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어나면 곧바로 그 일어난 곳을 살펴라

2019. 5. 4. 11:40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마음에 비록 미혹이 들어오더라도 지(知),해(解)를 짓지도 말고 미혹하지도 말라.

마음이 일어난 때에는 즉시 법에 의거하여 일어난 곳을 간(看)하라.

만약 분별하게 되면 법에 의거하여 분별처를 간한다.

만약 탐욕이 나오거나 전도(顚倒)되면 곧바로 법에 의거하여 일어난 것을 간한다.

일어난 곳을 보지 못하니 바로 이것이 수도(修道)이다.

사물(대상)에 대하여 분별하지 않는 것 또한 수도이다.

단지 마음이 일어나면 곧바로 일어난 곳을 살펴보아서 법에 의거하여 마땅히 버려야 한다.


[해설]

마음이 일어나면 곧바로 그 일어난 곳을 간(看)한다.

그러면 그 일어난 곳을 볼 수 없고, 일어난 곳이 따로 없음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온 곳이 없으니 일어난 상념은 단지 그림자와 같고, 환(幻)과 같은 것일 뿐이다.

향할 바도 없고, 취착할 바도 없다. 그리하여 일어난 그 자리에서 분별을 떠난다.

" 법에 의거함"이란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 식으로 간하는 것이 아니라, 경론에 설해진 대로,

일어난 곳이 없고, 얻을 수도 없고, 그림자와 같다는 등의 법에 따라 이를 당념 당처의 자심(自心)에서 간하여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

묻는다.

"도를 닦아 득도하는 데 늦고 빠름이 있습니까? 

답한다.

"백천만 겁을 두고 비교해보건대 즉심(即心)하는 자는 빠르다.

발심(發心)하여 행하는 자는 느리다.

이근인(利根人: 근기가 날카롭고 뛰어난 자)은 즉심(당념당처)이 도(道)임을 안다.

둔근인(鈍根人: 근기가 둔하고 더딘 자)은 곳곳에서 도를 구하나 도의 자리를 모르며,

또한 즉심이 본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임을 모른다.


[해설]

즉심(卽心)의 행이 이루어지려면 자심(自心)의 당념 당처에 본각(本覺), 진여(眞如), 본심(本心), 부동심(不動心), 불성(佛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일심(一心), 중도(中道)의 뜻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알고 따로 구함이 없어야 한다.

당념 당처의 자리를 놓아두고 다른 데서 구하려고 향하면 즉심에서 멀어진다.

아무 데도 향함이 없고​, 취착함이 없어야 즉심이 된다.

마음은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아무런 상도, 마음이라는 상도 취함이 없고, 머무름 없을 때 본심에 즉(卽)하게 된다. 즉 본심에 즉함이 곧 즉심(卽心)이고, 어디에 향함이 없이 당념 당처에 항상하다.

이 공부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바로 자심에서 즉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즉심의 공부가 곧 달마선의 요의(要義)이다.

이러한 길을 모르고 본심에서 벗어나 특별한 여러 행을 통해 도를 구한다고 열심이지만,

이러한 이들은 둔한 근기가 하는 행이며, 매우 더디고, 병폐가 많으며, 궁극의 위(位)까지는 이르기 어렵다.

어디에 향함이 있으면 본심 자리를 놓아두고 객진(客塵)의 그림자를 따르는 것이 되어 버린다.

즉심(卽心)의 길을 알면 쉽고, 편하며, 힘이 덜 들고, 빠르며, 원만하고, 정도(正道)로서 궁극의 위(位)에까지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박건주 역주 <보리달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