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명상에 대한 법문 발췌(2)

2019. 5. 1. 21:06성인들 가르침/현대선지식들법문



1. 호흡관찰 (각산스님)

호흡관찰은 수행의 첫 단계인 마음관찰을 통해 수행의 진전이 이루어졌을 경우 해당되는 본격적 선정수행 단계입니다. 호흡관찰의 기본적 수행방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숨이 길면 긴 숨인 줄 알아차리기

2) 숨이 짧으면 짧은 숨인 줄 알아차리기

3) 숨의 전체 과정 알아차리기

4) 숨을 고요히 하기

위의 1),2), 항목에서 긴 숨과 짧은 숨의 단계를 밟을 필요없이 그냥 숨이 긴지 짧은지만 알아차리고 호흡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ㅇ. 호흡을 통제하지 마라.

호흡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호흡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치 구경꾼처럼 숨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숨을 자연스럽게 쉬도록 두어야지, 호흡을 조절하거나 그것을 간섭해서는 안됩니다.

호흡을 조절하고 통제하면 도리어 호흡이 불편해집니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호흡을 알아야 합니다.

숨은 단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숨을 안팎으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숨을 느끼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알기만 해야 합니다.

느끼려 하면 호흡은 무의식적 통제를 낳습니다.

호흡은 느기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ㅇ. 호흡은 자유다.

호흡명상은 호흡을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지 호흡이 닿는 어느 지점을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은 정해진 곳이 없습니다. 호흡 그 자체가 포인트입니다.

코끝이나 숨이 맞닿는 지점을 관찰해서는 안됩니다.

호흡의 대상은 마음입니다.


호흡을 어느 한 장소에 초점을 마추거나 위치를 지정해서는 안됩니다.

코끝을 보게하거나 숨이 맞닿는 지점을 보게 하는 방법은 붓다 후대에 만들어진 주석서의 오류입니다.

만약 특정한 장소가 숨의 터칭 포인트가 되어 닿는 부분이 느껴지면 그 포인트를 무시하고 단지 호흡을 '알아차리는 마음'만 유지하십시오.

호흡의 어디를 지켜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ㅇ. 마음으로 호흡하라

호흡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고 마음의 대상입니다.

그냥 숨 쉬고 있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차리는 '아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점점 더 집중될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호흡을 어느 장소에 정해야 하거나 호흡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날 경우 '입술이나 입술 위에서 숨을 쉰다 생각하고, 그 숨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호흡관찰을 하면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숨통이 터진 호흡이 단전까지 연결되면서 온몸이 시원해지고 다 뚫린 자연스러운 단전호흡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기맥타통(온몸의 기혀이 뚫리고 순환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됩니다.


만약 상기병(열기가 위로 쏠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멍한 병)이 있다면 수승화강(찬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더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 되어 상기가 사라집니다.


ㅇ. 호흡에 익숙해지기

가끔 호흡을 인식하는 것이 어렵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은 숨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감한 숨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숨을 인식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점차 명확한 숨결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호흡에 유지하고 항상 호흡에 깨어 있으십시오.

수행을 통해 호흡에 익숙해지기 위해 몸과 마음을 이완하면서 모든 생각과 망상을 신경쓰지 말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생각에 얽혀도 지금은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오직 명상의 대상인 호흡에만 마음을 계속 유지할 때라고 떠올랴야 합니다.


어떤 중요한 사항이 떠올랐을 때, 보통의 경우라면 반드시 기억하거나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일지라도 수행 중에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 이익이 없는 공상으로 망상만 낳을 뿐입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ㅇ. 호흡관찰은 반복훈련이다.

호흡관찰은 끊임없는 반복훈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영웅적 정진이 필요합니다.

계속 시도하면 숨에 집중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골프든 테니스든 기본동작을 익힐 때까지 몇 달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된 동작은 실제 경기에 임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무의식 속에 저장된 동작이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순발력 있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호흡명상도 고요한 침묵 속에서 거듭 반복된 알아차림에 의해 호흡을 명확히 인식하게 될 때,

자기도 모르게 호흡의 절대심연 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우주도 사라집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뛰어 넘는 무한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진도 알맞게 중도를 유지해야지, 너무 애쓰면 안됩니다.

정신적 압박과 육체적 피로 같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문제거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너무 느슨한 노력은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하게 할 것입니다.


ㅇ. 주문 활용하기

호흡관찰에 집중이 잘 안 될 때는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호흡시 숫자를 세거나 만트라(주문)를 응용해도 좋습니다. 불교의 전통에서는 호흡에다 염불의 명칭을 붙여 마음을 합일해 나가면서 만트라의 공력도 얻게 됩니다.

​호흡에다 마음을 두고 숨이 들고 남을 알아차리면서 만트라를 외우는 방법입니다.

