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허공을 안심하게 할 수 있겠는가?

2020. 7. 17. 22:39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 " 갑(甲)이라는 사람이 마음을 거두고 선정에 들어 부동(不動)하다고 합니다."

 : "이는 선정에 묶인 것이어서 써서는 안된다. 내지 사선정(四禪定)과 사공정(四空定)도 모두 일단의 고요함이되 다시 혼란해지는 것이어서 귀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는 법을 짓는 것이며, 또한 법을 파괴하는 것이어서 구경의 법이 아니다. 만약 능히 성품을 안다면 고요함과 혼란함이 없어 바로 자재(自在)할 수 있게 되고, 고요함과 혼란함에 속하지 읺게 된다. 이러한 이가 정신인(精神人 : 귀신경계에 빠지지 아니하고 깨어있는 본질에 있는 자)이다.

[해설]

소승의 선정(九次第定 : 四禪定,四空定,滅盡定)은 대승선정에 비해 원만하지도 못하고 온전하지도 못하다. 

대승의 선정에서는 선정 중에 일상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지만 소승의 선정에서는 말도 못하고, 다른 행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대승경론에 설해져 있다. 아직 동정불이(動靜不二)의 선정이 아니어서 고요함(적멸,열반)의 상을 잡고 있기 때문에 고요함이라는 동상(動相)이 있다. 이루어진 상은 영원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애써 고요한 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 본래 무생(無生)의 부동(不動)을 오히려 해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법을 파괴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소승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심성(心性)이 본래 무생(無生)이어서 영원한 뜻을 먼저 알아야 한다. 

심성의 본래 선정은 무생이어서 멸(滅)함도 없으니 영원하다.

그래서 보살제8지에서 무생의 진리(無生法忍)를 성취하여 부동지(不動地)가 된다. 이 자리에서의 삼매는 무생의 삼매인 까닭에 영원하다. 보살 제8지에서부터 불퇴전(퇴보함이 없음)이라 함도 그 때문이다. 그 삼매가 생함없이 있는 것이라 환(丸)과 같으니 여환삼매(如幻三昧)라 한다. 이어 보살 제9지 이상을 금강유삼매, 금강삼매라 칭함은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삼매인 까닭에 금강에 비유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삼매와 삼매 아닌 자리가 따로 없다.  

 

[본문]

또 이른다.

"만약 능히 해(解)를 취하지도 아니하고 미혹을 짓지도 아니하며, 마음의 심지(心智)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 이는 바로 안온한 사람이다. 만약 일법(一法)이라도 귀중하게 여길 것이 있다면 이 법은 너를 가장 잘 묶고 죽일 수 있는 것이며, 마음 가운데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간의 범부 가운데 명자(名字)에 묶인 자가 천하에 무수히 많다."

[해설]

마음이 일어나면 생로병사와 윤회의 고통 등 일체의 존재가 생한다. 그래서 마음이 일어나면 곧 그 마음으로 묶이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보살이 설한 가르침이라 하여 이를 애중(愛重)하면 그 마음이 일어나 일체법(모든 것)이 생기게 되고 결국 무심(無心)과 망심(忘心, 마음을 잊음)에 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실로 근본되는 잘못이다. 

 

<대방등대집경현호보살분> 권1 사유품 제1의 1에 설한다. 

"마음이 마음을 모르고,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한다. 마음에 상념이 있으면 곧 생사를 이룬다. 마음에 아무런 상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열반이다. "

 

또 <능가경> 권7 게송품에 설한다.

心雖成二分  마음이 비록 견분(見分),상분(相分)으로 이분되어 있으나,

而心無二相  마음에 이상(二相: 能과 所 : 見分과 相分)이 없나니

如刀不自割  비유컨대 칼이 스스로를 자르지 못하고

如指不自觸  손가락이 스스로를 만지지 못함과 같이

而心不自見  마음이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것도

其事亦如是 또한 그와 같다. 

 

[본문]

어떤 사람이 혜가 대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됩니까?"

(혜가대사가) 답하였다.

"모든 범부와 성인은 다 망상으로 분별하여 지은 것이다."

또 물었다.

"이미 망상이라면 어떻게 수도하는 것입니까?"

(혜가대사가) 답하였다.

"도가 어떤 물건이어서 닦으려 하는가. 법에는 높고 낮은 상이 없고, 

법에는 가고 오는 상이 없다."

 

[본문]

또 묻는다. 

"제자에게 안심(安心)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혜가 대사가) 답한다. 

"너의 마음을 가져오라. 내가 너에게 안심하는 법을 주겠다."

또 말한다. 

"단지 제자에게 안심하는 법만 가르쳐 주십시오."

(혜가 대사가) 답한다. 

"비유컨대 재단사(裁斷師)에게 옷을 재단해 달라고 청하면 재단사가 너의 비단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칼질을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본래(아직) 비단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너에게 허공을 재단하여 주겠는가. 

네가 마음을 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데 내가 너를 위해 어떤 물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진실로 허공을 안심하게 할 수는 없다"

 

                                   -담림 편집 박건주 역주 <보리달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