) (0) | 2020.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