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2. 13:03ㆍ성인들 가르침/현대선지식들법문
인생의 참 모습- 혜암선사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참 묘법인데 우리는 한없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낯가죽이 바꾸웠는지 모릅니다.
천사세계 인간세계 귀신세계 축생세계의 가지가지 고와 낙을 받으면서 몸을 받을 때마다 껍대기를 바꾸어 썼습니다.
혹 선업을 지어서 천상이나 인간에 나고 또는 악업을 지은 까닭으로 귀신이나 축생의 몸을 받아 수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런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일체 중생이 자기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을 망각한데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이 미(迷)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 밝은 마음이 왜 미(迷)했느냐 하면,
번뇌와 망상 그리고 욕심이 덮혀서 청정한 마음이 나타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비유하면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 대천세계를 비추고 있지만,
검은 구름이 덮혀 있을 때는 밝은 달이 나타나지 못함과 같습니다.
그 검은 구름은 번뇌, 망상, 욕심을 비유로 든 것이며 달은 밝은 마음을 비유로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수양을 잘해서 저 서쪽 하늘에서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 검은 구름을 벗겨버리는 것과 같이, 마음의 구름을 벗겨 버리고 맑고 맑은 본래의 고향달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가 눈으로 모든 경계를 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만일 눈으로 본다면 죽은 시체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눈이 아닌 한 물건이 있어 보는데, 무엇이 보는지 그 보는 모양을 돌이켜 볼 때 한 모양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는 데서 또 분명히 봅니다.
보기는 보지만 한 모양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저 서쪽에서 한 맑은 바람이 불어와 검은 구름도 벗겨 버려서 밝은 달도 나타나는 것이며,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원수와 친함도 없으며,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죽고 사는 생사도 면하는 것이며,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고해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나고 멸할 때 항상 육체를 가르쳐서 나고 죽는다 하지만
나고 멸하는 생사(生死)가 본래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망영된 생각을 집착해서 난다 죽는다 하며,
오고 간다 하며, 고(苦)다 낙(樂)이다 하는 것은 하나의 뜬 명상(名相)뿐이지 실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없는 동시에 개인 개인이 그 신령스럽게 비치는 부처 성품은
신령스럽게 비쳐서 시방법계를 통해서 두두상명(頭頭相名)하여 물물상현(物物相現)합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그렇게 밝게 나타나느냐 하면,
혹은 눈에 보이는 색도 있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밖에 나타나는 그 때입니다.
눈에 색이 보이고 귀에 소리가 있을 때에 나타났다고 하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없을 때는 어디에 주(住)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때는 묵묵히 통해 있다가 때를 당하여 인연이 올 것 같으면,
오늘 날 이와 같이 이 법어집(法語集) 속에서 법회가 나타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이 나타나는 자체는 삼세의 모든 부처가 법을 설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미칠 수가 없고
천하의 모든 선지식이 법을 전한다 할지라도 오늘 날 나타나는 자체에는 감히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나타나는 자체에는 인연도 끊어지고 대(代)도 또한 끊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시방세계 모든 부처와 보살의 진면목(眞面目)이며,
천하 선지식의 참다운 진면목(眞面目)이며,
금일 대중의 참다운 진면목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체 중생이 고금(古今)을 통하여 써오되 아무리 써도 다 하지 아니하므로,
이것이 개인개인이 본래 갖추어 가지고 온 참다운 진면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身是正法藏 心無碍燈이
照露諸法空 一切皆明見이라.
몸에는 정법을 감추었다,
마음은 걸림이 없는 등불이로다,
비춰서 드러나는데 오늘 법이
공한 줄만 알면 일체를 다 밝게 본다.
-고승 법어집(혜암선사 편)-
- 혜암(慧庵)선사 -
1900년 보암스님을 은사로 득도
만공,혜월,성월,용성스님 모시고 수행
덕숭산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교화
1985년 세수 102세에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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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 바른 길- 용성 스님
마음을 닦는 사람들은 먼저 공부길을 자세히 살펴 바른 길을 걸어야 헛된 고생을 아니하고 넓은 길로 걸림없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 사람은 자세히 참고하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한 물건이 있으니 하늘과 땅과 허공을 전부 삼키었고 티끌 속에도 적어서 차지 않습니다.
밝기는 수 천개의 일월(日月)과 견주어 말할 수 없고 검기는 먹물보다 더 진합니다.
이 물건이 우리의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데 있지만 이름 붙일 수 없고 얼굴을 그려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마음도 아니요 마음 아닌 것도 아니며,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닌 것도 아닙니다.
또한 부처도 아니요 부처 아닌 것도 아니며,
하늘도 아니요 하늘 아닌 것도 아니며,
귀신도 아니요 귀신 아닌 것도 아니며.
허공도 아니요 허공 아닌 것도 아니며,
한 물건도 아니요 한 물건 아닌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가지가 아니지만 능히 여러 가지를 건립(建立)합니다.
또 지극히 밝으며, 지극히 신령스러우며,
지극히 공(空)하고 크며
지극히 가늘고 또한 강하고
또한 부드럽습니다.
이 물건은 이름과 모양이 없으며,
이름이나 모양없음도 또한 아닙니다.
이 물건은 마음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없고,
마음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말과 글로도 이름 붙일 수 없고,
고요하고 말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이 어떤 물건인가 의심하고 또 다시 의심하되,
어린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하듯 간절히 하며,
암닭이 알을 품고 앉아 그 따뜻함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하듯 하면
참 나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을 볼 것입니다.