불교의 전통에서는 호흡을 관찰하면서 들숨과 날숨에 만트라의 대상을 붓다로 하여 들숨일 때는 '붓', 날숨일 때는 '다', 하면서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호흡이 안정되고 집중이 호전되면 만트라를 놓고 단지 들숨, 날숨에만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들숨과 날숨에 만트라의 대상을 '여호와', '예수', 또는 '알라' 등으로 하여 호흡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진리는 하나이건만, 사람의 인식에 따라 둘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하나의 진리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진리(부처, 하나님)는 한 사람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호흡명상은 한 단계씩 나아가며 익숙해졌을 때 순차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너무 서둘러 나아가면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첫 번째 단계의 마음관찰 수행을 잘했다면 과거와 미래로 방황하는 망상은 이미 수행을 방해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호흡집중에 어려움이 있다면 수행의 기초입문인 마음관찰 수행을 서둘렀다는 뜻입니다.


호흡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20~30분 동안 집중할 수 있다면, 호흡관찰이 완전히 숙달된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수행의 고수급 단계인 '호흡 전체 보기'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즐겁고 고요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호흡관찰 수행이 진전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을 때는 간화선 화두 수행을 병행하는 것도 매우 유익합니다.

간화선은 사마타 위빠사나가 동시에 진행되는, 붓다의 명상이 진화 발전된 탁월한 정혜쌍수의 명상입니다.

남방의 어느 위빠사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입니다.


2. 호흡 전체보기


20~30분 연속적으로 숨에 집중할 수 있다면 당신의 집중력은 상당히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들숨과 날숨의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이어지는 숨의 전체를 집중해 보십시오.

들숨과 날숨이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순간까지 호흡의 전체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호흡의 전체 보기를 수행하면 마음은 달아나지 않고 집중은 더 깊어지게 됩니다.


호흡의 전체 과정인 들숨과 날숨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호흡이 끝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보아야 합니다.

이 호흡 과정은 고요한 현재 이 순간 만나게 됩니다.

호흡에 집중을 잘 하려고 하면 도리어 호흡이 막힙니다.

숨은 저절로 쉬게 두어야 합니다.

마음은 마음이 들뜬 원인과 착심(着心, 하고저 하는 의지적 마음)을 제거하면 곧 고요하게 멈춥니다.


호흡의 전체를 보되, 숨이 쉬어지는 자연 그대로 본다는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숨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어야지, 고의로 길거나 짧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호흡이 길든 짧든 단지 호흡 전체만 아십시오.

이런 식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수행하면 우리의 집중은 점점 안정될 것입니다.


숨을 놓치지 않고 편안히 호흡의 전체 과정을 보게 되면 거칠었던 호흡이 매우 부드럽고 미세해지면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부드럽고 아름답고 황홀한 호흡이 등장합니다.

호흡 만족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호흡은 매우 평화롭고 고요하며 놀랍도록 감미롭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허공과 하나가 된 부드럽고 '감미로운 호흡'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마음이 이 일을 알아서 진행하며 수행의 내공은 힘을 들이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허공과 하나가 된 '감미로운 호흡'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복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호흡의 알아차림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염념상속(念念相續, 생각 생각에 알아차림이 계속 이어짐)이 한 두 시간 경과하면 좌선 때마다 한 시간 이상, 사흘 연속 이상 호흡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이름다운 마음의 빛인 심월(心月, 큰 스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빠알리어로는 니미따(nimitta), 영어로는 sign으로 옮기고 있다)이 일부 서서히 나타나기도 합니다.

심월은 삼매의 증명이며 선정수행의 결정체입니다.

이는 마음이 정화된 깊은 집중력에 의한 결과입니다.

수행이 높아딤에 따라 심안(마음의 눈)을 통해 보름달 같은 형상이나 빛이 수행 중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월은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입니다.


3. 감미로운 호흡

-순수 알아차림의 '아는 마음'이 있을 때-


이 단계는 수행의 도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상급단계입니다.

마음은 매 순간 허공과 하나 된 우주 허공 그 자체의 평온한 호흡만 있게 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평화로운 지복(至福)의 상태로 향합니다.


호흡이 차츰 사라지면서 호흡의 결정체요, 극치인 '감미로운 호흡'이 진행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호흡'으로도 불립니다.

거친 호흡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될 때, 호흡은 점차 사라져 무호흡이 됩니다.

그러면서 오감은 사라지게 됩니다.


생각과 몸의 감각과 외부의 모든 소리는 차단되어 갑니다.

남는 대상은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황홀감과 행복의 극치요, 신비감 그 자체입니다.

이 상쾌함의 절정과 황홀함의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세계를 넘어선 경지입니다.

그 어떤 힘과 의지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온 우주를 놓아버리는 마음으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허공과 하나가 된 호흡, 감미로운 호흡의 극치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알아차림의 '아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의지의 통제력으로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그 순일한 호흡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고요와 평화의 감미로운 호흡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놓아버림으로써 열릴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그 모든 것에서 내려 놓아 그 어떤 경계에도 방해받지 않고 호흡이 편안하게 지속저으로 유지되면, 호흡은 아주 고요해집니다. 이런 체험 후에는 저절로 하고 싶어 틈만 나면 앉고 싶을 것입니다.

