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9. 20:45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二十三]
問 : "무엇이 대승경입니까?"
答 : "지혜가 대승경이며, 또한 법화경이라 한다. 무엇이 무량의(無量義)인가. 실상성(實相性)에 순일(純一)한 의(義)이니 보살의 법을 가르치고, 보살의 정혜법을 가르친다. 부처님께서 호념하는 바는 '본래 염(念)을 떠나 있음'을 호념함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서 결가부좌하셨다 함은 몸과 마음이 부동함을 나타낸 것이다. 몸이 부동함은 색이 여(如)함이고 혜(慧)이다. 마음이 부동함은 마음이 여(如)함이고 지(智)이다. (삼매에서) 삼(三)은 선정이고,매(昧)는 심(心)이다. 정심(正心) 수행하여 실상성(實相性)에 순일(純一)하는 의(義)를 이름하여 무량의처삼매에 들어감이라 하고, 몸과 마음이 부동함을 나타낸 것이다."
[二十四]
이때 세존께서 삼매의 평안함에서 일어나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제불의 지혜는 깊고 깊으며 무량하다."
묻는다. " 무엇이 지혜의 깊고 깊음입니까?"
(답한다) "여래 지(智)의 바다가 바닥이 없음을 이름하여 깊고 깊음이라고 하고, 혜(慧)가 능히 6진(塵)을 넘어선 까닭에 무량(無量)이라 한다. 그 지혜문은 이해가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워서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승인(2乘과 3乘)의 마음에는 생멸이 있어 이해하기 어렵고, 성문인의 마음에는 사집(思執; 생각하고 구하는 마음)의 동요가 있어 들어가기 어려우며, 보살은 집착이 없고 동요함이 없어 쉽게 이해하고 쉽게 들어간다. "
[二十五]
묻는다. "5위(五位: 성문의 오위; 資糧位,見道位, 加行位,修道位,無學位)의 성문이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고, 사유를 다하여 함께 헤아려 보아도 또한 알 수 없습니다."
묻는다. "어떠한 연유로 모르는 것입니까?"
답한다. "생각하고 구하는 마음(思求心)이 있어서 알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바로 알 수 있는가. 생각하고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묻는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구하는 것을 어디에 쓸 것입니까?"
답한다. "생각하는 가운데 생각을 돌려서 지(智)를 이룬다."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무루의 부사의하고 깊고 깊은 미묘법을 내가 이제 얻었나니 오직 나만이 이 상을 안다. 시방(十方)의 불(佛)도 또한 마찬가지로 (이를) 설하지 않는다. 나의 법은 미묘하고 설하기 어렵다. 모든 증상만인은 듣고는 반드시 경신(敬信)하지 않는다. 이 증상만인은 법을 얻지 못한다. 이는 높은 법이 (그들에게) 증가되면 얻었다는 마음이 있게 되고, 다른 높은 법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니 이것이 증상만이다."
묻는다. " 무엇이 증상만입니까?"
답한다. "이(理)에 어긋나게 능멸 자만하는 것이다. 어긋났다고 함은 무엇인가. (증상만인의) 이(理)가 얻은 바 없다고 증(證)한 이(理)에 어긋남이다. 높은 법은 증하는 바가 없는데 2승인은 증(證)을 더하고, 또 증(證)을 더하게 되니 곧 이(理)가 어긋나는 것이다. 높은 법은 얻은 바 없고, 증하는 바가 없으며, 얻은 바 없고 증(證)하는 바가 없으면 바로 증상만을 떠난다."
-박건주 역주 <대승오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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