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9. 19:32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생각들의 다발이 곧 마음이다.
[註: 마음은 생각들에 불과하다네. 모든 생각 중에서 '나'라는 생각이 뿌리이니, 마음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네.-우빠데사 운디야르]
마음의 형상은 에고이므로, 에고의 소멸이 마음의 절멸이다.
마음의 형상을 탐구하는 것이 그것을 소멸하는 수단이다.
[註: 마음이 그 자신의 성품을 부단히 탐색하면, 마음 같은 것은 없음이 드러나네. 이것이 모두에게 직접적인 길이네-우빠데샤 운디야르]
'나'라는 느낌에는 진짜인 것과 가짜인 것의 두 가지 상태가 있다.
심장 안에서 존재-의식으로서 빛나는 것이 그것의 본래의 상태이다.
그것이 사라스라라 안에서 반사되는 것과 생각으로서 확산되는 것은 그것의 가짜 상태이다.
만일 구도자가 자신의 진정한 성품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제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는 빛이 어둠을 극복하듯이 무지를 극복하는 지(知)를 낳는다.
빛과 어둠이 서로 상극하듯이, 지(知) 안의 무지와 무지 안의 지(知)는 서로 상극이다.
의식이 무지로 변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
의식은 그 본래의 순수한 상태에서는 이 무지를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의 자기탐구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자기탐구의 내적인 의미는,
'의식이 생각으로 되면서 무지로 왜곡되는 일이 없이 존재-의식으로서 그 본래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이 조금도 왜곡됨이 없이 그 본래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이것이 참으로 에고의 소멸이며 자신의 진아를 얻는 것이다.
의식의 빛이 그 본래의 상태로 빛나고 있는 한,
무지의 어둠은 고개를 들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결론지어야 한다.
따유마나바르는 다음 시에서 이것을 강조한다.
지(知)라는 것은 동물과 같습니다.
무지는 가짜 어둠입니다.
오염없는 등불이 어둠을 찾아보면 어둠은 포착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식으로서 머무르면 어떤 무지도 없습니다.
주님의 베다가 이것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의식은 그 위에 생각이라는 그림자들이 비치는 바탕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의식이 그 진정한 성품, 곧 순수한 침묵의 상태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머물러 있을 때,
생각이라는 그림자 장면은 그 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구도자는 생각들과 별개로 머물러 있어야 하고,
생각이 일어나고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실로 이것이 산깔빠(sankalpas)가 소멸하는 방식이며, 그
것이 자기 탐구이기도 하다.
["이 '나'는 어디서 일어나는가? 그것을 내면에서 탐색하면 그것은 사라진다네.
이것이 지혜의 추구라네-우빠데샤 운디야르]
-나따나난다 지음<라마나 다르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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