마음 닦는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우리가 마음을 닦는 것은 삼장(三藏) 12부경전과 상관이 없고,
오직 부처님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빈자리를 나누시고,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보이시며,
사라쌍수(沙羅雙樹)에서 관(棺)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신 도리를 전하여 오는 것이 우리가 믿어 행하는 것입니다.
출격장부(出格丈夫)들은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리불 같이 지혜있는 이는 온 세상에 가득하고 티끌 수와 같이 많은 보살이라도 조금도 알지 못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 물건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어떤 물건입니까?
모든 도인들은 알거든 내어 놓으시오.
그러나 알지 못하면 의심하여 궁구하십시오.
부디 공부하는 사람들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모든 경계를 쫏아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고 하지 마십시오.
또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고 하지 마지 마시오.
생각으로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들여다 보지 말것이며,
화두를 들 때에 잘 되고 못 되는데 잘 잘못을 취하지 말도록 하며,
고요하고 편안함을 취하지 마시오.
공부하다가 마음이 텅 빈 것을 보고 견성하였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이 물건은 모든 깨달음의 말로도 미치지 못하고 팔만대장경의 글로도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물건이 어떤 물건입니까?"
어떤 사람이 용성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보고 듣는 놈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말라 하시며,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지 찾지 말라 하십니까?"
"육근(六根)이 경계를 대함에 그 아는 분별이 일어남이 한이 없는데 그 허다한 경계를 쫏아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찾으면 그 마음이 어지러울 뿐 아니라 그 화두도 일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가 혹 육근문두(육근門頭)에 아는 놈을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잘못 알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요한 것으로 자기의 본성(本性)을 삼기도 쉽고, 공(空)한 것으로 본성을 잘못 알기도 쉬우며 맑은 것으로 자성을 깨쳤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스스로 내가 소소영영(昭昭靈靈)하다고 하지 않는데 무슨 일로 소소영영하다고 합니까,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들여다 보지 머십시오. 혹 맑은 생각으로 맑고 밝은 곳을 보아 그곳에 집을 짓고 들어 앉기도 쉽습니다. 혹 생각의 당처(當處)가 곧 공(空)함을 깨칠지라도 확철대오(確徹大悟)가 아닙니다."
육조스님께서는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 땅을 괴었으며, 밝기는 해와 달과 같고, 검기는 먹물과 같아서 항상 나의 동정(動靜)하는 가운데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하시었습니다.
또 육조께서 회양(懷讓)에게 묻기를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시니 희양스님이 알지 못하고 8년을 궁구하다가 확철대오 하였으니 이것이 화두하는 법입니다.
이 물건은 육근(六根)으로 구성된 놈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상관없이 항상 있습니다. 또 공(空)하고 공하지 않은 것과 상관없이 항상 있습니다.
만약 허공은 없어져도 이 물건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밝음은 가히 무량한 해와 달로도 비고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크고 커서 천지세계와 허공을 다 삼켜도 삼킨 곳이 없으며 참으로 적고 작아서 보이지 아노는 티끌 속에 들어 갔지만 그 티글 속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하고 의심하여 보십시오. 추호라도 따로 아는 마음을 내지 말고 단지 의심이 큰 불덩이 같이 발 붙이지 못할 곳을 향하여 뚫어 들어가야 합니다.
또 어떤 학인이 묻기를
"천지 허공을 전부 집어 먹고 있다 하니, 이것이 나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며 혹은 나의 참마음입니까?" 하니,
용성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그대가 참으로 증득한 경지에 본 것이 아니며 단지 지해(知解)에서 나온 견해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서울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서울을 가본 사람에게 자세히 이야기 듣고는 남대문은 어떻고, 종로와 대궐이 어떻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서울을 직접 본 것과 같겠습니까?성인이 마음이나 성품을 말씀하시니 그 말만 듣고 그 말만 옮기면 성인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본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람들이 명상(名相)을 지어 <마음이다> <성품이다>하고 여러가지로 말하지만 '명상(名相)을 짓기 전에' <어떤 물건이고?> 궁구하여 바르게 증득하여야 됩니다.
이 일은 말로써 꾸며 될 수 없고 말이 없는 고요한 것으로도 될 수 없고, 있는 마음으로도 없는 마음으로도 될 수 없으니 이것이 어떤 물건입니까? 궁구하여 보시오,
이것은 모든 성현도 알지 못한다 하거늘 어찌 범부의 지해(지해)로 알수 있겠습니까?
그 의미는 참으로 깊고 오묘합니다.
모든 성현이 정말로 몰라서 모른단 말도 아니요,
알아서 안다는 말도 아니니 이 물건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물건도 아니니 모양으로 그릴 수도 없습니다.
이 물건을 아십니까?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깨친 자는 분명합니다.
비유하자면 저기 철로가 있습니다. 철로 위에는 기차도 잇고 차에는 화통도 있으며 화통 속에는 석탄과 물이 있어서 증기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기관사가 기계를 조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몸을 가지고 동작하여 앉고 눞고 걸어 다니지만 이것은 육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놈을 움직이는 어떤 주체가 있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몸을 능히 움직이는 주인공을 찾아 보아야합니다.
이것이 어떤 물건이고? 의심하여 보십시오.
왜 내가 알지 못하는지 부디 찾아 보아야 합니다
몸은 아침 이슬과 같고 목숨은 서편에 넘어가는 해와 같으니 어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 고승법어(용성스님편)-
-용성 스님-
1879년 해인사에서 화월스님을 은사로 득도
1886년 해인사에서 오도함
1919년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
1922년 만주 간도성에서 대각교담을 세움
1911~1913년 대각사와 선학원을 세움
1924년 생전에 좌치에서 사리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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