수행의 완숙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4.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감미로운 호흡의 단계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인위적인 마음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단지 지켜만 보십시오.

'아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럴 때 허공과 하나가 된 아름다운 호흡을 매 순간 놓치지 않고 연속저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호흡은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행복과 평화 그 자체이기에 억지로 호흡을 쳐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는 자' 없이 그저 오랜 시간을 허공 속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호흡만 즐기는 세계입니다.

이 단계부터는 '하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뭔가 하려고 하면, 아름다운 호흡은 사라지고 처음 과정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의지가 개입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아는 자'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효율적 수행기법은 잠시 고요의 정적을 깨고, 단지 자신에게 "부드럽게" 또는 "고요하게"라고 속삭이면서, 마음을 가볍게 터치해주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호흡을 수동적으로 지켜 볼 뿐, 들숨과 날숨의 인식과, 호흡의 처음과 끝이라는 인식의 알아차림을 놓아야 합니다.

그냥 아는 것은 오직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호흡의 극치 단계인 감미로운 호흡입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의 마음은 매우 섬세해 약간의 지시에도 그 명령을 잘 이행하게 됩니다.

호흡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어떻게 시공을 초월하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훨씬 더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호흡을 즐기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 됩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통팔달이 다 뚫린 시원한 오장육부의 호흡이, 허공의 공기통로에서 숨 쉬는 것같이 우주와 한 몸이 된 호흡이었습니다. 무아지경의 엑스터시에 이른 황홀감의 극치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아지경은 무의식상태의 순수의식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념으로 축적된 주관적 에고의 의식을 완전히 정화시킨 순백의 마음상태로 되돌려 줍니다. 

<다음단계인 '5.마음의 보름달'편은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 호흡과 함께 '이 뭣고' 화두 들기


호흡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갖가지 대상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이탈하지 않도록 붙잡는 중심축입니다.

이러한 호흡을 수행의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이 뭣고'의 화두에 접목해 수행하면 붓다의 정통명상인 사념처 수행과도 다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간화선과 붓다의 호흡명상(위빠사나 싸티)이 하나로 융합되고 회통된 수행법입니다.

그 수행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숨 쉬는 것을 마음으로 알면서 그 호흡을 중심축으로 삼아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뭣고?'하면 됩니다.

핵심은 숨쉬고 있음을 자각하는 데 있습니다.

이 '아는 마음'의 앎은 숨을 쉬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배가 곺으면 배가 곺으다는 것을 저절로 아는 앎이 있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저절로 아는 앎이 있습니다.


일상의 어느 때나 앎은 존재합니다.

앎을 놓치지 않으면 일상에 물들지 않고 객관화 할 수 있는 관찰적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화두는 억지로 들거나 머리로 풀려고 하면 병통이 됩니다.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답을 얻어내려 하지 말고 물어도 물을 것이 없는 질문이 되도록 물으십시오.

묻고 묻다보면 나도 모르게 홀연히 단박에 중생심을 꿰뚫어 아는 절대 무한인 붓다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물음을 반복해 질문만 해나가도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뭣고'의 화두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단계

스스로에게 "숨 쉬고 있는가?"하고 반문합니다.


-2 단계

'음 - - - - 숨 쉬고 있구나 !" 하고 자각합니다.

자각은 숨 쉬고 있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바로 '이 숨 쉬는 것을 자각하는 마음'을 계속 알아차려 알고 자각하는 이 마음을 계속 자신에게 되돌려 살펴보는 회광반조를 해야 합니다.


-3 단계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뭣고'하고 각자의 인지에 맞게 화두를 들면 '이 ~'라고 화두를 드는 속에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자동 연상되기 때문에 '이 뭣고'만으로 간결하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요점은 화두가 간결하게 만들어져 타성일편(수천만 갈래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으로 의심을 지어가는 데 있습니다. 생각과 생각에 오직 화두만 염념상속 되도록 하십시오.


-4 단계

'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을 아는, 또 다른 '아는 마음'을 불현듯 만나게 됩니다.

이때야 비로소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어떤 물건인지 궁금하게 됩니다.

즉, '이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A 이면, A 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B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 B가 정말 어떤 물건인가 절로 궁금해져 화두는 사라지고 오로지 관조하는 놈만 남는 오매일여(오로지 한 생각)의 경지로 들어서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이 아는 놈이 뭣고?'하는 물음만 남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이 뭣고'의 이론과 실제입니다.

4단계 경지에 들면 ' 이 한 물건'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깊은 의심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하늘을 높히 나는 새가 기류를 만나면 날갯짓하지 않고 그냥 기류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화두의심이 잡힙니다.

이 의심이 곧 의정(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이요, 의단 독로입니다.

의단 독로란 화두에 강력한 의정을 일으켜 화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삼매상태입니다.

삼매의 맛을 체험하면 이때부터 깨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사실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의정단계의 화두삼매는 시공의 개념을 초월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생략)


                                                  -각산 스님 지음 <멈춤의 여행>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