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 09:58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1회에 이어서-)
이렇게 변모된 의식의 양상은 자연스럽게 삶의 가치와 생활 습관에 대한 벤까따라만(라마나 마하리쉬 속세 본명)의 느낌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전까지 가치 있게 여기던 일들이 모두 매력을 상실했고, 삶의 정통적인 목표들이 비실재적인 것으로 되면서, 그전에 소홀이 하던 일들에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다가 영적인 삶에 대한 아무런 이론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사람에게, 이러한 새로운 자각의 상태에 삶을 적용시키는 일이 쉬울리가 없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당분간 가정 내에 머물러 있으면서 계속 학교를 다녔다.
사실 그는 가능한 한 거의 외부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 했으나, 가족들이 그의 행동 변화를 눈치채고, 그런 어떤 모습에 대해서 못마당해하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이 점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새로운 자각의 결과는 곧 내 생활 속에서 나타났다. 첫째로 나는 친구나 가족 친지들과의 외부적 관계에 있어서 그나마 조금 가지고 있었던 흥미를 잃어 버렸고, 학교공부는 기계적으로 했다. 나는 가족 친지들이 내가 책을 보고 있는 것에 만족하도록 내 앞에 책을 펴놓고 있곤 했지만, 실제로는 내 주의는 그런 피상적 일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유순하고 순종적으로 되었다. 그전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일을 더 맡기면 불평을 했고, 어떤 아이가 나를 약 올리면 보복하기도 했다. 그들 누구도 나를 놀리거나 함부로 굴지 못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어떤 일을 맡겨도, 아무리 놀리거나 약을 올려도, 나는 조용히 그것을 감당했다. 화를 내고 보복을 하던 이전의 에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종종 혼자 앉았는데, 특히 명상하기 좋은 자세로 앉아서 나를 구성하는 힘 또는 흐름인 진아, 즉 영(靈)에 몰입하곤 했다. 형이 빈정거리듯이 나를 '진인(眞人, sage)이니, '요기(yogi)니 하고 부르면서, 고대의 리쉬(Rish-仙人)들처럼 밀림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러기를 계속했다"
"또 다른 변화는 내가 더 이상 음식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주든, 그것이 밋이 있든 없든, 좋은 음식이든 나쁜 음식이든, 똑같이 무괸심하게 먹었다."
"내 새로운 상태의 한 측면은 미나끄쉬 사원에 대한 나의 태도 변화였다. 전에는 친구들과 꽤 자주 그곳에 가서 신상(神像)들을 보기도 하고 성회(聖灰, 말린 말똥을 태운 재로서, 이미나 몸에 바르는 것)와 주사(朱砂, 성회와 함께 얼굴이나 몸에 바르는 붉은 색 가루)를 이미에 바르고 별반 감흥없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 이후에는 거의 매일 저녁 거기에 갔다. 나는 혼자 가서 쉬바나 마나끄쉬(여신으로 쉬바의 아내), 나따라자('춤의 왕'이란 뜻이며, 우주적 춤(파동력)을 추는 쉬바의 한 형상), 아니면 63인 성자들의 상(像) 앞에 한참동안 꼼짝않고 서 있기도 했는데, 그러면 서 있는 동안 감정의 물결이 나를 휩쓸곤 했다. '나는 육체다'하는 관념을 던져 버린 순간 영혼은 육체를 붙들고 있기를 포기했고, 어딘가 새로운 정박지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원에 자주 갔고, 영혼의 솟구침이 눈물로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영혼에 대한 신의 유희였다. 나는 우주의 주재자(主宰者)이며 모든 존재들의 운명의 주재자인 동시에, 전지전능한 자인 이슈와라(서양의 인격신 하느님(God) 개념에 상당함)의 앞에 서 있기도 했는데, 때로는 내 헌신이 증장되어 63인 성자들의 헌신처럼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을 내게 내려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전혀 기도하지 않고 '내면의 깊은 것'이 '저 넘어의 깊은 것'속으로 흘러들도록 고요히 내려벼두는 경우는 더 많앗다. 영혼이 이렇게 넘쳐 흐르는 것을 보여주던 그 눈물은 무엇이 특별히 기쁘거나 괴로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다. 인생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고, 그것이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배운 적도 없었다. 나는 환생(還生)을 피하고 싶다거나 해탈을 구하고 싶은 욕망, 혹은 무욕(無欲)이나 구원을 얻고 싶다는 어떤 욕망에 의해서도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뻬리아뿌라남>과 성경 그리고 따유마나바르(18세기따밀성자, 영적인 시를 많이 남겼음)와 떼바람(6세기 따밀성자시인)을 약간 읽은 것 외에는 아무 책도 읽은 것이 없었다. 이슈와라에 대한 내 개념은 뿌라나(신화나 설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힌두 경전집들)에 나오는 것과 비슷했고, 브라만(우주 및 인간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비인격적 실재)이나 윤회(輪廻) 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일체 만물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본질 혹은 비인격적 실재가 있다는 것과, 이슈와라와 내가 둘 다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도 아직 몰랐다. 나중에 따루반나말라이에서 남들이 <리부 기타>와 다른 경전들을 읽는 소리를 듣고 나는 이런 것을 모두 배웠고, 그 책들이 내가 분석하거나 이름 붙이지 않고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을 분석하면서 이름 붙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책들의 용어로, 그 깨달음 이후에 내가 들어가 있던 상태를 기술한다면, 그것은 청정심(淸淨心)이나, 명지(明知), 즉 깨친 자의 지견(知見)이라 하겠다. "
그것은 짧은 얼마간의 시간 동안 황홀경에 빠진 신비가의 상태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 황홀경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라는 음울한 벽이 다시 그 사람을 바싹 에워싸고 만다. 그러나 슈리 바가반은 이미 항상적(恒常的)이고 끊임없는 진아의 자가가 안에 있엇으며, 그 자신이 그 깨달음 후에는 아무런 수행도, 아무런 영적인 노력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진아안주(眞我安住-진아에서 벗어남없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것,진아몰입 또는 삼매라고도 함) 를 향한 더 이상의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반대함으로써 갈등을 야기하는 에고가 해체되어, 맞서 싸울 대상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진보하여 그가 진아와의 동일성을 지속적으로 완전히 의식하면서도, 완전히 정상적인 외부적 생활을 굳건히 유지하면서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방사하게 된 것은, 따라서 자연스럽게, 애씀없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영혼이 어딘가 새로운 정박지(碇泊地)를 찾고 있었다고 한 슈리 바가반의 말씀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성자들을 본받고 싶어했다던가, 자기의 윗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을 썻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실제적으로는 아직도 얼마간의 이원성을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나중에 가서야 사라졌다. 또한 진보가 계속되었다는 하나의 신체적인 징후도 있었다. 깨달음을 얻었을 때부터 몸에서 어떤 끊임없는 열감(熱感, burning sensation)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가 띠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사원의 내전(內殿)에 들어갔을 때에야 사라졌던 것이다. -끝.
-아서 오즈번 지음,대성 번역<라마나 마하리쉬와 진아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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