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 19:55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마음에 바라는 바가 있는 것을 욕계(欲界)라 한다.
마음이 스스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색(色)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을 색계(色界)라 한다.
색이 스스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색이라 마음의 색이어서 무색(無色)이니 이를 무색계(無色界)라고 한다.
[본문]
묻는다.
"무엇을 불심(佛心)이라 합니까?
답한다.
"마음에 다른 상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진여(眞如)라 한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법성(法性)이라고 한다.
마음이 어디에 속한 바가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마음이 걸림없는 것을 보리(菩提)라 한다.
심성이 적멸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묻는다.
"왜 여래(如來)라 합니까?"
답한다.
"여법(如法)하게 응물(應物)라는 까닭에 여래(如來)라 한다."
묻는다.
"왜 불(佛)이라 합니까?"
답한다.
"여법하게 각(覺)하며, 각(覺)에 각(覺)하는 바가 없어서 불(佛)이라 한다."
<해설>
"각(覺)에 각(覺)한 바가 없다"고 함은 각(覺)이란 본래 항상 본각(本覺)인 까닭에 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상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모든 상(相)을 떠난 것이 각(覺)인데 각(覺)이라는 상(相)이 있으면 이미 각(覺)이 아니며, 망념이다.
[본문]
묻는다.
"어떤 것을 공정(空定)이라 합니까?
답한다.
"법을 보되 공(空)에 머무르는 것을 공정(空定)이라 한다."
묻는다.
"어떤 것을 법에(여법하게) 머무름이라 합니까?
답한다.
"머무름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머물지 않음에도 머물지 아니하여, 여법(如法)하게 머무는 것을 이름하여 법에(여법하게) 머무름이라 한다.
[해설]
공정(空定)이란 무색계의 사공정(四空定: 空無邊處定, 識無邊處定, 無所有處定, 非想非非想處定)을 가리키는데 모두 색(色)이 비어 공하다는 상을 공통으로 하는 까닭에 그렇게 합칭한다. 이 선정은 성문승 선정의 높은 단계이긴 하나 아직 심상(心相)의 생멸이 있어 생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 선정은 간단(間斷)없이 이어짐을 공통으로 하지만 어떠한 상을 지니고 이어지는 선정은 새로 생긴 것이라 언젠가는 소멸한다. 그래서 영원한 선정이 되지 못한다.
대승의 선정은 생한 바 없는 본래의 선정이라 멸할 바도 없이 영원하다. 또한 소승의 선정에서는 선정 중에 다른 일을 못하나 대승의 선정에서는 밥 먹고, 말 하고 등 모든 행을 다 할 수 있다.
"법에 머문다"에서 "법(法)"은 본래 마음이 머무름 없다는 그 이법(理法)을 가리킨다. 그 이법에 여법(如法)히 머무르는 것을 "법에 머문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머무름 없다는 그 생각에 머무른다면 이 또한 머무름이고, 머무름 없다는 뜻에 어긋나 버린다. 그래서 머무름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머물지 않음에도 머물지 말아야 진실로 아무 데도 머무르지 않은 것이 된다. 즉 머무르지 않되 머무르지 않는다는 생각없이 머무르지 않아야 된다. 여기서 "법에 머문다"란 "여법(如法)하게 머문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담림 편집, 박건주 역주 <보리달마 이입사행론,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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