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1. 20:47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十四]
問 : 왜 무문(無聞)이 근본지(根本智)이고, 견무각지(見聞覺知)가 후득지(後得智)라 하는 것입니까?
答 : 어떠한 연유로 무문(無聞)이 근본지(根本智)라 하는가. 먼저 신심의 상(相)을 떠남을 증(證)함이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지견(知見)이 자재(自在)하여 육진에 물들지 않으면 견문각지가 후득지(後得智)가 되는 것이니 먼저 증(證)함이 근본이 되는 까닭이다. 만약 증(證)함이 먼저 되지 않는다면, 모든 지견(知見)이 오염되는 것이다."
問 : 금일 견문각지가 치성한데, 육진 중에서 자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떠한 연유로 되는 것입니까? 왜 먼저 신심(身心)의 상을 떠남을 증(證)하는 것이 근본이 되는 까닭이며, 지견(知見)이 자재하면 육진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答 : 분명히 알라. 지견(知見)이 자재하게 되는 것은 증(證)한 후에 얻어지는 지라 모든 후득지가 되는 것이다. 근본지와 후득지가 처처에 분명하고, 처처에 해탈이며, 처처에 수행이다. 눈으로 색을 보되 마음 일어남이 없는 것이 근본지이며, 견(見)이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귀로 소리를 듣되 마음 일어남이 없는 것이 근본지이고, 문(聞)이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코로 향을 지각하되 마음 일어남이 없음이 근본지이고, 지각함에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혀로 맛을 지각하되 마음 일어남 없음이 근본지이고, 지각함이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몸을 스스로 지각하되 마음 일어남 없음이 근본지이고, 지각함이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심식이 법진(法塵)을 지(知)하되 마음 일어남 없음이 근본지이고, 지(知)함에 자재함이 후득지이다. 감각기관(根)마다 모두 진(塵;6境-색성향미촉법)을 일으키지 않나니, 청정한 감각기관 마다 모두 진(塵)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十五]
聞 : <유마경>에서 "방편의 혜(慧)가 없는 묶임(縛)" 이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答 : 2승인은 선정에서 듣지 못하고, 선정에서 나오면 듣는다. 선정 중에서는 혜(慧)가 없어 설법할 수 없고, 또한 중생을 제도할 수도 없으며, 선정에서 나오면 마음이 산란한 가운데 설법하니 선정의 수윤(水潤)이 없어 간혜정(乾慧定:지혜가 바른 정)이라 한다. 이것이 방편의 혜(慧)가 없는 묶임이다.
무엇인 "방편의 혜(慧)가 있는 해탈"인가. 보살의 육근이 본래 부동하여 소리가 있든, 없든, 사라져 가든 항상 듣고, 항상 부동에 수순하여 수행한다. 이 방편을 얻은 까닭에 올바른 선정(正定)이 되어 곧 원적(圓寂;원만한 열반)을 얻으니 이것이 대열반이다. 이를 이름하여 "방편의 혜(慧)가 있는 해탈"이라 하고, "혜(慧)의 방편이 없는 묶임" "혜(慧)의 방편이 있는 해탈"이라 한다.
問 : 무엇이 방편입니까?
答 : 부동(不動)이 방편이다.
問 : 어떤 것이 부동합니까?
答 : 마음이 부동한다.
마음이 부동(不動)에 머무름도 동(動)이다.
<註 : 不動이라는 相에 머물러 있으면 그 相이 일어난 것이니 곧 動한 것이다>
<유교경>에 설한다. "일체 세간의 동(動)과 부동(不動)의 법(法)이 모두 무너지는 불란(不安)의 상(相)이다.
환희하면 동(動)하고, 동(動)을 두려워하는 데서 부동(不動)에 집착하며, 6식을 멸하여 공적(空寂) 열반에 증(證)하고, 소리가 있거나 소리가 없거나 소리가 사라져가거나 불문(不聞)하며, 선정의 맛에 탐착하여 2승 열반에 떨어지니 이것이 "지헤 방편이 없는 묶임"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무엇이 "방편의 혜(慧)가 없는 묶임"이라 하는가. 보살이 애견의 마음으로 불토(佛土)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취하게 하며,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 중에서 스스로 조복하니 이것이 "방편의 혜(慧)가 있는 해탈"이다.
"혜(慧)의 방편이 없는 묶임"은 열반에 애착하고, 부동(不動)으로 장엄하며, 6근의 부동함을 장엄하고, 탐진치의 성품이 공(空)함을 증득하며, 공을 보되 공을 취하지 않음을 증(證)으로 하고, 생사를 싫어하여 열반에 머므르니, 이를 "혜(慧)의 방편이 없는 묶임"이라 한다.
"혜(慧)의 방편이 있는 해탈"은 보살이 애견심(愛見心)과 열반에 애착함을 이미 다하고, 청정한 육근이 불토임을 보며 (了知하며), 부동으로 장엄하고, 육근의 부동함을 증득하며, 탐진치의 성품이 공(空)함을 요지하고, 공(空)을 보되 공(空)을 취하지 않음을 증(證)으로 하며, 생사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열반에 머무르지 않으니 이를 "혜(慧)의 방편이 있는 해탈"이라 한다.
"방편의 혜(慧)가 없는 묶임"은 보살이 모든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 등의 모든 번뇌에 머무르면서 많은 덕의 근본을 심고, 소리가 있거나, 소리가 없거나 소리가 사라져가도 불문(不聞)하고 불문(不聞)하니 이를 "방편의 혜(慧)가 없는 묶임"이라 한다.
"방편의 혜(慧)가 있는 해탈"이란, 보살이 모든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 등의 모든 번뇌를 떠나 많은 덕의 근본을 심고, 육근의 부동(不動)함을 증득하며, 탐진치의 성품이 공(空)함을 요지(了知)하고, 공(空)을 보되 공(空)을 취하지 않음을 증(證)함으로 하고, 생사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모든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 등의 모든 번뇌를 바로 떠나 모든 덕의 근본을 삼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소리가 있거나 소리가 없거나 소리가 사라져 가도 항상 들으니 이를 "방편의 혜(慧)가 있는 해탈"이라 한다.
-박건주님 역주 <大乘五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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